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함안 입곡저수지…계절 사이를 거니는 숲 터널…또 한번 절정의 고요가 움트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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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2   |  발행일 2022-09-02 제16면   |  수정 2022-09-02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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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곡저수지의 출렁다리는 2009년에 설치됐다. 주탑 간 거리는 96m로 설치 당시에는 가장 긴 출렁다리로 이름 높았다.

빗소리 요란하다. 그러나 발 딛는 산책길은 그저 촉촉하다. 통통 길에서부터 튀어 오른 빗방울들이 신발 위를, 바짓단을 어느새 적시고 있지만 단지 그것뿐. 요란한 빗소리는 정수리까지 와 닿지도 못하고 통쾌하게 흩어진다. 이 믿음직한 수목의 지붕 아래에서 흩어진 빗방울들이 일으키는 풀냄새, 나무 냄새, 흙내, 물 내를 흠뻑 들이킨다. 마주 오는 이의 얼굴이 맑다. 앞서가던 이는 산책로를 벗어나 산으로 간다. 또 어떤 이는 저수지 가로 내려서서 동심원을 그리는 수면이나 건너편 산책로를 오가는 우산을 바라본다. 어쩌면 나란히 선 줄풀이나 열매를 숨긴 마름을 살피거나 혹은 멀리에 정박한 배들을 보는 걸지도 모른다. 여름내 벅적했던 저수지는 고요하고, 오늘은 오금이 시원해진 사람들이 물가를 걷는다. 경남 함안의 입곡저수지다.

가장자리 따라 산림욕장 힐링산책
벚나무·관목·야생 초화류 등 무성
단풍 명소…11월 중순까지 이어져

저수지 가로지르는 빨간 출렁다리
2009년 설치 당시 국내 최장 명성
255m 달리는 하늘자전거도 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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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의 주황색 주탑 너머로 층층의 기암절벽과 그 위에 의연히 자리한 팔각정이 보인다.

◆입곡저수지 산림욕장 산책로

함안의 동부에 위치한 산인면은 대부분이 산이다. 산인의 서쪽은 삼한시대 아라가야의 도읍지였던 가야읍으로 산 많은 산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방어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산인면의 허리를 남해고속도로가 가르며 지나가는데 그 바로 남쪽에 입곡리가 있다. 화개지맥의 서편이다.

입곡(入谷)은 20리가량의 긴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의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긴 골에는 천이 흘렀는데, 일제 강점기인 1918년에 골짜기의 입구를 가로막아 만든 것이 입곡저수지다. 저수지의 물은 오랫동안 산인면과 가야읍 일대의 농업용수로 쓰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함안군의 소풍 장소로 이름을 날렸고, 1985년에는 일대가 군립 공원으로 지정됐다. 입곡저수지는 함안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골짜기를 막아 만든 저수지라 폭은 좁고 길이는 길다. 조금 과장을 하면 산사면의 골 따라 구불구불 흐르는 강 같다.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 입구에 '입곡산림욕장'이라는 무지개 간판이 걸려 있다. 산림욕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산책로는 어둑한 숲 터널이다. 길 따라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주를 이루고 감태나무, 굴참나무, 굴피나무, 소나무, 배롱나무, 팽나무 등의 교목류와 진달래, 생강나무, 초피나무 등의 관목류가 무성한 조화를 이룬다. 나무 아래에는 벌개미취, 비름, 맥문동, 기린초, 은방울꽃 등의 야생 초화류가 살고 있다. 한여름에도 시원하다는 소문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어둑한 숲 터널이 잠시 밝아지는 자리에는 등산로가 있거나, 저수지 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거나, 누군가의 무덤이 있다. 빛 때문인지 성급한 성질 때문인지 벌써 훨훨 떨어져 내린 노란 잎들이 보랏빛 맥문동과 분홍의 배롱나무꽃과 함께 계절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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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곡 단풍길'은 벼랑을 따라 놓인 데크길을 따라 출렁다리로 향한다. 입곡군립공원의 단풍은 10월 중순부터 물들기 시작해 11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색색의 백일홍이 흐드러진 사면에 하늘자전거인 '아라힐링사이클'의 탑승 타워가 서 있다. 작동하지 않는 기계는 어딘가 무서운 면이 있지만 꽃밭 속에 있는 노란 직사각의 구조체는 조형물처럼 느껴진다. 타워 아랫길로 조금 가면 농구대가 덩그러니 서 있는 작은 공터가 아름답게 펼쳐졌다가 이내 길이 갈라진다.

산림욕장 산책길은 산 위로 천천히 올라 팔각정을 지나 등산로로 이어진다. '입곡 단풍길'은 벼랑을 따라 놓인 데크길을 따라 출렁다리로 향한다. 입곡군립공원의 단풍은 10월 중순부터 물들기 시작해 11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온갖 빨강과 온갖 노랑이 차례로 폭발하는 절정의 고요가 그렇게나 아름답단다. 감당할 수 없다면, 계절과 계절 사이, 비가 오는 오늘이 좋겠다. 벼랑의 나무들은 수면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서 있다. 우듬지는 높고, 그늘은 짙어 단풍의 계절이 자꾸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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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와 산, 놀이기구와 푸드트럭, 벤치와 데크, 정자 등 다양한 형태의 쉼터와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다. 소박하고 어여쁜 소풍장소다.

◆입곡 저수지를 즐기는 몇 가지 방법

출렁다리가 저수지를 가로지른다. 육중한 로프가 다리를 꼼짝 못하게 잡고 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출렁다리는 그저 존재 자체가 짜릿하다. 출렁다리는 2009년에 설치됐다. 주탑 간 거리는 96m로 설치 당시에는 가장 긴 출렁다리로 이름 높았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흘러 이제 그 명성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입곡군립공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친구다.

잠시 비가 잦아든다. 다리 가운데서 우산을 접는다. 안개 같은 비가 날린다. 골짜기의 산들은 물에 잠겨 있고 마루금은 구름에 잠겨 있다. 숲속에서는 하얀 입김이 피어오른다. 수면 위에 초록의 둥근 방석이 떠 있다. 미세 기포를 발생시키는 수질정화장치라 한다. 저수지 가장자리를 빼곡히 뒤덮고 있는 것은 마름이다. 역시 수질을 정화하는 식물이다. 마름을 다른 말로는 물밤, 혹은 말밤이라 하는데 열매가 밤 맛과 같다고 한다. 잎을 뒤집으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가을에 익는다. 입곡의 단풍 계절은 마름 열매의 계절이기도 하다.

주황색의 주탑 너머로 층층의 기암절벽과 그 위에 의연히 자리한 팔각정이 보인다.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하늘자전거의 와이어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 선 위를 달린다니 사람들의 심장은 참 튼튼하다. 탑승타워의 높이는 14m, 편도 거리는 255m 정도다. 4개 라인이 운영 중이어서 동행과 동시 탑승도 가능하다. 자전거에 오르면 친절한 운영진이 잘 가라고 등을 떠밀어준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오롯이 탑승자 다리의 힘으로 하늘을 달려야 한다. 8m 높이의 2인 전동 자전거도 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연인들이 우아함을 유지하면서 스릴을 즐기는데 만점이다.

타워 아래에 정박한 배들은 알록달록 지붕을 인 무빙 보트다. 1회 배 타는 시간은 30분, 부표로 표시된 운항가능 구역은 3만9415㎡다. 속도는 시속 3㎞로 물 위를 가만히 선유하는 것은 풍류가 있겠다. 출렁다리에서 가만히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일도 입곡 저수지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다리를 건너면 저수지 둘레를 따라 산책로와 도로가 나란하다. 도로 저편에는 공설운동장이 있다. 안쪽 깊숙한 골짜기는 입곡문화공원이다. 연못과 다양한 야생화를 계절별로 감상할 수 있는 무늬화단, 각종 다육식물과 선인장을 볼 수 있는 유리온실, 미로원과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왁자지껄 출렁다리를 건너신다. 다시 우산을 펴 들고 새 오줌만큼 떨어진 낙엽의 길을 가을인 양 걷는다. 빨간 푸드 트럭은 문을 열지 않았고 한 청년은 노란 타워에서 망연히 하늘을 본다. 작고 예쁜 어린이 놀이터에 악어 시소와 목마가 흑백사진처럼 서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대구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창원, 마산 방향으로 간다. 칠원분기점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진주방향으로 가다 함안IC에서 내린다. 함안IC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함주교 건너 좌회전해 함마대로를 타고 직진, 입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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