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 문옥주 할머니와 모리카와 마치코...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탄생까지 '두 여인의 아름다운 동행'

  • 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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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3   |  발행일 2021-10-13 제4면   |  수정 2021-10-13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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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옥주 할머니.

올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임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공개 석상에서 이뤄진 국내 위안부 피해자의 최초 증언이었다. 두 번째 신고자는 문옥주 할머니였다. 같은 해 12월2일 대구에 거주하던 문 할머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전신)에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알렸다. 두 할머니가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먼저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증언은 또 다른 증언으로 이어졌고, 240명 피해자가 등록했다. 대구·경북에는 문옥주 할머니를 포함, 총 27명이 위안부 신고를 했다. 또 1997년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발족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문옥주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증언)를 남겼고, 일본인 모리카와 마치코씨는 문 할머니의 평전을 발간했다. 서혁수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문옥주 할머니는 불행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슬기롭게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연구자인 모리카와씨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두 사람의 발자취가 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할머니의 증언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를 다음 달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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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7월9일 문옥주 할머니가 걸었던 길 재구성.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권상구 시간과 공간 연구소 상임이사 감수>

◆1942년 7월9일

문옥주 할머니는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 대구에서 숨을 거뒀다. 증언록 등에 따르면, 문 할머니는 18세였던 1942년 7월9일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조선인 업자의 말에 속아 대구에서 미얀마로 끌려갔다.

'7월9일'이란 날짜를 잊지 않은 것은 다음날이 바로 부친의 제삿날이었기 때문이다. 문 할머니는 8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 오빠, 남동생 네 식구가 가난을 견디며 생활했다. 그러던 중 일본군 식당에서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식당에서 일하면 굶지 않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먼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문 할머니의 증언은 보다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대구를 떠나던 날 아침 앞산 안지랑 목욕터에서 몸을 씻으며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떠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오빠는 징용에 붙들려간 뒤로 일본 규슈 탄광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지 일 년이 넘도록 기별이 없었습니다. 하필 아버지 제삿날에 집을 나가게 되다니…. 나는 죄책감과 설움이 복받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출국을 위해 문 할머니는 부산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 대명동에서 대구역까지 2시간 남짓 거리를 걸어야 했다. 문 할머니는 "대구역은 몹시 붐비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쨍쨍 쏟아지는 광장에는 소·중학생 수백 명이 줄지어 늘어서 히노마루(일본 국기) 깃발을 흔들며 군가를 합창하고 있었습니다. 출정 군인을 환송하기 위해 동원된 군중이었습니다"고 회상했다.


일본인 모리카와씨, 20여년간 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 노력
문옥주 할머니와 인연맺고 증언 청취·기록위해 대구 18번 방문
문 할머니 사후엔 미얀마서 14개월간 증언 고증작업 이어가

'문옥주, 미얀마전선 방패사단의 위안부였던 나' 등 평전 발간
"아버지 제삿날 끌려갔다" 등 진상파악 위한 날짜·상황 정확
내달 대구서 두 사람 발자취 담은 일본군 위안부 기획전 예정



◆참혹한 위안소 생활

부산역에 내린 문옥주 할머니는 갑을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마쓰모토라는 조선인 업자의 인솔에 따라 부두에 갔을 때 이미 150명 정도의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목적지에 따라 그룹이 나뉘었다. 2013년 발간된 '일본군위안소 관리자의 일기'를 보면, 문옥주 할머니가 부산에서 동남아시아로 떠났던 날과 '4차 조선인 위안단' 출국 일정이 동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달이 넘는 항해를 마치고 8월20일 문 할머니는 미얀마 랑군(양곤)에 도착했다. 도착해서야 단순 취업이 아닌 일본군 위안부로 군부대에 배치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트럭을 타고 다시 만달레이로 이동했고 '다테 8400사단' 부대 소속이 됐다.

위안소 생활은 참혹했다. 10칸으로 나눠진 내부는 가마니로 쌓은 칸막이가 만들어져 있었고, 각 방에는 이불과 베개만 놓여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군인들이 찾았다. 하루 최소 30명, 많으면 70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7~8개월이 지나고 최전선인 아캬브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함께 생활하던 동생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본군이 패배를 거듭하면서 위안부들 역시 이동이 잦아졌다. 산맥을 넘어가던 중 주변 민가에 위안소를 만들기도 했다. 아캬브 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폭격이 이어졌다. 포탄의 파편이 허벅지에 박히는 부상을 입기도 했고, 배에 타려다 물에 빠져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다.

마지막 행선지는 방콕이었다. 육군병원에서 위안부는 간호부 일을 하기도 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은 패전을 선언했고 조국은 광복을 맞았다. 3개월이 지나서야 문옥주 할머니는 그리던 고향 대구에 돌아와 어머니를 만났다.

문 할머니는 "귀국선에는 조선인만 1천명 정도 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군인, 군속, 위안부, 민간인들로 남자가 많았습니다. 여자들은 거의 위안부였는데 같은 위안부라도 랑군 등 도회지에 있던 사람들은 얼굴색이 좋았는데 우리들은 꼼짝없는 거지꼴이었습니다. 그래도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서로 붙잡고 울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모리카와씨
2019년 3월 모리카와 마치코씨가 대구 중구 희움일본군 위안부역사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문옥주와 모리카와의 길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이 상세하게 기록된 것은 위안부 문제 연구가이자 작가로 활동했던 '모리카와 마치코'씨의 노력 덕분이다. 후쿠오카 출생인 그는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했고 퇴직 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 소유의 우편저금 예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찾아주는 과정에서 문옥주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모리카와씨는 할머니의 증언을 채록하기 위해 3년간 대구를 18번 방문했다. 비행기 대신 후쿠오카에서 배를 탔고, 부산에서 기차로 환승해 대구역에 내려 할머니와 만났다.

1996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생전 행적을 찾기 위해 미얀마로 향했다. 14개월간 미얀마에 머물면서 답사 등 할머니의 증언을 고증하는 과정을 거쳐 '문옥주, 미얀마(버마)전선 방패사단의 위안부였던 나'라는 제목의 평전을 펴냈다. 2005년에는 시민모임과 함께 한국어 판인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를 발간하기도 했다. 모리카와씨는 운명을 달리한 2019년까지 20여 년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최근 시민모임은 할머니의 증언 및 연구자료를 토대로 부산으로 떠나던 날 문옥주 할머니가 걸었던 길을 발굴했다. 희움역사관, 중부경찰서, 대구역 등 주요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모리카와씨가 문옥주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대구를 찾았을 때 지났던 길과 맞닿아 있다.

서혁수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가장 정확한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이 두 사람의 인연으로 탄생했다. 문옥주 할머니의 슬픔이 시작된 길, 모리카와씨와 함께한 치유의 길이 겹친다. 두 사람은 안타깝게도 이제 고인이 됐으나 조선인과 일본인이 식민지 시대 아픔을 넘어 만든 역사의 증언은 남아 후대에 전해질 것"이라고 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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