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 돼지고기 인문학 <하> 삼결살 2. 연탄불에 구워 추자도 멜젓에 콕…두툼삼겹살 원조는 제주도 '돈사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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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34면   |  수정 2021-05-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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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불에 굽고 멜젓(멸치젓갈)을 양념장으로 활용한 제주도식 근고기 문화를 대구식으로 받아들여 성공한 중구 동인동 '존슨식당'의 불판.

1970년대 초 대구 동성로에 '도시락 삼겹살'이 등장한다. 뒤이어 대팻밥처럼 동글동글하게 말린 냉동 삼겹살 시대가 도래한다. 그건 쿠킹호일을 깐 불 위에서 구워먹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로 접어들자 냉동 삼겹살 시대는 퇴조하고 별별 보조식재료가 가미된 '기능성 생삼겹살 시대'가 개막된다. 황토먹인 돼지, 숙성 생삼겹, 벌집삼겹살, 3초삼겹살, 와인삼겹살 등이 줄을 잇는다. 서울 상암동의 '시간돼지'는 소고기 시장을 휩쓴 '드라이에이징(건조 숙성)'기법을 돼지고기에도 도입한다.

지역 삼겹살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킨 브랜드가 있다. 다크호스로 등장한 '고향솥단지생삼겹살'이다. 고향솥단지는 원래 서울에서 시작됐지만 이걸 2002년쯤 대구에서 수입해 더욱 꽃을 피운다. 기존 네모난 불판 시대를 종식시키고 고향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솥뚜껑을 불판으로 등장시켰다. 묵은지, 콩나물, 호박, 햄, 가래떡 등을 불판 위에 올렸다. '데리야키삼겹살' 같았다.

200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삼겹살 두께가 더 두꺼워진다. 더욱 새로운 육질과 맛을 위해 별의별 테크닉을 다 구사했다. 고기를 더 빠른 시간 내 더 맛있게 골고루 익히기 위해 칼집을 십자 모양으로 넣었다. 그게 벌집삼겹살이다. 대박이었다. 이어 피자처럼 300℃ 가까운 고온의 화덕에서 빨리 구워내는 '3초삼겹살'도 돌풍을 일으킨다.

두꺼운 삼겹살 신드롬
제주 근고기 예능에 소개되며 대박
2010년 대구에도 두툼삼겹살 열풍
'돈X돈' 비슷한 상호 난립하며 경쟁
대구 '존슨식당' 제주食문화 직수입


구이용 최적의 맛은
호텔서 스테이크 굽던 '맛찬들'대표
특허 불판 만들고 육즙담은 맛 연구
3.5㎝ 두께로 14일 숙성시켜 선보여


이맛 모르면 아쉬워
열무와 환상 호흡 '열무밭에 돈'
겉절이가 인상적인 '안동뒷고기'
부산發 특수부위 전문점 '뚱보집'
양식기법 끌어들인 동성로 '머꼬'
통후추허브생삼겹살 색다른 맛


◆2005년부터 두툼삼겹살 개막

제주도에선 한 근(600g)을 기준으로 고기가 팔린다. 한 근 삼겹살을 현지인들은 '근고기'라 한다. 거기선 삼겹살보다 주로 목살이 많이 팔린다. 스테이크처럼 두툼한 '두꺼운 삼겹살 왕소금구이(이하 두삼)'가 북상하기 시작한다. 두삼 신드롬의 진앙지는 제주시 노형동 '돈사돈'. 여기서 '제주 생근고기 특수'가 일어난다. 2005년쯤 문을 연 돈사돈은 2009년 방영된 '강호동의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초대박을 친다. 돈사돈은 보라색 '제주 흑' 검인이 찍힌 제주도 흑돼지를 추자도 멜젓(멸치젓갈) 소스에 찍어 먹게 한 게 성공 포인트. 가스와 참숯 대신 1960~70년대 제주도 토박이들이 즐기던 연탄불구이를 부활시켰다. 드럼통 테이블을 사용해 일명 '깡통근고기'로 불렸다. 제주도 토박이는 원래 돔베(도마)수육을 즐기지만 구이 문화도 1960년대부터 존재했다가 근고기구이 붐으로 활성화됐다. 돈사돈이 대박이 나자 제주공항 근처인 노형동엔 동시에 1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빌딩형 근고기 전문식당이 들어선다. 2011년 문을 연 '늘봄', 바로 옆에 '흑돈가'가 마주보고 선다. 이 둘은 '빌딩형 근고기 집'시대를 연다. 이와 함께 제주시 건입동에 '흑돼지 거리'가 생긴다. 덩달아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내 가시식당은 고사리를 섞은 '돼지두루치기구이'로 대박을 낸다. 최근에는 목포고을, 숙성도 등이 줄을 세우고 있다.

제주도 삼겹살 신드롬이 2010년쯤 대구에 상륙한다. 기존 양념돼지갈비는 물론 얇은 삼겹살 시대가 된서리를 맞게 된다. 대구에선 돈사돈, 돈앤돈, 제주포크 등이 두꺼운 목살구이 시대를 연다. 비슷한 상호가 난립할 수밖에 없었다. 돈사돈과 비슷한 돈앤돈, 돈육돈, 한돈시대, 미스돈, 정행돈, 농협목우촌 미소와돈 등이 라이벌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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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구 중앙고 근처에 있는 '뚱보집'은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돼지 특수부위 전문점으로 큰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돼지껍데기, 가오리살, 꼬들살, 가로막살, 돼지꼬리 등을 맛볼 수 있다.
◆대구에 부는 두툼삼겹살

맛찬들 왕소금구이, 존슨식당, 솔낭구, 고령불, 지산동 두툼 등도 제주도 근고기 특수를 잘 이용했다. 남구 대명동 옛 계명전문대 돌계단 맞은편에 있는 '고령불'은 기존의 숯불직화구이의 단점을 보완하고 바비큐의 장점을 어느 정도 살려 원적외선 돌을 깔고 그 위에 석쇠를 올린, 덜 타는 이중불판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2007년 대구시 북구 서변동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근처에 문을 연 <주>맛찬들 왕소금구이. 이동관 대표는 여느 구이집에선 좀처럼 시도하지 못한 구이 방법을 고안해 특허 불판까지 만들었다. 1988년 요리사의 길로 들어선 그는 경남 창녕 부곡 로얄호텔에서 스테이크를 구웠다. 제대한 뒤 우방랜드, 용인 에버랜드, 핀외식연구소 등을 거쳐 12년 전 북구 서변동에서 정성축산을 차린다. 5년간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본질에 대해 파고든다. 당시 지역의 경우 육즙 형성되는 생삼겹살을 먹기 어려웠다. 그는 돼지 육즙을 맛보려면 반드시 일정 두께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구 결과 3.5㎝가 구이용으로 가장 좋은 맛을 내는 두께라는 결론을 내린다. 불판 온도를 재는 온도기까지 투입했다. 기본 220℃에서 시작해 310℃에서 굽기를 마쳤다. 거기에선 숙달된 직원이 4분30초 정도에서 굽기를 마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고기를 불판에 올려 겉면에 핏물이 감돌고 윤기가 나면 뒤집어 굽고, 즉시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준다. 그는 영하 1℃에서 쇠고기는 25~35일, 돼지고기는 14일 숙성시켜야 정말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도 근고기를 대구로 직수입한 식당은 '존슨식당'이다. 2012년 6월 남구 이천동에 오픈했다.식당 주인은 현직 건축인테리어 디자이너 최겸씨. 현재 삼덕초등학교 근처로 이전했다.

상동 '열무밭에 돈'은 푸짐한 열무, 그리고 주인 아줌마의 약선음식 테크닉이 빛을 발했다. 일단 재밌는 집이다. 수성구 상동에 있는 24년 역사의 삼겹살집. 열무와 삼겹살 매칭. 처음에는 열무국수로 출발을 했다. 이곳은 모자의 내공이 결집돼 있다. 약선요리사이기도 한 이태분 여사장은 약선음식 전문가다. 매장 입구에 숙성실이 있다. 열무 사용량이 엄청나다. 직원이 직접 불판 옆에서 알맞게 구워 먹기 좋게 잘라준다. 후식으로 황기약선된장국수, 열무국수, 열무비빔밥 등이 깔린다. 열무, 방풍나물, 적양배추, 파프리카, 쌈배추 등이 섞인 기본 샐러드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열무를 무한리필에 가깝게 먹을 수 있다.

상인동 '안동뒷고기'도 최근 특수육의 강자로 등장했다. 최근 수성못 옆 두산동점도 냈다. 배추 겉절이와 콩나물무침이 인상적. 일반 삼겹살 부위가 아니라 돼지 뒷목살만 사용한다. 흑돼지 식감을 상회하는 야문 육질에 모두 혀를 내두른다. 가족이 칼잡이 스태프를 자임한 게 타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수성구 지산동 '두툼'은 포크스테이크만큼이나 고기가 두툼하다. 초벌한 뒤 손님 테이블에서 주인이 집적 구워서 잘라준다. 주인 부부가 24시간 철벽서비스를 한다.

수성구 중앙고 근처에 있는 '뚱보집'은 4년 전 부산에서 출발한 돼지 특수부위 전문점이다. 해병대 출신 대구 사나이 이대균이 대구점을 받았다. 돼지껍데기, 살들살, 가오리살, 가로막살, 돼지꼬리, 모소리살 등에 맞는 친절한 부위별 특제소스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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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엔 생삼겹은 없었다. 냉동 대패삼겹살이 대세였다. 그 흐름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백종원이다. 이후 2000년 즈음 생삼겹살 시대가 개막되고 2010년 즈음엔 제주도 근고기발 두툼삼겹살 시대가 전국을 강타하게 된다. 대구의 경우 '맛찬들'이 스테이크 같은 두툼한 삼겹살을 초벌한 뒤 먹기 좋게 잘라내 인기를 끌었다.
◆통후추삼겹살 오픈한 머꼬

옛 갤러리존 동쪽 맞은편에 종로 진골목과 비슷한 좁고 길다린 골목이 있다. 2030골목이다. 2003년 300곒 남짓한 이 구간은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 하나 주어지지 않는 방치된 골목이었다. 당연히 행인도 뜸하니 선뜻 가게를 오픈할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도전장을 낸 여사장이 있다. 남두리씨였다. 남편(김동영·64)은 동대구·파크·구미호텔 양식부 조리사였다. 눈독을 들인 곳이 바로 2030골목이었다. 골목에 오니 식당은 두 곳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삼겹살집이 아니었다. 1인분 5천원 무한리필 뷔페식으로 갔다. 그런데 2차 손님이 많은 이 골목 특성상 1인분 5천원은 적잖은 부담을 주는 가격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통후추허브생삼겹살'이었다. 양식 기법을 삼겹살 요리에 절충시킨 것이다. 바질, 타임, 로즈메리, 오레가노 등 5종류 허브를 가루로 만들어 삼겹살 위에 뿌렸다. 또한 월계수잎으로 향을 더한 와인에 삼겹살을 담가 새로운 맛을 끌어냈다. 일식당에서나 봄직한 생와사비도 내놓았다.

1년 전부터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를 내놓고 있다. 메뉴라인은 크게 생삼겹, 통후추삼겹살, 허브삼겹살, 이밖에 오바마(올리브, 바질, 마늘) 삼겹살도 개발했다. 삼겹살을 얇게 저며 꽃처럼 돌돌말아 '허브꽃삼겹살'로 네이밍을 했다. 고기 못지 않게 물엿과 설탕 대신 사과즙을 졸이는 등 과일을 베이스로 한 삼겹살용 스페셜 소스는 단골을 사로잡는 색다른 맛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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