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크레센도' (드로 자하비 감독 ·2019 ·독일)…분쟁의 땅에서 피어난 꿈의 연주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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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29   |  발행일 2022-07-29 제39면   |  수정 2022-07-29 08:28

크레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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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1999년, 피아니스트 겸 명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한다. 팔레스타인 출신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기획한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다. 동서양의 조화를 꿈꾼 괴테의 '서동시집'(西東詩集)에서 따온 이름이다. '크레센도'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음악영화다.

유명 지휘자 에두아르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연주자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동참한다.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이들을 모아 연습을 하지만,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가장 첨예한 분쟁의 땅, 태어나서부터 이미 적이 되어있는 이들이 과연 하나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에두아르트는 연주보다 한마음이 되는 것이 우선임을 알고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토니 에드만'으로 유명한 페테르 시모니슈에크가 에두아르트 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중동 출신의 드로 자하비 감독은 현재진행형인 분쟁지역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출신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흥미롭고, 장면마다 연주하는 베토벤, 비발디, 드보르작의 곡이 귀를 즐겁게 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 서로 마주 보며 진심을 담아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는 감동적이다.

이 영화의 실제 이야기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라는 제목의 TV 다큐멘터리(2005)에서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대'라는 팔레스타인 수도 라말라에서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하는 장면이 담겼다. 2011년 평화 콘서트에서는 '합창'을 연주했는데, 장소는 우리의 임진각이었다.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평화를 노래한 것이다. 영화를 통해 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의 생생한 대립과 화합의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보니 음악이 참 무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전쟁과 음악'이란 TV 프로를 봤다. 임윤찬의 우승으로 기쁨을 안겨준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취재한 것인데, 주인공은 임윤찬이 아니라 각각 2, 3위를 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피아니스트였다. 심사위원인 러시아 피아니스트는 "음악가란 총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라 말했다. 하지만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는 자국의 침공을 비판하는 소신 발언을 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젊은 연주자들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젊은 음악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크레센도'란 제목처럼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세지기를 바란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음악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는 있을 것"이라 말한다. 용기 있는 마에스트로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정신을 이어받은 '크레센도'는 영화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울림이 큰 영화다. 전쟁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 보이지만, 그런데도 '음악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소중한 보물이다. 영화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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