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19] 미국 아미시 마을, 기계문명 거부하고 옛날방식 고집하는 종교 공동체

  • 김봉규
  • |
  • 입력 2022-02-21   |  발행일 2022-02-21 제21면   |  수정 2022-02-21 07:56
아미쉬1
미국 일리노이주 아서 지역에 있는 아미시 마을 놀이터 풍경(1996년 11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들이 놀고 있다.
얼마 전 TV를 통해 영화 '위트니스'를 보았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재미가 있어 끝까지 보게 되었다.

헤리슨 포드(존 북)와 캐리 맥길리스(레이첼)가 주연한 이 영화는 1986년 개봉 작품. 부패한 경찰들과 경찰의 살인사건을 목격한 소년, 이를 파헤치는 형사(존 북)의 활약상과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영화의 주 무대가 미국이지만, 현대 문명사회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가치관과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종교 공동체인 아미시(Amish) 마을이다. 그래서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이 영화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더불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1996년 미국 여행 때 아미시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던 터라, 특히 더 각별한 마음으로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자동차·컴퓨터·세탁기 등 사용안해
정착촌 179곳→546곳으로 증가추세
2050년엔 추종자 100만명 이를듯
다양한 색깔의 사람 조화롭게 생활

"현대문명의 도구들 사실은 장애물
가치관 무너뜨리는 마음 유발케해"


영화의 배경인 된 아미시 마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카스터에 있는 마을이고, 내가 방문했던 아미시 마을은 일리노이주 아서(Arthur) 지역에 있다. 미국 아미시 교인들은 펜실베이니아·일리노이를 비롯해 인디애나·오하이오 등에 주로 살고 있다.

11월 중순 일리노이주 패리스(Paris)의 한 농가에서 이틀간 머물면서 주변 지역을 여행했는데, 그중 한 곳이 아미시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보지는 않고 잠시 거리만 둘러보았다. 한 곳에 가니 그네와 시소 등이 있는 놀이터에 여자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수건을 쓴 머리에 치마를 입고 스타킹을 신은 모습이 수녀 복장과 비슷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마차가 서 있었다.

이들은 자동차나 세탁기, 컴퓨터 등을 사용하지 않는 등 현대 기계문명을 거부하며 살아간다. 말이 끄는 마차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고, 농사도 말을 이용하는 옛날 방식을 고집한다. 또한 아미시 사람들은 영혼이 빠져 나가기 때문에 사진도 찍지 않는다고 했다.

2022022101000570300023832
일리노이주 아미시 마을의 마차 정류장 모습.
◆현대 문명 거부하는 공동체

17~18세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기독교의 한 종파다. 아미시 공동체는 1693년 강력한 개혁을 부르짖으며 기존 교파에서 탈퇴한 스위스의 목사 야곱 암만(Jakob Ammann)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아미시 교인들은 유럽의 종교 박해를 피해 300여 년 전부터 '신세계'로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들로,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암만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에도 소수가 있다.

현대 기술문명을 거부하는 이들만의 전통적 생활방식은 1960년대의 반문화 저항세대들이 문명 거부 선구자로 이들을 바라보면서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그들의 전통적인 수제 기술들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들의 오랜 전통인 유기농업이 화려하게 주목을 받으면서 뉴욕시에 식료품점을 오픈하게 되기도 했다.

아미시 교인들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1989년 북아메리카 전역 179개 정착촌에 10만명 정도의 아미시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최근 펜실베이니아의 한 대학교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아미시 사람들 수는 546개 정착촌 33만여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현재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단체에 해당한다. 2050년에는 그 추종자들의 수는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북아메리카 전체의 아미시 사람은 5천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구식이며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알지만, 오늘날 자유로움을 주는 편리한 도구들이 사실은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본다. 자동차와 컴퓨터, 텔레비전 등이 사람들의 삶을 오히려 더 활기를 잃게 만든다고 말한다.

물론 이들도 현대 기계문명을 거부하고 역행하는 것은 그들에게 곤혹스러운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미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고, 아이들은 비밀스럽게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이들은 e메일과 인터넷을 이용한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적 흐름 등이 가장 보수적인 이들 공동체에서도 기술문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 모른다.

아미시 사람들이 현대 기계문명을 거부하는 것은 그 기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그들의 가치관과 문화를 무너뜨리게 하는 마음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기계문명을 대하는 이들의 인식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기계 거부한 노인 이야기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남쪽의 초나라를 돌아보고 진나라로 돌아오다가 밭에서 어렵게 물을 주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땅 속으로 굴을 파고 그 물을 항아리로 퍼다가 밭작물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러니 힘들고 일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자공이 하루에 백 이랑에 물을 줄 수 있는, 힘을 적게 들이고 그 효과는 큰 기계가 있는데 그걸 사용하면 아주 편할 것이라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일하던 노인이 얼굴을 들어 어떤 기계인지 묻자, 자공은 물을 퍼 올리는 용두레라는 기계를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우리 스승에게 들었소만, 기계 같은 것을 갖게 되면 반드시 기계로 인해 꾀를 부리게 된다오. 기계에 사로잡혀 꾀를 부리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런 욕심이 마음속에 있게 되면 순수하고 결백한 마음이 없어져 신묘한 본성이 불안하게 되지요. 신묘한 본성이 불안정하면 도(道)가 깃들이지 않는다고 하셨소. 내가 용두레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이오."

망연해진 자공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못했다.

기계에 빠져 그 노예가 되기도 하는 우리도 자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효율적이고 편리한 기계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건강한 삶과 지구의 생명력을 돕는 도구로 되어야지, 기계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그 반대로 흐르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와 종교 등에 따라 그 신념과 가치관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장점을 배울 생각을 한다면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그 사회를 보다 살만하게 만들 것이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