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30주년,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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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01   |  발행일 2022-04-01 제22면   |  수정 2022-04-01 07:16
지구촌이 열광하는 케이팝
출발점은 서태지와 아이들
90년대 '난 알아요' 이후로
댄스음악의 '아이돌' 등장
한류붐 이뤄내 국제스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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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우리 현대화는 서구화였다. 식민지 시절엔 일본을 통해 절반의 서구화가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해서 생겨난 새 물결, 즉 신파(新派) 중의 하나가 트로트다. 신파는 당시 청년들의 새 문화였지만 지금은 옛 문화의 대명사 격으로 통용된다. 더 본격적인 서구화가 시작된 것은 광복 이후부터다. 광복 후, 특히 6·25전쟁 이후부터는 미국을 통해 직접 서구문화를 수입했다. 주한 미군이 그 주요 창구였고, 미8군 무대에 섰던 뮤지션들이 서구화의 핵심이 되었다. 신중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서구화 끝에 1970년대에 서구식 청년문화가 만개했다. 그러자 당국은 장발, 퇴폐, 대마초 등을 이유로 탄압했다. 1980년대엔 전두환 정권이 문화적 유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서구화에 다시 가속이 붙었다. 이때 FM라디오가 확산되면서 젊은이들이 미국의 인기 팝송을 실시간으로 접했다. 마이클 잭슨, 듀란듀란, 컬쳐클럽 등이 인기를 끌더니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한국의 10~20대를 사로잡았다.

3저 호황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1990년대에 접어들어 한강의 기적이 일단락됐다. 집집마다 TV, 냉장고를 갖춘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해외여행까지 바라보게 됐다. 이것은 새로운 소비문화의 탄생을 의미했다.

급격히 서구문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달랐다. 우리 사회는 깜짝 놀라 이들이 신세대라며 세대 논쟁을 시작했고, 결국 이 신세대들에겐 엑스세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요계에선 들국화 같은 언더그라운드, 시나위로 대표되는 록, 현진영 등의 미국식 댄스음악 등이 나타나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이런 흐름이 집대성된 그룹이 바로 1992년에 데뷔해 최근 30주년을 맞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서태지는 들국화에 심취했었고, 신중현의 아들인 신대철의 눈에 띄어 시나위 멤버를 거쳤다. 동시에 최신 미국 음악인 랩음악에도 빠져들었다. 그가 미국식 댄스음악의 메카였던 이태원 문나이트 출신인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결성한 팀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이들이 랩, 록, 댄스 등을 접합해 만든 노래가 데뷔곡 '난 알아요'다. 당시 가요계 기성세대는 미지근한 반응이었지만, 팝에 익숙하면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찾던 엑스세대는 폭발적으로 열광했다. 엑스세대 이상으로 자신들만의 새 문화를 찾던 10대도 반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즉각 대체했고, 이후 이 땅의 10대들은 다시는 팝아이돌을 찾지 않았다.

한국 가요는 '난 알아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문화적으로 1990년대는 이 노래가 나온 1992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많은 변화들이 80년대에 진행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류는 트로트와 발라드였다. '난 알아요'가 모든 것을 바꿨다. 이제부턴 댄스음악이 한국 대중음악계를 규정하게 됐다. 이들의 뒤를 잇는 아이돌도 등장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르러 한국 대중음악은 완전한 서구화를 이뤘다. 광복 후부터 지속적으로 서구를 따라잡았지만 90년 정도까지도 가요의 사운드는 팝송과 현저히 달랐다. 서태지 이후 가요와 팝의 사운드가 유사해졌다. 서태지는 랩 등 흑인음악, 일렉트로닉 팝 댄스 등이 뼈대를 이루는 현대 케이팝의 원형을 확립했다. 그를 이은 케이팝 아이돌이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가요계를 독식하더니 급기야 한류붐을 이뤄내 국제스타가 되었다. 이제 케이팝은 지구촌 젊은이들의 새로운 음악언어다. 서구인들의 신파가 된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의 출발점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아 케이팝 탄생을 기리는 서태지와 후배들의 이벤트가 펼쳐지면 좋겠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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