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내년 파독 60주년…연로한 산업전사들 모국서 여생 마치고 싶어해"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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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2 07:01  |  수정 2022-06-22 07:05  |  발행일 2022-06-22 제11면
'조국 근대화의 밀알'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바라는 '韓정부 지원과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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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교민청 창립대회 등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고창원(왼쪽부터) 파독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장, 윤행자 재독한인간호협회 고문, 박소향 파독광부간호사기념관 사무총장은 "대한민국 인구절벽의 위기 극복 방안으로 정체성이 같은 재외국민의 역이민을 장려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파독 광부·간호사와 그들의 2세들의 한국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한인여성협회 제공〉

1960∼19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광부, 간호사·간호조무사, 선박기술자, 산업기능공 등 산업전사들은 이역만리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급여 대부분을 고국으로 송금했고 이는 가난했던 대한민국 경제건설의 초석을 다지는 데 보태졌다. 내년은 그런 파독 산업전사의 1진인 광부들이 독일에 도착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부는 광부파견 3년 후부터 간호사·간호조무사를 대거 파견했다. 2014년 말에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재조명돼 눈물을 자아냈던 파독 광부·간호사의 장본인인 인물들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과 재외교민청 창립대회 등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고창원 파독 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장(파독광부협회 전 회장), 윤행자 재독한인간호협 고문, 박소향 파독광부간호사기념관 사무총장 등이 그들이다. 서울 롯데호텔, 한국프레스센터 등에서 수차례 가진 인터뷰에서 이들은 "내년이면 산업전사가 파독된 지 60년이 된다. 이제 연로한 이들 중 많은 분이 모국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어한다"며 정부의 관심을 요청했다.

고창원 파독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장
"지원·기념사업 법률 시행됐지만
해외 혜택부분 삭제…개정 기대
韓서 병원가면 건보 적용해주고
獨정부에 청구하는 시스템 필요"

윤행자 재독한인간호협회 고문
"한류 영향 높아진 한국 국격 실감
70대 이상 고령이 된 파독근로자
모국의 발전상 직접 보는 게 염원
상시 방문 프로그램 운영해 주길"

박소향 파독광부간호사기념관 사무총장
"국내에 공동거주지 마련된다면
고국으로 돌아올 분이 많을 것
그들의 2세들 교류프로그램 통해
韓발전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 커"

▶얼마만의 한국방문인가.

△윤행자 재독한인간호협회 고문= "'코로나'가 지구촌의 발길을 모두 묶어 정말 오랜만에 국제선을 탔다."(웃음)

△고창원 파독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장= "2~3년 만에 한 번은 고국을 방문한다. 이번에 정권이 바뀌어서 새 정부에 파독 광부 간호사 등에 대한 관심을 요청하기 위해 고국을 찾았다."

▶대한민국이 급속 성장하는데 파독 산업전사들이 큰 기여를 했다.

△윤 고문= "(나는) 정부가 공식 파견한 파독 첫 세대이다. 고국에 올 때마다 놀란다. 정말 많이 발전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독일(당시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 간호조무사는 모두 1만5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독일 각지의 병원으로 흩어져 근무하며 친절과 성실로 환자를 대했다. '블루 엔젤'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제 60대 중반에서 70대 후반으로 연로한데, 조국 근대화에 일조했다는 자긍심을 품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고 회장= "정부가 공식 파견한 산업전사 중 광부가 제일 먼저 독일 땅을 밟았다. 1963년 1진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들은 모두 7천936명에 달한다. 1963년만 보면, 당시 한국의 수출액은 1억달러, 파독 근로자의 외화 송금액은 연간 평균 1천만달러였지만 100% 외화 가득률(稼得率)을 고려하면 수출액에 맞먹는 성과였다. 저는 1977년 23세의 나이로 서독행을 택했다. 마지막 파독 광부이다. 3년간 계약 기간을 마치고 철강회사로 이직했고, 지금은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많이 힘들었겠다.

△고 회장= "갱도에서 주고받던 행운의 인사 '글뤽아우프(Gluck auf)'가 아직도 귓전에서 맴돈다. 죽지 말고 살아서 지상에 올라오라는 뜻이다."

△윤 고문=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고. 이방인이 미지의 땅에 정착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그때그때 기지도 발휘하고, 문화적 차이도 이해시키며 뿌리를 내렸다. 어린 자식 둘을 한국에 두고 독일에 갔기에 더 열심히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뒤 아이들도 독일로 데려갔다. 어려운 시절 독일로 간 것은 고국에도 도움을 주었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

△박 사무총장= "60, 70년대 정식 간호사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노동 허가를 해줬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많이 결혼했는데 노동 허가만 있으면 남편도 함께 미국이민이 가능했다. 근무기한이 끝난 뒤 절반 정도는 한국으로 귀국했고, 35% 정도는 미국·캐나다 등으로 이민했다. 남은 분들이 독일 각지로 흩어져 산다. 이미 돌아가신 분도 많다."

▶파독산업전사들이 독일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듯하다.

△윤 고문= "우리가 유럽 이민 1세대다. 독일에선 독일 이민통합의 롤모델로 간주한다. 한인 간호사 상당수는 결혼 적령기가 되자 독일 남성과 결혼했고 일부는 파독 광부와 가정을 꾸렸다. 여느 한국 부모처럼 자식 교육에 열정을 다한 덕분에 2세들은 의사, 법조인, 교수, 공무원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주류사회에서 당당하게 활약하는 인재로 키워낸 것이다. 우리처럼 노동이민으로 와서 사는 민족 중에 자체적인 문화회관을 갖고,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며 사는 민족이 없다."

▶독일 현지에서 느끼는 한류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윤 고문= "30, 40년 전 내가 사는 곳이 인구 600만이 넘는 곳인데 한국 음식점이 두 개 있었고, 그것도 몇 년 간격으로 둘 다 망했다. 지금은 한국 음식점이 20개 정도가 있다. 그런데 장사 안 되는 집이 없다. 한국 문화가 알려지다 보니까 한국 음식도 찾게 되고 한국 국격이 높아졌다. 부식 가게도 잘 되고. 삼성이나 LG 같은 회사의 영향도 크다."

▶내년이 60주년이다.

△고 회장= "광부가 파견된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정부와 국회가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윤 고문= "해마다 파독 기념행사를 해왔는데 이제 더는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다들 연로해 앞으로 회관을 운영하기도 힘들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서 회관을 짓고, 재독한인들을 위한 구심점이 되도록 했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영화 '국제시장' 성공 이후 파독 광부, 간호사 지원법이 마련된 것으로 아는데.

△고 회장= "그렇다. '파독 광부·간호사·조무사에 대한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모법에는 독일과 한국에 있는 파독 광부·간호사 모두 해당되도록 규정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시행령에는 해외 부분이 삭제됐다. 법에 맞게 시행령을 고쳐 독일에서도 작은 혜택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국이 특별히 신경을 써주길 바라는 또 다른 문제는 어떤 것이 있나.

△윤 고문= "고향에 와서 묻히고 싶은 것이 하나의 염원이다. 정부가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아울러 70대가 중심인 고령의 파독 근로자들의 바람은 모국의 발전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것이다. 비용을 부담할 용의가 있으므로 고국 정부에서 상시로 모국방문 프로그램을 운용해주기를 바란다."

△고 회장= "독일은 정부가 100% 의료보험 부담을 한다. 독일에 거주하는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한국 들어와서 병원 진료받을 경우 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으로 해결해 주고 그 비용을 독일정부에 요청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길 요청한다."

△박 사무총장= "공동거주지가 마련된다면 입국할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독일의 연금을 갖고 있으니 고국이 거처를 제공해 준다면 월세를 내더라도 돌아가고 싶다는 게 이들의 마음이다. 또한 파독 광부·간호사의 차세대를 위한 한국방문 프로그램이 있으면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과 독일에 거주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스포츠 등으로 교류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하길 바라는 맘 크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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