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 창업가의 길...鐵의 문명·문화·미래…무한한 상상이 현실이 되다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2-07-04   |  발행일 2022-07-04 제11면   |  수정 2022-07-18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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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1538 홍보관에서 만나는 '철의 문명' 존. 높이 11m의 360도 원통형 공간에서 철을 만드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4가지 자연 요소인 쇠와 물과 불과 바람을 주제로 인터랙티브 영상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 눈에 띄지 않던 동해안 작은 어촌 마을이 세계적인 철강 도시로 변했다. 그사이 포항은 철강 도시라는 틀에 박혀, 그 안에 내재된 명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어버렸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포항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걸어왔던 해안길에 사람이 몰리고, 우리네 눈물겨운 이야기가 잠겨 있는 장기읍성과 죽도시장·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가 주목을 받는다. 포항의 역사를 안고 있는 효자동과 중앙동은 도시재생을 통해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숨을 쉬고 있다. 낡고 초라했던 골목은 포항시의 새로운 발전을 대변하는 장소가 됐다. 사람들은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싶어 신발끈을 조여 매고 찾아 구석구석을 누빈다. 영남일보는 새로운 걷기 명소로 떠오르는 포항의 골목과 새로운 핫플레이스에 스토리를 입힌 기획시리즈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를 1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박태준 초대회장의 '영일만 철의 꿈'
1973년 포항제철소 1고로 최초 쇳물
46년후 철의 역사 기록 'Park 1538'
철강 불모지서 글로벌 산업체 성장

스타트업 요람 '체인지업 그라운드'
창업가·청소년 창의력 빚는 용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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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로봇융합연구원 내 로보라이프뮤지엄에서는 국내에 상용화된 다양한 로봇들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다.
형산강이 바다가 되는 영일만에 4기의 고로가 서 있다. 회색빛의 단단한 얼굴로 대양을 향해 선 저 고로들은 대한민국 제철 산업의 신화를 만들어낸 포스코의 얼굴이다. 한국 철강 산업 발전의 꿈은 1960년대 종합제철 건설 계획 수립으로 구체화되었다. 1967년 7월, 포항 영일만이 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고 1968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의 창업식이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초대 회장에 청암 박태준, 최초자본금 4억원, 창업 요원은 39명이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세계은행은 한국의 철강생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외국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박태준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유용하는 아이디어를 낸다. 마침내 1970년 4월1일 포항제철 1호기 공사가 시작됐다. 박태준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직원들에게 자주 말했다. "식민지 배상금은 조상의 피의 대가이므로, 제철소가 실패하면 오른쪽으로 돌아 나아가 영일만에 빠져 죽자." 그리고 1973년 6월9일 오전 7시30분, 포항제철소의 제1고로가 이 땅에 최초의 쇳물을 토해냈다.

◆포스코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Park 1538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2019년, 포스코를 바라보는 자리에 'Park1538'이 착공됐다. 약 1년6개월에 걸쳐 역사박물관·홍보관·명예의 전당이 들어섰다. 건축에는 포스코 강건재 총 807t을 사용하여 철강회사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세웠다. 동시에 연못을 조성하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모든 공간은 푸르른 산책로로 이어졌다. 'Park1538'은 테마파크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포스코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담은 공간이다. 'Park'는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1538'은 철이 녹는 온도다. 그 순간 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는 철의 무한한 가능성과 포스코인의 열정을 의미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Park1538' 입체 사인과 함께 연못이 펼쳐진다. 풀꽃들과 수양버들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고 강원도의 낙락장송부터 제주도에서 온 팽나무까지, 전국에서 온 48종의 다양한 수목들이 수변을 풍요롭게 채색하고 있다. 연못 너머에서 반짝이는 건물은 포스코 역사박물관이다. 철강 불모지에서 글로벌 산업체로 성장한 포스코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착공식에 관련된 영상도 볼 수 있는데 오늘날의 포스코가 완성되기까지 굉장히 험난했던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20622 포항 park1538 전경-수변공원에서 본 역사 박물관과 홍보관1
Park1538은 테마파크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포스코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담은 공간이다. 수변공원에서 본 역사박물관(왼쪽)과 홍보관.
특히 초창기 건설사무소였던 '롬멜하우스'도 재현되어 있다. 당시 사무소는 모래바람 부는 건설 현장에 덩그러니 지어진 목조건물이었다. 낮에는 공사를 지휘하는 사령탑이었고, 밤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 직원들이 책상을 침대 삼아 담요 몇 장으로 새우잠을 잤다. 건설요원들은 마치 사막전을 치르는 병사들처럼 고된 작업을 이어갔다. 박태준은 공사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 흙강아지 같은 분이 사장님이냐"며 놀라워했다. 창업가의 길은 험난했다. 그렇게 탄생한 포항제철은 조업 첫해인 1973년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 됐다.

역사박물관에서 산책로를 따라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홍보관이 나타난다. 건물 앞에 무한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론 아라드(Ron Arad)의 작품 '인피니턴(Infiniturn)'으로 '철과 인간의 상상력이 만나 인류 문명을 무한하게 발전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곧 홍보관의 건립 테마이기도 하다.

로비에 들어서면 눈부신 빛의 공간이 열린다. 유리벽에 둘러싸인 중정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작품 '논 오브젝트 폴(Non-object, Pole)'이 전시돼 있다. 모래시계 형태의 매끈한 표면이 주변 환경을 입체적으로 반사하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갑자기 대리석으로 보이는 벽면에 웰컴 메시지가 뜨더니 홍해가 갈라지듯 벽이 열린다. '철의 문명'존이다. 높이 11m의 360도 원통형 공간은 마치 우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철의 기원부터 인류가 철을 만나며 이룩한 위대한 문명의 이야기가 전신을 에워싸며 흐른다. 철을 만드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4가지 자연 요소인 쇠와 물과 불과 바람이 우리의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변화한다.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영상 기법이다. 용광로 쇳물이 눈앞에서 흘러내리는 듯 온몸이 뜨거워진다.

압도되어 멍한 채로 '철의 문명'존을 나오면 고요하고 환한 빛의 공간 속에서 은은한 소리가 들린다. '철의 감성'존이다. 천장에 열두 달을 상징하는 둥근 오브제가 매달려 있다. 박제성 작가의 키네틱아트 '해와 달의 시간'이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오브제는 자연의 소리를 내며 유영하듯 움직인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철의 교감이다. 이어지는 '철의 현재'존에서는 365일 24시간 끊임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포스코의 제철 공정을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철의 미래'존에서는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 도시의 모습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홍보관을 나와 구름다리를 건넌다. 키 큰 소나무들의 목덜미를 스치며 곡선으로 달리는 234m 길이의 하이라인 산책로다.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 위해 공기를 주입하는 바람의 통로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다리 끝에는 '명예의 전당'이 자리한다. 포스코 창립요원과 역대 CEO·명장(名匠) 등 포스코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구름다리에서 제철소가 내다보인다. 우뚝 선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른다. 2019년은 포스코가 누적 조강(쇳물) 생산량 10억t을 달성한 해다. 2022년 현재의 조강생산량은 10.5억t에 달한다. 두께 2.5㎜에 폭 1천219㎜인 열연코일을 만들면 지구와 달을 56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포스코는 2010년부터 1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 자리를 지켜왔으며 전 세계를 누비는 자동차 10대 중 1대는 포스코의 철을 사용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포스코의 고로는 쇳물을 토해내고 있다.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길

구 형산교를 건넌다. 1968년 포항제철의 인프라로 건설된 형산교는 이제 사람과 자전거의 길이다. 무엇보다 포스코를 조망하는 훌륭한 전망대이기도 하다. 새천년대로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오르다 청암로로 들어선다. 청암은 박태준의 호다. 청암로를 중심으로 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포스텍(포항공대), 국내 유일의 정부산하 로봇전문생산연구소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 국내에 상용화 된 다양한 로봇들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로보라이프뮤지엄 등이 넓게 포진해 있다. 미래를 선도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인재들의 공간이다. 포항공대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었던 박태준은 평소 "제철소에서 고된 일을 하는 직원의 자녀 중에 나라를 구할 큰 인물이 나올지 어떻게 아냐"며 직원들의 자녀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그리고 학교를 지을 때는 "강진에도 끄떡없는 1천년 갈 학교를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내진설계 기준도 없던 시절에 그는 미래의 천년을 생각했다.

포스텍의 도서관 이름은 '박태준학술정보관'이다. 그와 마주보며 '체인지업 그라운드'가 자리한다. 2020년 국내 벤처 스타트업 생태계의 요람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포스코가 마련한 공간이다. 포스코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창업 10년 이하 비상장 스타트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가는 물론 청소년들이 벤처 창업정신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체인지업그라운드를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건물은 건축가 장윤규가 설계했다. 총면적이 2만8천㎡이며 건물 중앙의 2층 로비부터 7층 천장까지 32m를 뻥 뚫어 만든 중앙 홀에 박스형 회의실이 돌출해 있다. 장윤규는 이 공간을 '소통과 영감을 녹여 창의력을 빚는 용광로'라고 했다. 이 새로운 용광로에서 미래의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을 본다. 밝고 젊은 에너지가 창업의 길을 열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 포스코 50년사. Park1538 홈페이지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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