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전문기자의 푸드 블로그] 부산 자갈치시장 연탄 별미 (상)…자갈치 뒷골목 해안길 점포마다 내뿜는 꼼장어 구이 불내음

  • 이춘호
  • |
  • 입력 2022-02-18   |  발행일 2022-02-18 제35면   |  수정 2022-02-18 08:54

1
자갈치 뒷골목은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술로 목을 축이던 맥줏집과 작붓집으로 흥청대던 곳이었다. 많은 선원이 지금의 양곱창 골목에 있던 작붓집에서 돈을 탕진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전후 수산업 경기가 안 좋아지자 이 골목은 양곱창집으로 하나둘 업종을 변경해 오늘에 이른다. 90년대 들어 엔고(円高) 시대가 무르익자 일본인의 '기생관광' 때 빠지지 않고 들르던 곳이 양곱창집이었고 꼼장어골목은 기장에서 잡힌 꼼장어가 동해남부선 철로를 따라 도심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사진은 꼼장어골목 전경.

연탄꼼장어 골목
오랜 세월 식문화가 반죽한 감성 풍광
수족관서 꺼내 껍질 벗긴 후 석쇠 초벌
화근내로 피어오르는 육즙, 침샘 자극
양념과 로스구이 반반 불판으로 옮겨져
소주 한잔 곁든 고소한 맛에 폭풍 흡입


내게 부산은 '제2의 고향' 이다. 젊은 시절, 세상의 끝이 잘 보이지 않으면 훌쩍 대구역으로 가서 부산행 완행열차를 탔다. 최백호의 노래 '부산에 가면'과 같은 느릿한 템포로 부산역 근처 선창에 우두커니 앉아 종일 선창의 비린내의 지문을 화두처럼 품길 좋아했다. 하지만 그때는 부산의 식문화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40년이 지나자 조금씩 부산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인년 봄기운이 스멀거렸던 지난 주말, 문득 부산 자갈치시장의 식문화를 탐구하고 싶어 동대구역으로 가서 무궁화 열차를 탔다.

부산의 식문화는 대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국수광'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돼지국밥의 메카, 또한 '연탄이 키워낸 별미'로 불리는 꼼장어와 양곱창 거리가 대구 칠성시장과 북성로 연탄석쇠돼지불고기와 안지랑시장 양념곱창거리와 비슷한 포스를 유지하고 있다.

부산경남권 음식연구가로 유명한 푸드칼럼니스트 최원준 시인을 불러내 밤이 이슥하도록 자갈치시장을 돌며 두 컷의 연탄불을 베이스로 한 별미기행을 챙겼다. 꼼장어와 양곱창.

◆양파 속 같은 자갈치시장

부산보다 더 유명한 건 자갈치시장. 그 시장보다 더 유명한 랜드마크는 '억척 인생'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갈치 아지매'. 대구 자갈마당처럼 유달리 자갈이 많았던 자갈치시장. 10개 이상의 존이 군웅할거하고 있다. 빌딩형 시장, 점포형 시장, 포장마차형 시장, 좌판 난전 등이 뒤엉켜 있다. 떼어내 분류할 수 없는 해묵은 실뭉치 같다. 보통 자갈치시장이라면 건물 내에 상인이 들어가 있는 빌딩형 시장을 지칭한다. 종합수산물센터 구실을 하는 신동아시장과 갈매기 비상을 형상화한 통유리창 건물에 들어선 수산시장이 센터라고 할수 있다. 이를 축으로 남항 좌우로 긴 구역이 도열한다. 영도다리 옆 점바치 골목과 맞물린 남포동 건어물종합상가, 온갖 회를 먹을 수 있는 빌딩형 신동아시장 인근 해산물 난전 구역, 그 옆 좁다란 수백미터 해안길 좌우로 200~300개 간이 점포가 도열한 곳이 바로 '연탄꼼장어골목'이다. 바로 옆 블록 신천지상가아파트 골목에 형성된 양곱창골목도 얼추 70여 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과 맞물려 해산물과 채소류·선어 등을 함께 파는 해안시장, 충무로 새벽시장, 그 마지막 지점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고등어를 위판하는 부산공동어시장이 연결돼 있다.

그 시장통로는 칙칙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래 청소하지 않은 연통 내부 같다. 왕창 삭아 내린 기름 범벅의 중식당 환풍기 몰골이다. 그렇다고 그건 '흉터'가 아니다. 일종의 부산만의 추억이다. 물성이 아니라 '감성'인 탓이다. 시간이 키워낸 풍광이 아니라 부산만의 식문화가 반죽해낸 자갈치만의 '울림' 아닐까. 우중충하고 비위생적이고 북적대고 소란스러우니 더 반듯하고 현대풍으로 깔끔하게 정비한다면? 왠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 같다.

3
초벌 구이 중인 꼼장어.
꼼양2
불판에 옮겨져 굽히고 있는 양념꼼장어와 로스구이.

◆송림식당에서 만난 꼼장어

오전 11시30분쯤 1세대 자갈치아지매가 터전을 일군 '송림식당'을 찾았다. 건장한 청년 두 명만 앉아도 꽉 찰 것 같은 포장마차 스타일의 점포다. 남항 바로 옆에 몰려 있는 꼼장어집, 대다수 이 점포의 반은 중구청, 나머지는 항만청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 1년에 30만원 정도 임차료를 낸다. 여기는 누구의 공간도 아니다. 생계의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점령(?)한 아지매의 생때 같은 공간이다. 무허가, 무면허 공간, 하지만 몰아내지 못한다. 천막 너머 남항 상공을 나는 갈매기, 정박 중인 배가 보인다. 투박한 목로의자의 발판은 뼈만 앙상한 것 같다. 숱한 발길이 부피의 반을 앗아가 버렸다. 벌겋게 달아 오른 연탄, 그 위에 놓인 불판. 너무 오래 사용해 구멍이 나버렸다. 연탄 불길을 다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올해 68세의 여주인. 그는 39년 경력의 2대 사장이다. 1대는 꼼장어에 일생을 바친 어머니다. 처음에는 '할매집'이란 상호를 가졌다. 현재 삼성프라자 자리에 있던 동명극장 골목에서 난전을 꾸려갔다. 무허가 점포라 늘 단속반을 피해 다녔다. 전두환 대통령이 부산 순시 때 이 장터 상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준 것이다. 그때부터 쫓기지 않으며 장사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1인분 1천500원선. 그런데 이젠 꼼장어가 금장어. 4만원(소)·5만원(중)·6만원(대)으로 가격이 수십 배 폭등해 버렸다. 그 시절에는 소주 반 병, 잔술, 담배도 낱개로 팔렸다.

최 시인이 부산 꼼장어 연대기를 소상하게 설명해준다. 부산 꼼장어의 1번지는 미역과 멸치 등으로 유명한 기장이었다. 기장으로 모인 꼼장어는 부산 도심 깊숙하게 스며든 동해남부선 열차가 없었다면 거대한 '부산꼼장어벨트'가 형성될 수 없었다. 거기서 잡힌 꼼장어는 동해남부선을 타고 해운대, 동래, 온천장, 부전역, 부산역전, 마지막 코스인 자갈치시장까지 번졌다. 역 주변 시장이 주요 유통경로였다. 한창 때는 부산진역~부산역~자갈치가 꼼장어루트였다. 지금은 자갈치에 집중돼 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꼼장어는 존재감이 없었다. 피혁제품을 만들기 위한 껍질만 부산물로 인기였다. 식용이 아니라 '산업용'이었다. 버린 몸통을 가져가 구이로 변주한 게 부산꼼장어 요리의 출발이다.

장어는 크게 민물과 바다 스타일로 나뉜다. 그 명칭이 참 헷갈린다. 정리하자면 꼼장어는 '먹장어'로 불린다. 일본에선 민물장어를 '우나기', 갯장어는 '하모', 붕장어는 '아나고' 로 부른다.

부산 꼼장어는 크게 자갈치시장과 기장을 축으로 한 '짚불스타일'이 있다. 자갈치는 양념이 주종을 이룬다. 기장 선창에서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꼼장어였다. 우연찮게 꼼장어가 짚불에 들어가면서 기장짚불꼼장어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음식은 기장지역의 보릿고개 때 즐기던 구황음식 중 하나였다.

2022021801000364200015092

양념과 로스구이를 반반 시켜 먹었다. 반반으로 분리된 꼼장어가 저기압과 고기압으로 굽히고 있다. 일차적으로 가게 앞 화덕에서 석쇠로 초벌을 한다. 껍질을 벗겨놓았지만 꼼장어의 생명력은 놀랍다. 거의 10시간 정도 살아 있다고 한다. 연탄불과 한몸이 되면서 꼼장어의 육즙이 화근내로 피어오른다. 시장통을 오가는 행인의 침샘을 마구 강타하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폭풍흡입. 그리고 소주 한 잔. 탄력적이고 고소한 육질의 씹힘성! 엄지척! 대구에서 먹던 '냉동 꼼장어' 맛은 당분간 좀 반성을 해야만 했다. 수족관에서 바로 잡아 껍질 벗겨 불판에 올린 꼼장어 구이. 이래서 다들 '부산 꼼장어~'를 연호하는 모양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