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천국에서 무덤까지…일자리를 잃고 궁지에 몰린 연인의 처절한 생존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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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08   |  발행일 2022-04-08 제39면   |  수정 2022-04-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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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산(데이빗 다스트말치안)과 루비(카렌 길런)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에 나름 순응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청소 일을 마친 루비는 젠산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휴지통을 뒤져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젠산은 그녀를 위해 초코바와 즉석복권을 구입한다. 매일 반복되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다. 그런 두 사람이 어느 날 차례로 해고를 당한다. 위기감을 느낀 젠산은 한탕을 바라고 마지막 월급을 불법 투계장 도박에 모두 건다. 하지만 때마침 들이닥친 경찰의 급습으로 도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젠산은 고향 캔자스로 함께 도망치기 위해 루비를 불러낸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나타난 그녀의 손에는 박스에 담긴 앞집 갓난아기가 들려 있다. 루비는 아기를 유괴한 게 아니라 혼자 울고 있어서 데려왔다고 말한다. 아기를 다시 돌려주려는 젠산과 그럴 수 없다는 루비의 말다툼이 이어진 끝에 일단 아기와 함께 도주하기로 한다.

영화 '천국에서 무덤까지'는 잘못된 선택으로 궁지에 몰린 두 사람의 일탈과 사랑을 숨죽이며 따라간다. 아이를 좋아했던 루비는 그 이유만으로 늘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었고, 젠산은 회사의 구조 조정으로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됐다. 굳이 두 사람의 전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그간 많은 질시와 편견을 받으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극적 봉합을 거부한 채 차가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그들의 처절한 생존기에 초점을 맞췄다. 범죄 장르물에 가까운 색채를 띠며 반사회적인 양상으로 선회한 것이다.

카메라는 이성적 판단에 저항하며 유사가족을 만들려는 두 사람을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본다. 합의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려했던 젠산의 의지가 시간이 경과 되면서 많이 퇴색됐기 때문이다. 루비의 비뚤어진 모성애를 경계했던 그는 유사가족의 유대감을 통해 삶의 비루함을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드러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는 강박으로 작용해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시각각 그들을 엄습한다.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들의 소망은 사실 이룰 수 없는 판타지에 가깝다. 영화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그들 여정의 끝을 지켜보게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천착한 건 장르적 화려함이나 기교보다는 현실적 상황에 맞춘 인간 본성이다. 물론 그마저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마지막 반전으로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다. 독특한 매력으로 다수의 마블 영화에 각각 출연했던 데이빗 다스트말치안과 카런 길런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장르:범죄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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