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실종된 ‘중국제조 2025’의 행방을 추적하라

  •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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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08 15:39  |  수정 2022-01-25 14:06

2015년 시진핑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2018년부터 시작된 미국 트럼프정부의 무역공세와 2019년 화웨이 압박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던 ‘중국제조 2025’가 유야무야된 것일까.

중국은 당시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2014년까지 5세대 이동통신시스템(5G), 산업용 로봇, 인공지능(AI), 신에너지 자동차 등 차세대 첨단산업을 세계 1위로 도약시키겠다고 공언했다. ‘Made in China 2025’를 통해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고 4차산업혁명시대에 기술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였다. 만약 중국이 핵심기술과 플랫폼을 선점하게 된다면 중국의 시대(Pax-Sinica)를 열게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트럼프정부의 맹공을 받아 어느 순간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후 중국 2025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어찌 되었을까.

국제정치학자 미어셰이머(John J. Mearsheimer)의 말처럼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 무정부 상태의 국제환경에서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면, 중국 역시 소득수준 1만 달러, G2의 지위에 오른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강한 힘을 추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일시적으로 미국을 속이는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기만하고 바다를 건넌다는 말로 전력이 약한 약팀이 상대의 심리적 맹점을 교묘히 이용해 이변을 일으키는 상황) 전략을 위해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1980년대 중국의 대외정책을 일컫던 용어)를 내세우겠지만 첨단기술시대의 핵심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중국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지위를 보면 중국의 전략이 허언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전체 제조업에서 첨단기술 관련 수출품의 비중은 약 30%에 달한다. 첨단기술제품 수출액도 2007년 3,426억 달러였던 것이 2017년에는 6,542억 달러로 2배나 성장했다. 전 세계 첨단기술제품 수출부문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7.9%인 것을 감안하면 약 26.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위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중국이 기술패권 추진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계기는 2013년 5G 상용화 및 기술표준 개발을 위한 ‘IMT 2020’프로젝트였다. 당시 중국정부는 전세계 5G시장 제패를 위해 공업정보화부·국가발전개혁위원회·과학기술부 등 3개 정부 부처와 차이나모바일·차이나텔레콤·화웨이·ZTE 등 민간기업, 그리고 학계가 참여하는 워킹그룹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에 에릭슨·노키아·삼성 등의 인프라 업체와 퀠컴·인텔 등 칩셋(chipset) 업체 등을 워킹그룹에 추가하여 해당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결과 미래 기술패권을 좌우할 첨단기술인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재생의료, 자율주행, 블록체인, 사이버안보, 가상현실(VR), 리튬이온전지, 드론, 전도성 고분자 등 10개 분야 특허출원에서 중국이 9개 분야에서 수위를 차지할 정도의 성과를 얻었다.

핵심기술인 5G는 초고속, 초연결, 저지연, 연결밀도, 에너지효율 등을 포함하는 13개 핵심기술 즉 5G 표준필수특허(SEP)의 보유 여부에 따라 수준이 결정되는데 2019년 기준으로 중국이 5G SEP의 34%, 한국은 24%, 미국과 핀란드가 각각 14%를 차지했다.

기업으로 보면 5G 상위 10대 기업 중 중국의 화웨이가 1,554건으로 가장 많은 SEP를 보유했는데, 특히 기지국 설치 분야에서는 경쟁사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많은 특허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제조 2025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상태에서 중국정부는 2019년부터 5G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3대 이동통신사와 중국광전을 포함한 4개 사업자에게 시범 서비스용 주파수를 할당했고, 2020년 기준 18개 도시에서 5G시범 사업을 추진했다.

중국은 확보된 5G기술을 제조, 에너지, 공공안전, 의료, 교육 등 19개 업종의 4,000여개 업체로 보급해 실용화했다. 대표업체 화웨이는 2020년 기준 국내 기지국 수가 71만8,000개에 이를 정도의 거대 통신망을 구축했고, 5G 통신장비의 해외수출을 통해 국제적인 이동통신망 구축에 나섰다.

이러한 중국의 5G 확대가 파죽지세로 진행되자 미국이 긴급 대응했다. 2018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 수장들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 국민은 ZTE와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공개 경고했다.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에게도 정보 보호라는 명분을 들어 중국장비의 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ECRA)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중국반도체, 5G네트워크 장비, 원자력 슈퍼컴퓨터, AI 및 감시카메라 장비, 사이버보안, 로봇관련 기업 등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중국기업들에 대한 리스트를 공개하고 수출규제를 실시했다.

2021년 국방수권법(NDAA)에는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의 5G기술을 사용하는 국가에 미국의 군사장비와 군사력을 재배치하는 것을 재검토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2021년 11월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상하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보안장비법’을 마련하고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업체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사실 미국의 강경대응 이면에는 2018년 시행된 '중국국가정보법'이 존재한다. 국가안보와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제정했다고 하지만 정보업무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설정돼 있고, 정보기관의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시킨 것이라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동법 제7조에 외국기업들도 자국기업들과 함께 정보활동에 협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서 중국불신의 기폭제가 되었다.

미국이 왜 화웨이를 표적으로 삼았는지를 알려면 화웨이를 보면 된다. 화웨이가 가진 첨단기술 분야의 능력도 이유가 되겠지만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가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이라는 점, 기업명칭인 화웨이(華爲)도 “중화민족에 미래가 있다”는 중화유위(中華有爲)를 줄인 말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런회장은 마오쩌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으며, 그가 만든 화웨이 기본법에도 ‘조국’이 최우선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말 그대로 화웨이는 민간기업이 아니라 지분의 99%를 노조가 가진 중국공산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국영기업인 것이다.

결국 미국 정부의 ‘중국제조 2025’ 제압은 실패했다. 바이든 정부가 멍완지우 부회장을 풀어준 것이 그 방증이다. 1997년 홍콩을 반환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처럼 ‘힘’의 논리에 어쩔 수 없이 밀리게 된 것이다. 트럼프정부가 억눌렀던 ‘중국제조 2025’는 유야무야된 것도 아니고 실종된 것도 아니었다. 마치 들불처럼 조용하고 소리 없이 번지고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오히려 중국제조 2025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지구촌을 잠식하고 우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과 선택 그리고 대응이다. 후흑학의 대가인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농간에 속수무책 끌려가서는 안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6.25전쟁 종전선언을 거래하려는 어설픈 오징어 게임에 매달려서도 안된다. 이미 우리는 천안문 망루에 함께 올랐지만 가차없이 사드보복을 가하는 중국의 냉정함을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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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도 중국제조 2025 완성을 위해 기술자립을 위한 화이트 리스트를 작성해서 우리 기업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시기이다. 이 중차대한 순간에 자칫 잘못된 외교적 수를 두게 되면 장래에 기술패권을 장악한 중국의 하청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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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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