[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포르투갈 코임브라(Coimbra)

  • 권응상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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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4   |  발행일 2021-05-14 제36면   |  수정 2021-05-14 08:30
대학이 경제 이끄는 '학생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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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끝부터 요아니나 도서관, 상 미겔 성당, 시계탑, 옛 궁전 등이 둘러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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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북부 해안 근처의 운하도시 아베이루.

포르투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늘 목적지는 코임브라다. 도중에 아베이루(Aveiro)와 코스타노바(Costa Nova)에 잠시 점을 찍었다. 아베이루는 포르투갈의 북부 해안 근처의 운하 도시로서 포르투에서 78㎞ 거리다. 명소나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지나는 길이기도 했고, 작은 베니스로 불리는 운하 도시라는 말에 끌렸다. 아줄레주로 장식된 고운 건물들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운하와 그곳을 떠다니는 형형색색의 나무배 몰리세이루는 이방인을 편하게 맞아주었다. 마침 우리의 시골장 같은 마을 장터를 만나 수제 인형과 가죽 지갑을 쇼핑하기도 했다.


목적지 가는길 작은 베니스 아베이루
사진 명소 '줄무늬 마을' 코스타노바



코스타노바는 아베이루에서 10㎞ 정도 떨어진 해안 마을이다.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 '줄무늬 마을'로 불리며 사진 명소로 이름이 나 있다. 1575년에 발생한 강력한 폭풍으로 이곳 지형이 바뀌었고, 어부들이 그 터에 새롭게 오두막집을 지으면서 독톡한 풍광의 줄무늬 마을이 들어서게 되었다. 어부들은 옅은 모래색과 대조를 이루도록, 혹은 본인의 집임을 단번에 알 수 있도록 선명한 색으로 칠하다 보니 오늘날의 알록달록한 줄무늬 마을이 되었다. 해안가에 늘어선 줄무늬 집들은 모처럼 쨍한 하늘과 어울려 경쾌하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간판도 없는 작은 식당에서 마을 사람들 틈에 섞여 이름 모를 생선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해안가를 거닐기도 하고, 줄무늬 집들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기서 코임브라까지도 80㎞ 남짓이다. 코임브라는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주의 주도로, 인구는 14만여 명(2011년)이다. 몬데구강이 시내를 지나는 이 도시는 리스본과 포르투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중심지여서 1255년까지 포르투갈의 수도였다. 로마시대에는 에미니오로 불렸고, 8세기 초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온 무어인들은 또 쿨루미리야로 불렀다. 이때부터 이 도시는 북쪽 기독교인들과 남쪽 아랍인들의 중요한 교역 장소가 되었고, 12세기에는 어엿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16세기 중엽부터 이 도시는 코임브라대학의 역사와 함께 전개되었다. 지금도 코임브라의 경제활동은 대부분 약 2만명의 학생을 가진 대학에 의존하고 있다.


16C부터 코임브라대학 역사와 성장
골목따라 캠퍼스 자리한 언덕 오르니
포근한 실루엣의 도심 한눈에 들어와



이처럼 코임브라는 오래전부터 학생의 도시로 불려왔다. 내가 이 도시를 찾은 것도 이 대학 때문이었고, 숙소도 대학과 가까운 곳에 예약했다. 해가 뉘엿할 즈음 코임브라 시내를 가로지르는 상 세바스티앙 수도교 아치를 통과해 숙소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내비게이션이 멈추는 곳에 차를 세웠지만 숙소라고 할 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골목 한쪽에 옹색하게 주차하고 숙소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앞의 쪽문이 열리더니 주인이 손짓을 했다. 숙소 앞에서 숙소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좁은 문을 들어서서 다시 나선형 나무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이 지역 자체가 언덕이어서 골목 입구가 2층이고 우리의 숙소는 1층이었다. 짐을 내리느라 낑낑대며 속으로 오늘 숙소는 망했다고 생각하며 일행의 눈치를 살피니, 일행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숙소 사진은 꽤 그럴듯 했다. 가격은 더 매력적이었다. 조식 포함하여 우리 돈 4만 정도였다. 물가가 높지 않은 포르투갈이라고 해도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는 감수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오늘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조리도구를 갖춘 정갈한 부엌에 깔끔한 거실, 멋스러운 재킷을 입은 주인의 친절함까지. 게다가 창 너머 오렌지 나무 정원이 보이는 안락한 룸이라니. 이런 반전은 늘 여행을 새롭고 설레게 한다.

짐을 풀고 거실에 앉으니 친구 집에 놀러 온 기분이었다. 차를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갔다. 주인은 세 살배기 아이를 가진 젊은 아빠이고 2층에서 살림을 산단다. 말하자면 이 숙소는 부업인 셈이다. 공간이 만드는 편안함이 끝 모를 수다로 이어졌다. 주인은 우리를 위해 코임브라 파두를 틀어주었다. 리스본의 파두가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면, 코임브라의 파두는 젊은 시절의 기쁨과 설렘을 노래한 것이란다. 코임브라 파두는 대학생이 기숙사 창문 아래에서 부르던 세레나데가 전승된 것이라고 했다. 방의 불을 세 번 깜박이면 사랑을 승낙하는 표시란다. 태생부터 낭만적인 이 노랫가락은 애절하면서도 설렌다. 정원의 해그림자도 넘어간 한참 뒤에야 우리는 허기를 느끼고 숙소를 나섰다.


과거 궁전 구대학·수업 하는 신대학
광장중앙 번영 이끈 王 주앙3세 동상
세계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요아니나
책 갉아먹는 벌레 잡으려 박쥐도 동거
지하 2층엔 책 훔친 학생 가두는 감옥
'해리포터' 서 착안한 검은 망토 교복



들어올 때 차로 지났던 수도교의 아치를 걸어서 지났다. 수도교는 마치 도시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과거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도시의 색깔을 묘하게 만든다. 작은 자갈을 박아놓은 보도는 고도의 분위기를 끌어내고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시내의 실루엣은 포근했다. 저녁을 먹고 어둠이 덮인 골목을 따라 캠퍼스가 자리한 언덕에 오르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시 전체가 편안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코임브라대학으로 갔다. 코임브라대학은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교이자 유럽에서도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특히 유럽 인문학의 중심 역할을 했다. 1290년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포르투갈의 6대 왕 디니스(Dinis)가 리스본에 세운 '에스투두 제랄'이 이 대학의 전신이다. 1307년 교회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코임브라로 이전했다가 1338년 다시 리스본으로 옮기는 등 이전을 반복하다가 1537년 주앙(Joao) 3세 때 리스본에서 코임브라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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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학장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옛 궁전 '시험의 방'

대학 캠퍼스는 몬데구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하는데,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는 신대학과 과거 궁전이었던 구대학으로 나뉜다. 계단을 올라 정문을 들어서니 대학 설립자인 디니스 왕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동상을 중심으로 늘어선 건물이 신대학이며, 건물이 끝나는 곳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구대학이 있었다. 입장권을 끊고 철문을 들어서자 디귿 자 형태로 건물에 둘러싸인 파티오 다스 에스콜라 광장이 펼쳐졌다. 광장 중앙에는 이 대학을 코임브라로 이전한 주앙 3세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주앙 3세는 치세 기간에 브라질을 식민지로 확보하고 북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영역을 확장하는 등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며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구대학의 랜드마크는 염소라는 별명을 가진 시계탑이다. 수업을 마치는 종을 치면 1학년들이 상급생들의 괴롭힘을 피해 염소처럼 급히 집으로 돌아간 데서 붙은 별명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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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니나 도서관 지하 1층 내부. 중국풍의 장식은 당시 마카오 지배의 흔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시간별로 예약한 20명만 입장할 수 있는 요아니나(Joanina) 도서관부터 찾았다. 이 도서관은 1728년 주앙 5세가 건립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꼽힌다. 광장 안뜰을 마주한 도서관은 지상층인데, 입구는 뒤쪽 계단을 내려가 지하 2층까지 가야 한다. 가이드를 따라 먼저 간 곳은 지하 2층의 학생감옥이었다. 규율을 어기거나 책을 훔친 학생들을 가두었던 곳이란다. 작은 창 하나만 있는 두꺼운 방은 그 자체로 위압적이었다. 지하 1층은 책을 유지·보수하는 곳이다. 다시 한 층을 올라 '장엄의 홀'이라고 부르는 도서관 내부로 들어갔다. 황금과 대리석으로 장식한 실내는 화려함의 극치라고 부를 만했다. 고개를 들면 정교한 프레스코화가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말 그대로 책을 모시기 위해 보물로 지은 궁전이었다.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벽을 2.2m 두께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이드가 책장 구석을 가리키며 이곳에 박쥐가 산다고 했다. 책의 보존을 위해 사진 촬영도 엄격히 금하는 이곳에 박쥐가 산다는 것이었다. 박쥐가 책을 갉아 먹는 벌레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박쥐를 보호한단다. 그리고 박쥐가 활동하는 밤에는 박쥐의 배설물로부터 책을 보호하기 위해 책을 덮어둔다고 했다. 책이 이처럼 대접받는 곳이 있겠는가 싶다. 그 시대 책은 보물이자 권력이었다. 하기야 초창기 대학에서 교수란 책을 가진 사람이었고, 교수가 읽어주는 책을 베끼는 것이 수업이었다고 하니, 지식을 담은 책이 곧 권력이라고 할 것이다.

도서관 옆은 상 미겔 성당이었다. 12세기에 건축되었다는 이 왕가의 성당은 작지만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과 화려함이 있었다. 특히 아줄레주와 어울린 프레스코화는 여느 성당에서는 보기 힘든 고상함이 있었다. 성당을 나와 본격적인 궁전 탐방에 나섰다. 옛 왕립 근위대의 무기를 전시한 '무기의 방', 이 대학 총장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노란색 방', 궁전의 메인홀로서 포르투갈 왕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그레이트 홀', 왕의 침실이었던 '시험의 방'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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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토 교복을 입고 기념을 파는 코임브라대학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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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 교수)

궁전을 나와 광장에 서서 건물들을 살피다 보니 문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옷조각이 걸려 있었다. 졸업식 때 해방감에 교복을 찢어 문의 제일 높은 곳에 걸어두는 전통의 흔적이란다. 이 대학 학생들은 지금도 교복을 입는다. 캠퍼스 군데군데 검은 망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조앤 롤링은 또 이 교복을 보고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복을 착안했다고 한다. 교복 하나의 문화적 스펙트럼도 이처럼 크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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