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새벽의 약속' (에릭 바르비에·2017·프랑스·벨기에)

  •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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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1   |  발행일 2021-06-11 제39면   |  수정 2021-06-11 08:41
로맹 가리 모자의 폭풍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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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새벽의 약속'은 소설가 로맹 가리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로맹 가리와 엄마와의 관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서전 형식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이주해온 유태인 니나 예체프는 의상실을 꾸려나가며 온갖 고생을 다한다. 유일한 가족인 아들, 로망 예체프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산다. 우여곡절 끝에 의상실이 파산하자 프랑스로 이주한다. 니스에 정착한 그들은 장사 수완이 좋은 엄마 니나 덕분에 작은 호텔을 경영할 만큼 성공한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의 관심과 염원은 오직 아들, 아들의 성공뿐이다. 법대에 진학한 로망은 자유를 만끽하지만 곧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공군 조종사로 지원을 하고 마침내 훈장까지 받는다. 소설가로도 이름을 알린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엄마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그는 화려한 업적 속에서도 고뇌와 번민에 시달린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엄마의 뜨거운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쓴다. 소설 '새벽의 약속'이다.

불같은 인생을 살다간 로맹 가리 모자의 이야기는 강렬했다. 두 시간이 짧을 만큼 흡입력 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연기파 배우 샤를롯뜨 갱스부르와 피에르 니네이, 두 배우의 열연 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고 나자 마음이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들을 향한 그 지독한 사랑은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광기와도 같은 그 사랑은 외교관으로 작가로 성공하게 한 동기이자 채찍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빛인 동시에 어둠이었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그를 더욱 복잡하고 고뇌에 찬 인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로맹 가리는 평생 그 사랑에 갇혀있었던 것은 아닌지. "너는 외교관이 되고, 작가가 될 인물이야"라고 외치지만 정직과 진실, 사랑의 고귀함 같은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성공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못한 셈이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토록 화려한 이력을 뒤로 한 채 결국 로맹 가리는 자살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영화에서도 암시된다. 한물간 작가인 줄 알았던 노년의 로맹 가리가 실은 '자기 앞의 생'을 쓴 촉망받는 작가 에밀 아자르란 사실은 또 어떤가. 그가 죽은 후에야 같은 사람임이 밝혀져 프랑스 문단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는 정말 비밀스럽고 복잡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천재 작가 혹은 예술가들의 복잡다단한 삶을 들여다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평범한 삶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괴롭고 아픈 삶의 여정이 자양분이 돼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서 행복했는가. 꿈을 이룬 이후에 그토록 불행하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 말은 평범한 이의 자기 위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되, 꿈을 이룬 후 어떻게 살 것인가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것은 지금 현재, 내 삶의 태도와 맞물려있는 것이리라. 그토록 바라는 성공은, 그 꿈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말이다. 한 편의 영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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