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탈원전, 현실을 직시하자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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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7   |  발행일 2021-05-27 제22면   |  수정 2021-05-27 07:14
신재생에너지 경제성 낮아
핵발전 미세먼지·탄소 제로
SMR 등 차세대 원전에 길
한·미 원전수출 공조 합의
탈원전 정책 변곡점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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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온라인 설문 조사한 '초·중·고 진로교육 현황'을 보면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초·중생의 경우 의사가 희망직업 2·3위였으나 고교생의 희망직업순위에선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대신 초·중학교 때 10위권 아래 처져 있던 간호사가 고교생 희망직업 3위로 치고 올라왔다. 왜일까. 초·중 재학 땐 다소 막연한 상태에서 부담 없이 의사를 선택했지만 고교생이 되면 의대란 높은 벽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과거 학부모 사이에 회자된, 맥락이 비슷한 우스개가 있다.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땐 서울대 진학 목표를 세우고 서울우유를 먹이다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 연세우유로 대체한다. 중학생 땐 학력이 더 체화(體化)하는 시기다. 자녀의 실체를 알게 된 학부모는 건국우유로 브랜드를 맞춘다. '인(in) 서울'이면 족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녀가 고교생 때는 저지방우유로 바뀐다. 선택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하릴없이 지방대를 택해야 하는 학부모의 고뇌가 엿보인다.

두 개의 에피소드엔 꿈과 이상이 원대해도 결국 현실을 직시한다는 함의가 내재돼 있다. 한데 문재인 정부는 현실과 괴리가 큰 탈원전 정책을 고수한다. 정부의 9차 전력수급계획엔 2020년부터 15년간의 전력설비계획이 담겼다. 2034년까지 11기의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석탄발전을 줄이는 게 골자다. 그 대체전력이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이다.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지난해 20.1GW에서 2034년 77.8GW로 대폭 늘어난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경제성이 낮고 환경훼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전기 생산량이 날씨에 따라 들쑥날쑥한다. ESS(에너지저장장치)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ESS 기술은 갈 길이 멀다. 단위 용량당 건설비, 발전시설의 수명, 생애 발전량 등에서도 원전이 압도적 우위다. LNG발전은 탄소를 배출하는 데다 발전단가의 기복이 심하고 비싼 편이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와 민간회사로부터 구매한 전력 단가의 지난 5년 평균치는 ㎾h당 원자력 62원, 석탄 80원, LNG 110원, 태양광 168원이다.

2017년 기준 석탄발전소의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2만7천t이지만 원전은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다 제로다. 1㎾h 전력을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석탄발전이 1천g, LNG는 490g인 데 비해 원자력발전은 15g에 불과하다. 원자력발전이 '궁극의 청정에너지'로 수식되는 이유다. 차세대 원전에 길이 있다. 차세대 원전의 세 가지 방식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고온가스로(HTGR), 핵융합 발전이다.

지구상에선 해마다 510억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 한데 원전 없이 이게 가능할까. 원전은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으면서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최적의 기후변화 해결책이다. 적어도 2050년까진 원전을 현상 유지하는 게 옳다. 그러면 원전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고 원전수출의 정합성(整合性)도 명쾌해진다. 전기료 상승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신월성 3·4호기 건설 불발 시 발생하는 손실을 사장시키지 않아도 된다.

2050년이면 에너지저장 기술과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SMR 등 차세대 원전의 비약도 기대된다. 그때 가서 에너지 믹스의 틀을 다시 짜자. 학생과 학부모도 종국엔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 않나. 하물며 정부가 말랑말랑한 환상에 빠져서야. 마침 한국과 미국이 해외 원전시장 공동진출에 합의했다. 한·미 원전 공조가 탈원전 정책의 변곡점이 되기 바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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