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노인 일자리 사업 진단] "취업 못해 우울감 빠져…노인 일자리 사업은 건강 증진사업"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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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4   |  발행일 2022-01-24 제3면   |  수정 2022-01-2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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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서부정류장역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황광찬(80·대구 남구)씨가 기관사에게 출발해도 좋다는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가운데 생산연령인구 감소, 노인 빈곤 등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노인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1'에 따르면 2060년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대비 43.3% 감소할 전망이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생산가능인구 감소 폭이 가장 컸으며, OECD 평균(-9.6%)과 비교해도 차이가 많았다. 정부와 지자체 모두 생산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노인에게 생산적인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 노인 일자리 확충과 동시에 질적인 성장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업 의지 있는 어르신 '일할 수 있는 구조' 만들어야

◆"일자리 못 구해 우울감"

노인 일자리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노인 일자리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올해 일자리 사업 예산 31조 1천331억원에 따른 고용 정책 과제를 보고했다.

고용부는 노인, 장애인, 청년 등 고용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총 105만6천여 개의 직접 일자리 사업을 시행한다. 노인 일자리는 84만5천여 개다. 지난해보다 4만9천여개 증가한 수치다. 대구시 역시 노인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놓았다. 노인 일자리 3만개, 중장년 재도약 일자리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안전망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에도 노인들의 체감 일자리는 많지 않다. 노인들은 더 많은 일자리를 원했다. 23일 한국인력노인개발원이 발표한 2019~2022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지역 노인 공공 일자리 수는 2만8천430명이지만 실제 지원자는 4만605명에 달했다.

대구중구노인상담소 관계자는 "어르신들과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공공 일자리에 떨어지거나 취업을 하지 못해 우울감과 괴로움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상당히 많다"며 "노인 일자리는 노인 복지의 한 부분을 확실히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일을 할 수 있고 취업의 의지가 있는 어르신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사업 참여 어르신 월평균 7만원 의료비 절감

◆"일자리로 자신감·성취감 느껴"

정부의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구지역 노인들은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적합한 일자리 발굴도 호소했다.

1년 반 동안 시니어 컨설턴트 직무를 하고 있는 백봉흠(69·대구 달서구)씨는 "현장에서 노인분들과 있다 보면 일하고 싶은 노인분은 많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없고, 원하는 직무에 대한 구직 활동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자주 봤다"면서 "노인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나도 은퇴한 후 보내는 시간이 비생산적으로 느껴지며 삶이 무료하고 재미가 없었다. 취업을 통해 다시 한번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임금을 받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성취감과 보람이 느껴져 현재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

노인 일자리를 통해 건강이 좋아졌다는 연구도 있다. 실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2021년 노인일자리사업 정책효과 분석 연구'에 따르면 사업에 참여한 노인이 참여하지 않은 노인보다 월평균 7만499원의 의료비를 절감한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4년째 대구 서부정류장 지하철역에서 지하철 안전지킴이로 근무를 하고 있는 황광찬(80·대구 남구)씨는 "집에만 있으면 하루 종일 무력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일자리를 가지면 규칙적인 생활, 사람들과의 교류 등을 통해 훨씬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일각에서는 노인 개개인에 맞는 전문성을 띤 직무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구 남구에서 4년째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유현애(여·66·대구 남구)씨는 "현재 정부·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는 쓰레기 줍기 등의 단순 노동이 많다"면서 "노인들은 살아온 세월이 오래된 만큼 조금만 교육을 거치면 누구보다 전문성을 가질 수 있다. 노인 개개인별로 관심 있는 일자리가 다른 만큼 수요에 맞는 다양한 직무가 필요하다"고 했다.

생계·봉사형 구분 배치해야…채용기업 지원도 절실

◆"세금 낭비 지적에 힘 빠져"

노인들의 일자리 확충 요구가 이어지면서 노인을 고용하는 일자리 기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구지역 한 시니어클럽 관계자는 "노인 일자리의 수요과 공급이 계속 늘어나면 기관에서는 노인들이 근무할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신규 사업 확대 등이 필요하지만 매년 인원이 늘어날 때마다 어르신들을 한정된 장소로 보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나이가 많고 활동 능력이 떨어지는 어르신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일각에선 '보기엔 노는 것 같은데 왜 세금 낭비하냐'는 부정적인 민원이 들어올 때가 있어 힘이 빠진다"고 했다.

사기업의 노인 고용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노인 고용의 필요성 만큼이나 산재처리, 건강 등 단점도 있기 때문에 채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 노인 2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는 대구지역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최근 몇 년을 함께 근무한 어르신 한 분이 업무 능력에 지장이 생겼고, 민원이 발생해 부득이하게 내보냈다. 노인 고용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의 떨어지는 건강 상태와 인지 능력으로 인한 업무 능력 저하, 노동법 강화, 산재 등으로 노인을 고용하면 업체가 손해를 보는 구조라 고민이 많다"면서 "정부·지자체가 노인을 채용했을 때 기업이 매력을 느낄만한 지원책을 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자리 참여 목적 파악해야"

전문가들은 노인 일자리의 단순 확충보다 노인들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질적인 성장이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엽 대구한의대 교수(노인복지상담학과)는 "일하고 싶은 노인은 많고 노인 일자리 기관이 갖춰야 할 제도와 환경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지자체는 우선 노인들의 일자리 참여 목적을 생계형·봉사형 등으로 분류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노인들을 배치해 근무를 시키면서 지속적으로 노인 일자리의 질적인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에 대한 홍보의 중요성도 제기됐다. 대구중구노인복지관 관계자는 "노년층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이 좁기 때문에 일자리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노인 일자리에 대한 지속적 맞춤형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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