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 돼지고기 인문학 <하> 삼결살 1....소주와 '영혼의 단짝', 지친 하루 위로하는 국민안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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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33면   |  수정 2021-05-07 09:16
한국인이 선호하는 돼지고기 부위 1위
세겹살·뱃바지·삼층제육 등으로도 불려
60년대 日수출 후 남은 부위…싼맛에 먹어
80년대 캠핑 붐·가스버너 생기며 인기 폭발
초기엔 '백종원의 실수' 대패삼겹살이 대세
2000년대 중반 넘어가면서 점점 두꺼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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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전체 육류 소비량(49.1㎏) 중 돼지고기가 절반(24.5㎏)을 차지했다. 또한 농촌진흥청이 몇 년 전 '돼지고기 소비실태조사'를 했는데 선호 부위 1위는 단연 '삼겹살'(61.3%) 이었다. 광복 직후 주목받은 건 단연 소였다. 돼지는 별다른 존재로 각인되지 못했다. 그런데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은 '삼겹살민족'이 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지글지글 구워먹기 시작했다. 사진은 동성로 2030 먹자골목에서 통후추허브생삼겹살 시대를 연 '머꼬'의 시그니처 삼겹살.

삼겹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둘레인가. 이 전대미문의 고기는 과거와 미래와 현실을 다리처럼 연결해주는 별스러운 '축생(畜生)'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삼겹살이 이젠 오겹살로 리모델링됐다. 아무튼 '삼겹살에 소주', 이걸 빼버린다면 대한민국의 회식도 불가능해질 것 같다.

최근 공중파 푸드인문학 관련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지난해 12월20일부터 2부작으로 방영된 KBS1'삼겹살 랩소디'였다. 국민식객이 된 더본코리아 대표 백종원 등 여러 전문가를 불러 삼겹살의 모든 것을 낱낱이 해부했다. 2017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전체 육류 소비량(49.1㎏) 중 돼지고기가 절반(24.5㎏)을 차지했다. 또한 농촌진흥청이 몇 년 전 '돼지고기 소비실태조사'를 했는데 선호 부위 1위는 단연 '삼겹살'(61.3%) 이었다. 광복 직후 주목받은 건 단연 소였다. 돼지는 별다른 존재로 각인되지 못했다. 그런데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은 '삼겹살민족'이 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지글지글 구워먹기 시작했다.

지방덩어리랄 수 있는 삼겹살, 이걸 이렇게 죽자살자 먹어대는 민족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유럽은 몸통보다 족발을 예찬한다. 독일에는 삶은 족발의 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슈바인 학세', 맥주에 푹 삶아낸 '아이스바인', 프랑스에서는 달콤한 족발조림인 '피에 드 코숑'이 별미다. 이탈리아에는 족발찜인 '참포네'가 있고, 체코에서는 족발꼬치인 '콜레노'가 있다.

삼겹살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진 박정배 음식유래 연구가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삼겹살이란 명칭이 생긴 게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세겹살, 뱃바지, 삼층(三層)제육 등으로 불렀다. 1931년 발간된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6판)에는 '세겹살(뱃바지)-배에 있는 고기, 돈육 중에 제일 맛있는 고기'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이 기록이 삼겹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 주장한다.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은 한국인이 삼겹살을 많이 먹게 된 연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1960년대 일본으로 돼지고기(안심과 등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잔여육으로 삼겹살과 족발, 내장, 머리 등이 싼 값에 국내에 풀린 여파라 주장한다. 그리고 1960~70년대 대한민국에 대규모 양돈농장이 들어선 이유는 일본경제가 발전하면서 돼지고기 수요가 급증하고, 돼지의 분뇨처리 문제 때문에 사육을 늘릴 수 없게 되자 일본자본들이 한국에 대규모 양돈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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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고기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동성로 2030 골목, 그 안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한 통후추허브생삼겹살전문점 '머꼬' 전경.

삼겹살이란 명칭이 1970년대 무렵 강원도 태백과 영월의 광부들로부터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작업장에서 먼지를 많이 흡입하는 광부들은 매달 고기교환권을 받았는데, 이를 통해 가장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삼겹살 부위를 선호했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에는 대일 수출이 뜸해지지만 돼지고기 가공공장이 늘어나고 프로판가스 불판, 쿠킹호일 같은 도구가 더해지면서 삼겹살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마이카 붐과 레저캠핑 붐도 한몫했다. '회식=삼겹살'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특수와 맞물려 삼겹살은 '국민안주'로 정착된다. 청구, 우방, 보성 등 대구의 대표 아파트 건설 업체 현장 작업 인부들에겐 삼겹살과 소주 한 잔이 노역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금복주도 삼겹살 특수가 더없이 고마웠을 것이다.

초창기엔 생삼겹은 없었다. 냉동 대패삼겹살이 대세였다. 그 흐름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백종원이다. 1990년대 후반 자신이 '대패삼겹살'을 개발하게 된 탄생 비화를 소개했다. 실수로 햄 써는 기계로 고기를 썰었는데 돌돌 말아진 형태로 나왔다. 이를 본 한 손님이 '대패로 썰었느냐'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렇게 해서 대패삼겹살 시대가 개막된다. 그는1996년 8월 대패삼겹살 상표를 특허출원한다.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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