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세인트 빈센트' (데오도르 멜피 감독·2014·미국), 우리 주변의 성인(聖人) 찾기 프로젝트

  • 김은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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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8   |  발행일 2022-01-28 제39면   |  수정 2022-01-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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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변화다. 그 변화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따라오거나 누군가를 만나서 온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리고 변화는 관객에게 감동을 안긴다. '세인트 빈센트'는 이런 만남과 변화가 있는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다.

열 살 올리버는 이사 온 첫날, 까칠한 옆집 할아버지 빈센트를 만난다. 빈센트는 괴팍한 성격 탓에 모두가 싫어하는 인물이지만 올리버는 재미있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올리버의 베이비시터가 된 빈센트는 싸우는 법을 비롯한 인생의 기술(?)을 가르친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도박(경마),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 빈센트지만 올리버는 '주변의 성인(聖人) 찾기' 학교 프로젝트에서 그를 성인으로 발표한다. 빈센트에게는 성인으로 불리어도 좋을 만한 인생의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히든 피겨스'의 데오도르 멜피가 각본을 쓰고 연출했는데 여기에는 감독 자신의 경험이 들어있다. 자신이 돌봐주던 조카가 학교 프로젝트에서 자신을 성인으로 인정해 준 것에서 시작되었다. 시나리오를 써놓고 빈센트 역에 빌 머레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6개월 이상 공을 들였다고 한다. 독특한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 배우 빌 머레이의 연기는 고단하고 복잡한 삶의 애환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영화를 보고 나자 한 편의 시가 떠올랐다.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고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 했다.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라고. 그의 표현대로 '바람만이 더듬어볼 수 있는 마음'을 열 살 소년이 어떻게 알았을까? 모두가 싫어하는 빈센트를 따라다니며 거친 겉모습에 숨어있는 내면의 성인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실은 올리버도 그만큼 외로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소년에게 필요했던 아버지의 자리를 빈센트가 내주었기 때문이다(빈센트의 어린 시절도 아마 올리버만큼 외로웠을 듯하다). 또한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순수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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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의 빈센트 역을 빌 머레이는 마치 평소 모습인 듯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마지막 장면, 밥 딜런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긴 여운을 남긴다. 곡명은 '폭풍으로부터의 은신처(Shelter from the storm)'인데 제목도 따라하기도 어려운 이 노래를 편안하게 흥얼거린다. 폭풍 같은 인생에서 은신처를 찾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다.

'귀를 위한 시'를 쓰는 밥 딜런도 바람만이 대답을 알고 있다('Blowin' in the wind')고 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지'를. 사람다운 것은 무엇일까? 외롭고 쓸쓸하지만 편하고 조용한 나만의 삶을 살 건지 귀찮음과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함께 하는 길을 갈 건지는 이 영화 속에 답이 있다. 오늘도 바람만이 아는 인생의 답을 더듬어보기 위해 한 편의 영화를 본다.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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