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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임스 밴드 리더보컬로 일본 무대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채의진. 지금은 마흔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인조 포크록밴드 '더 옐로우' 리더를 맡으면서 출세와 돈보다는 죽을 때까지 멤버와 오순도순 좋아하는 노래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단다. |
남미 살사의 피가 섞여 있는 듯한 유쾌발랄한 보이스. 그의 노래에는 청량감이 가득하다. 눅눅하고 덜 익은 발라드라인은 노 생큐! 요즘 각종 행사에 초대 1순위 지역 통기타 가수 중 한 명인 채의진(46).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시달림과 우여곡절의 세월이 누룩 역할을 했다.
청송 출신이고 중3 때 대구로 왔다. 갑자기 한 운동에 깊게 빠지게 된다. 바로 검도였다. 고2 때까지는 고등부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유망주였다. 대구대·세종대 검도 코치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올 정도였다.
고향 선배 밴드에 합류 '제임스' 결성
지옥의 연습…대구MBC가 선정한 팀
日서 록1집 데뷔, 지역언론 대서특필
전국구 한계…'더 옐로우'로 재도약
모던·심플하게…각자 사생활도 존중
음악으로 소통 하는 곳엔 늘 뛸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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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옐로우의 공연 모습. |
◆고2 때 가수의 꿈
어느 날 가수의 꿈을 갖게 된다. 고2 겨울방학 때였다. 크리스마스날 성당 다니는 단짝 친구가 초대해서 갔다. 그 음악회에서 친구가 일렉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당장 운동을 그만둔다. 음악의 유혹은 가공할 만했다. 장르는 지금의 포크 스타일이 아니었다. '록(Rock)'이었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자기만의 '독공'의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 대학동아리 밴드 모집 공고를 보고 무작정 혼자 오디션을 보러 간다.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와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을 무반주로 불러 합격된다. 생애 첫 밴드 보컬로 활동 개시. 그냥 추억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제대 후 우연히 청송 고향 선배가 하는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다. 새로운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밴드명은 프로언더 밴드 '제임스(JEIMS)'였다. 웃기는 이름이다. 프로언더라니. 더 웃기는 것은 보컬 기타는 베이스 빼고는 다 경북 북부 오지 촌놈들이었다.
바로 지옥의 연습구간을 통과한다.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그렇게 매일 7~8년을 죽어라 연습했다. 근육이 음조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단계로 끌어올렸다. 당시 시내 클럽 헤비 등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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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결성된 더 옐로우 밴드. 주 멤버는 보컬 채의진, 베이시스트 최영원, 드러머 임범규, 그리고 기타는 객원 멤버로 짜여진다. |
어느 날 아는 형님(전충훈)이 그들을 지목했다. '우리 음악이 너무 좋다면서 자기가 기획할 테니 함께 해보자'고 제의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기획력을 가진 내공의 소유자였다. 현재 세종시에 있는 행정부의 문화기획자로 인정돼 별정직 공무원이 돼 있다.
제임스는 이내 급부상을 하게 된다. 2집의 정규앨범과 몇 장의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우리 팀의 대표가 된 형님은 대구에서 시작해서 전국구로 발을 넓혔다. KTX가 처음 개통되었을 때 그해 여름 코레일의 지원을 받아 40여 개 역 투어 버스킹을 하게 되었다. 드럼, 엠프 등을 가득 싣고 유랑악극단처럼 전국 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다.
덕분에 대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주목받는다. 당시 대구MBC에서 발표한 '대구를 빛낼 44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내한한 일본 밴드 관계자들이 너무 좋게 봐줘서 일본에 진출하게 된다. 지역 뉴스에도 '대구 촌놈들 일냈다'라며 대서특필을 했다. 서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일본에서 록 1집으로 데뷔한다.
◆제임스에서 '더 옐로우'로
성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구만의 인지도로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7년의 제임스밴드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11년 나머지 팀 구성으로 기타를 영입하고 '더 옐로우'를 새로 결성한다. 조금 더 심플·모던하게 나갔다. 지금도 연주를 하고 있다.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다. 조금씩 힘에 부딪힌다. 멤버와 약속했다. '우리 크게 욕심내지 말고 70·80세가 되어도 더 옐로우라는 팀으로 가끔 음반 내면서 오래오래 음악을 하자'고. 다들 결혼을 하고 아기도 생기고 어느덧 마흔 중반. 지금 더 옐로우는 '유부남 아빠밴드'. 각자 사생활을 서로 존중해 준다.
그는 제임스 때부터 통기타 라이브 카페를 다니며 생계를 유지했다. 지금은 버스킹 또는 지역 행사와 공연 등에 많이 초청받는다. 베이스 치는 최영원과 '애플트리'라는 통기타 듀오 팀을 만들어 요즘 한창 잘 나가고 있다.
현재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 뮤직퍼포먼스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계명문화대 공연음악학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수 겸 교육자다. 그의 가창력은 공연 기획자들이 먼저 알아본다. 농담 조금 더 보태 '통기타 들고 공연하는 행사는 메이저 유명 가수 빼고 전국 톱'이라고 엄지척 해준다.
그는 소통을 강조한다. 유치원부터 경로당까지, 늘 뛸 준비가 되어 있다. 미리 곡을 선정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가서 분위기 보고 바로 곡을 선정한다. 늘 행복하고 해피한 무대를 선사한다. 희망과 행복. 그게 그의 목소리에 뇌관처럼 박혀 있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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