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자와 칼 세이건

  •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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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4  |  수정 2022-09-14 07:30  |  발행일 2022-09-14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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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10월7일 대덕문화전당에서 선보이는 '청춘연가'는 치매를 소재로 창작되는 연극이다. 지난 8월 거제문화예술회관을 거쳐 올해 두 번째 공연이다. 나는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작품 속 주인공인 '영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죽은 남편의 시계를 사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삶은 병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술술 풀리는 듯하다. 25년간 만나지 못했던 엄마와 재회하고, 평생 한이 됐던 결혼식도 무려 27살이나 어린 연하 남편과 올린다. 또 잊었던 청춘과 설레는 첫사랑도 맞본다. 이쯤 되면 치매는 영자에게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다. 그 속내야 어떻든 간에, 표면적으로 그녀는 참 복에 겹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치매 환자 가족이었다. 그래서인지 환우만큼이나 힘겨운 것이 그의 가족이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역시 세상만사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각색과 연출의 방향은 그 경험치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비록 학비를 톡톡히 치르긴 했지만, 경험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다. 연극 '청춘연가'는 부모의 부모가 된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 딸 '연희', 모든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면서도 언제나 흥이 넘치는 70대 노모 '말숙', 원작과는 캐릭터가 사뭇 달라졌지만,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연희와 같은 처지의 '승우'의 존재로 더욱 빛난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현실은 때론 씁쓸하고, 참담하며, 적나라하다. 하지만 뜻밖에 마주한 그곳에서 깊은 깨달음과 심오한 진리를 얻는다. 32년 전, 보이저 1호가 찍은 사진 또한 그랬다. 탐사선이 곧 태양계를 빠져나가기 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수많은 반대 속에서도 나사를 설득해 카메라 방향을 지구로 돌려 촬영하게 한다. 태양광선에 혹시 카메라가 손상되지 않을까? 수많은 우려 속에 촬영은 시작됐다. 60억㎞ 밖에서 촬영한 지구는 1픽셀도 안 되는 먼지 같은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심오한 우주 사진으로 손꼽히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고개를 돌려 그 이면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아마도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자 슬픔은 아닐까? 오는 10월에 선보일 연극을 위해, 나는 오늘도 그 특권을 누려본다. 비록 그 끝이 슬플지라도….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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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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