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대구 육개장~따로국밥 연대기(1)

  •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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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24   |  발행일 2021-12-24 제33면   |  수정 2021-12-2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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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에 국수를 단 육국수.

이번 회에는 개장국(보신탕)에서 비롯된 한국 고유의 탕 문화가 '탕반의 고장' 중 하나인 대구에 와서 어떻게 대구탕(대구식 육개장)과 따로국밥으로 분화했는지를 추적해 본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한국의 식문화는 아주 단출했다. 특히 장터나 주막의 주메뉴는 거의 '장국밥' 하나로 압축된다. 국밥은 한자어로 '탕반(蕩飯)'. 국과 밥이 한 세트로 묶인 거다. 한 세기 전만 해도 뚝배기에 찬밥을 넣고 그걸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고 마지막에 미리 썰어놓은 고기를 고명으로 올려준다. 반찬이라 해봐야 간 맞추는 간장과 깍두기가 전부다. 지금처럼 밥 따로 국 따로 형태는 그 시절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외면당했다. 소고기 또한 너무 귀했기 때문에 소고기 국밥, 육개장 등은 서민이 먹기 힘들었고 대다수 시래기·우거지국에 만족했다.

한국 탕반 문화의 원류 '보신탕'
대구경북, 20년전 보신탕 특구 번창
예로부터 삼복에 먹는 절식 개장국
소고기 '肉'+보신탕 '개장' 육개장
서민이 먹었던 개장국에서 유래

한국 탕반문화의 원류는 보신탕이다. 지금은 동물보호단체 등 때문에 보신탕 문화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경북은 한국 최강 보신탕 특구로 군림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개(犬)를 식용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개고기 식용 흔적보다 애완견에 관한 역사적 문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조선 중기의 문신 조경(趙絅·1586~1669)의 시문집 '용주유고(蓉洲遺稿)'에 애완견 관련 한 구절이 있다. '宗太守下朴狗短歌(종태수하박구단가)'라는 재미있는 애완견에 대한 시다. 하박구(下朴狗)는 뼈대가 굵고 털이 북실북실한 개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자그마한 품종을 '발바리'라 하는데 시에 잘 묘사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도 개고기를 상당히 좋아한 것 같다. 그는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라고 했다. 다산 시문집 제20권에 보면 초정 박제가가 개 삶는 법을 소개한 대목이 있다. "우선 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매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서 바로 맑은 물로 삶는다. 그리고는 일단 꺼내놓고 식초·장·기름·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난다"고 했다.

개고기를 주재료로 끓인 국을 '개장국'이라 한다. 이 개장국을 '백호전서(白湖全書)'에서는 '견갱(犬羹)', '무명자집(無名子集)'에는 '가장(家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개장(狗醬)'이라 했다.

흥부전에도 개장국이 나온다. 흥부는 워낙 가난한 탓에 자식들에게 옷을 다해 입힐 수 없다. 한 놈이 "애고 어머니, 우리 열구자탕에 국수 말아 먹었으면…" 하자, 또 한 놈이 "애고 어머니, 우리 벙거짓골 먹었으면…" 하고, 거기에 또 한 놈이 "애고 어머니, 우리 개장국에 흰밥 조금 먹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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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이 절정기를 맞을 때도 승려 등 일부는 고기 대신 갖은 채소류에 된장·고추장·고추기름 등을 넣어 '채개장'을 해먹었다. 사진 속 음식은 김영복 원장이 직접 조리한 채개장.


조선 정조 1년(1777) 이찬을 추대하려 역모를 꾀하던 정조 시해 미수사건 당시의 주모자 홍상범 일당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정흥문이란 자의 자술서에 개장국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한양에 개장국을 상시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개장국을 복날에만 먹은 게 아니다. 봄철에 선비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향음례'(鄕飮禮)에서도 개장국을 대접했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는 철 따라 별미가 제공되었는데, 초복에는개장국 한 그릇, 중복에는 참외 2개, 말복에는 수박이었다.

충남 부여에 가면 상중(喪中)에 개장국을 끓여 손님을 접대한다. 그러나 통상 개장국은 삼복에 먹는 절식(節食)이다. 여기서 '복(伏)'이란 말은 '엎드려 숨는다'는 뜻이다. 하지(夏至) 후의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 하지 후의 네 번째 경일이 중복, 입추 뒤의 첫 경일이 말복이 된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개고기를 파와 함께 푹 삶은 것을 개장이라고 한다. 여기에 닭고기와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을 만들어서 산초가루를 치고 흰밥을 말면 시절음식이 된다. 이것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도 물리치고 보신도 된다"라고 소개했다.

조선 정조 15년(1791) 청나라 연경으로의 사행단을 따라간 김정중이 쓴 '연행록(燕行錄)'에서 "중국인들은 비둘기·오리·거위 등을 먹지만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중국 베이징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 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대구 육개장~따로국밥 연대기(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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