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카페로드] 온 더 레일(On the rail)..."칙칙폭폭~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사람 대신 기차가 서빙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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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05   |  발행일 2021-11-05 제35면   |  수정 2021-11-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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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운영하던 기존 닭백숙집을 과감하게 부수고 모형 기차가 직접 서빙을 해주는 기차를 주제로 한 베이커리카페 '온더레일'. 기차는 주방을 출발해 주문한 테이블에 메뉴를 실어주고 본 역으로 되돌아온다. 걸리는 시간은 모두 40초.

대구 달성군 가창면은 최정산이 있어 단위면적당 상당히 깊숙한 계곡을 품을 수 있게 됐다. 대구텍 정문 앞 삼거리에서 팔조령으로 뻗는 국도. 용계동을 지나 냉천, 그리고 대일리 방면으로 가면 좌우는 의외로 산세가 우뚝하다. 대일리에서 좌회전해 상원리로 접어들면 단산지 언저리 들판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사방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숨겨진 비경의 한 조각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기자는 봄철 그 언저리에서 봄나물 무침을 위해 소루쟁이를 채취하거나 잠시 캠핑 의자에 앉아 멍 때리기를 즐긴다.

이 비경을 무척 좋아한 5명의 화가가 있다. 불이 들지 않는다는 깊고 깊은 상원리 계곡에 처음 입곡한 화가 김일환, 그는 대일리~단산리~상원리로 연결된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풍경의 힘을 일찌감치 발견했다. 그 다음은 우록리에 진을 친 박중식, 뒤에는 권기철(현재는 팔조령 옛길 초입으로 이전), 이태현, 남춘모 등이 가세한다.

가창면 명물 식당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유지하고 있다. 닭 요리가 지배적이다. 닭백숙의 양대 산맥은 단연 '큰나무집'과 '토담집'. 큰나무집은 한강 이남 최강 궁중닭백숙 전문점으로 자릴 잡았고, 토담집은 옻닭 하나로 미식가의 입을 사로잡았다. 한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파워풀한 닭백숙 촌으로 불렸던 냉천유원지 상가는 성주식당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사라져버렸다. 전성기에는 쌍바위, 성주식당, 버들집, 찬샘집, 높은집, 청수장, 냉천장 등 7곳이 운집해 있었다. 스파밸리 상권과 맞물려 냉천 푸드타운이 형성되면서 닭백숙 촌은 지역민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이밖에 '묵쳐 먹고 가는 집'의 별난 묵, 유자 먹인 장어, 지방도를 라이딩하는 자전거족에게 잊을 수 없는 맛을 선사해주는 '세명식당'의 묵은지 곁들인 돼지국밥. 용계리 '올드로드'는 LP 비어레스토랑스타일인데 '더치오븐치킨'으로 입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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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크루와상과 몽블랑, 아인슈페너.

블록·피규어·미니어처 좋아하던 남자
백숙집을 전망 좋은 통유리 카페로 개조
모형기차 직구…40초 서빙시스템 구축
커피 직접 로스팅하고 빵도 구워내

◆기차로 서빙하는 이색 카페

언젠가부터 밥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커피를 불러내야 직성이 풀린다. 가창면에도 3년 새 이런저런 핫플 카페가 피어났다. 최정산 주변 최강 핫플 카페는 단연 문 닫은 오리농원 가든을 베이커리카페로 리모델링 해서 초대박을 낸 '오퐁 드 부아'다. 그리고 근처 최정산 군부대 옆 목장 카페 같은 '대새목장'도 다크호스.

주리 계곡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산길을 올라간다. 군부대 가는 길, 주리 먹거리 타운 가는 길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산길 초입 오른편에 '온 더 레일(On the rail)'이라 적힌 간판이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이 카페.

전희재(34). 계명대 식품가공학과를 나온 그는 2000년 그 언저리에 '시골농부'란 백숙과 불고기 전문 식당을 차린 부모를 위해 2019년 8월 신개념 카페를 오픈한다. 그는 어릴 때 블록, 피규어, 모형 장난감, 미니어처 등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다. 덕분에 각종 기계와 기구를 조작하는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부모를 도우면서 요리에 대한 감각, 신재료 갈무리 하는 법 등도 체득하게 된다.

일반 식당 업무는 카페와 비교해 몇 배 노동강도를 갖고 있다.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부모도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아 새로운 형태의 가게를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 시절 외식업 전문 사업가의 꿈을 꾼다. 첫 아이템도 미리 구상한다. 기차가 직접 커피와 빵을 직접 서빙해주는 신개념 서비스다.

모형 기차를 국내에선 구입하기가 어려웠다. 7년 전 1년 일정으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 친해진 독일 친구한테 도움을 많이 받는다. 유럽에선 꽤 많이 유통되는 모형 기차, 그걸 구동하는 법, 수리에 필요한 부품 등도 스스로 알아낸다.

일단 해외 직구를 통해 모두 10대의 모형 기차를 구입했다. 홀 중앙에 최연장 10곒 미니 레일을 가설하고 좌우에 테이블 8개를 놓았다. 기차 위에 주문한 메뉴를 탑재하고 버튼을 눌러준다. 기차는 로봇처럼 지정된 번호의 테이블에 도착한다. 메뉴를 내리면 자동으로 출발선으로 되돌아 온다. 걸리는 시간은 총 40초. 개업 초기에는 20초, 이어 30초, 급한 것 같아 결국 40초로 설정하게 된다. 모형 기차라 하지만 꽤 고가다. 기차 서빙은 우리와 달리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유행하고 있는데 그는 그걸 재빨리 사업으로 벤치마킹한 것이다.

기존 백숙집 면적은 99㎡(30평) 남짓, 이를 카페로 리모델링하면 그림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모두 부수고 신축한다. 사방이 최정산 자락, 그 동쪽에 늘 풍광이 변하는 주동지가 있다. 하절기 부레옥잠 머금은 돌확 같은 이미지다. 계곡 사이를 파고드는 근교 시골길의 호젓함도 실시간으로 만끽할 수 있게 하려면 층고는 꽤 높게 설정해야 된다. 3면 벽체는 모두 장방형 통유리창으로 장착했다.

기차를 주제로 한 카페, 당연히 카페 입구에도 기존 레일과 같은 규모로 가설해야 된다. 하지만 철도청 재산이었다가 일반에 엄청나게 팔려나간 레일과 침목은 과수요 때문에 이젠 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다행히 경남 모처에서 15곒 분량의 레일을 확보할 수 있었다.

커피는 직접 로스팅룸에서 볶아 낸다. 볶은 콩은 보름 내 소진시키는 걸 원칙으로 한다. 아메리카노(4천800원)는 브라질·과테말라·에티오피아를 혼합해 사용한다. 매대에 깔리는 빵 종류는 대왕크루와상(4천300원), 몽블랑(4천300원), 갈릭버터바게트(5천800원) 등 20여 종.

그는 빵 만드는 것도 혼자 감당한다. 한눈에도 용암 같은 열정을 가진 청년 같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미소는 커피향보다 더 진했다. 가창로 93길 52. 휴무는 수요일.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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