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워커 에반스 "그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 김윤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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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3  |  수정 2022-09-13 07:22  |  발행일 2022-09-13 제15면

[문화산책] 워커 에반스 그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김윤경 (화가)

"내가 사물들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냈다."(워커 에반스)

미국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는 개념보다 사물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시를 썼는데, 이는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사진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존재의 시각적 순수 속에서 어떤 말이나 개념도 중요치 않게 되는 것이 그가 사진을 통해 추구한 것이었다. 소설가 제임스 에이지(James Agee)와의 협업인 대공황 시대 앨라배마 소작농 가족의 초상은 맥락 자체가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폐허 위에 지어진 농장 가옥, 남북 전쟁 기념비, 파괴된 무덤 등의 포착은 평온함 속에서 미국의 혼돈의 역사적 사건들로 관객을 인도한다.

워커 에반스는 집요한 관찰자의 시점을 선택, 사진 속 보이지 않는 인물을 추측하게 한다. 더러운 공장의 내부, 버려진 자동차로 메워진 공터를 마치 인물인 양 묘사하는 휴머니스트다. 그는 부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공간의 주인인 인물을 드러내며 집의 내부가 누군가의 거주의 암시로 인해 채워지는 느낌을 부여한다. 매너리즘을 타파하며 동시대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예술 사진'에 반하는 양식을 구축했는데 '예술'이라는 치장보다 금욕적, 청교도적이었던 당시 소작농들의 일상을 가감없이 포착함으로써 예술 사진의 정의를 다시 세웠다. 순수, 엄숙함, 운동감, 직접성, 명료함 등 그의 사진에 대한 수식어는 눈에 들어온 사물 자체로 제시돼 그 속의 역사를 이해하게 한다.

우리는 종종 자연과 환경, 인간이 지닌 아름다움을 무심히 지나친다. 속수무책인 자연재해와 인위적으로 행하는 파괴, 팬데믹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질병은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 한계를 경험하게 한다. '과거'라는 그리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워커 에반스의 흑백 사진은 우리가 살아가는 혼돈의 세상과 동떨어져 보인다. 재즈 선율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은, 미시시피의 남북 전쟁의 폐허 위에 지어진 이발소 앞 벤치의 흑인 남녀, 무수한 수평선의 판잣집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대공황 시기의 소작농 가족의 얼굴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장면처럼 아름답게만 여겨진다. 사물들이 말을 걸어왔을 뿐이라는 워커 에반스는 이러한 적막 속에 감추어진 동요를 더욱 커다란 울림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미니멀리즘의 소박한 화법을 빌려 가장 큰 음성으로, 기록 사진가로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김윤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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