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 매년 수확철 야생동물에 '쑥대밭' 농경지…해결·공존할 방법 없나

  • 이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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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0 19:37  |  수정 2022-09-20 20:11  |  발행일 2022-09-21
[수요기획] 매년 수확철 야생동물에 쑥대밭 농경지…해결·공존할 방법 없나
지난 8월 대구 동구 팔공산 자락의 한 과수원이 멧돼지로 인해 피해을 보면서 나무 뿌리까지 부러져 있다. 독자 제공
[수요기획] 매년 수확철 야생동물에 쑥대밭 농경지…해결·공존할 방법 없나
지난 14일 대구 동구 팔공산 자락에서 멧돼지들이 내려와 고구마밭을 헤쳐놓은 모습. 이자인기자

올해 수확철에도 대구지역 농경지가 야생동물로 인해 '쑥대밭'으로 변했지만, 이를 해결할 뾰족한 대책이 없어 농민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동구 신용동 팔공산 자락의 한 고구마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었다. 흙 위엔 고구마 줄기가 뿌리 채 뽑혀 얽혀있었고, 성인 주먹보다 큰 멧돼지 발자국이 밭 이곳저곳 새겨져 있었다.

농부이자 포수인 최모(66·대구 동구)씨는 초토화된 고구마밭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는 "올해 잡은 멧돼지만 해도 20마리가 넘는다. 어젯밤에도 몸무게 200~300㎏ 나가는 어미 멧돼지부터 새끼까지 10마리가 나타났다"며 "멧돼지를 쫓는다고 밭에 스피커까지 달아놨는데 번식력이 워낙 뛰어나 어떻게 잡아도 역부족이다"고 했다.

팔공산 자락을 비롯한 대구지역 농경지들은 매년 6~9월 수확철이면 매년 멧돼지로부터 피해를 입는다. 산 위에 사는 멧돼지들이 사과와 복숭아를 먹으려고 내려와 나무뿌리를 꺾어 놓거나, 지렁이를 찾아 밭을 헤쳐놓는 탓이다.

농부 김모(67·대구 동구)씨는 "몇 년 길러온 나무라도 뿌리만 꺾이면 고사하는 경우가 많고, 떨어진 과일은 내다 팔 수도 없다"며 "얼마 전에도 태풍 때문에 복숭아가 엄청나게 떨어져서 속상했는데, 멧돼지까지 말썽이다"라고 하소연 했다.

농경지가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인 대구 동구·수성구·달성군청 등에 따르면 올해 접수된 멧돼지 농경 피해 신고 건수만 241건이나 된다. 지난해 피해액만 1억6천여만원이다.

20일 이들 구·군청에 따르면 과수와 작물 종류에 따라 피해 지역도 다양했다.
동구는 사과·복숭아를 주로 재배하는 평광동·둔산동·지묘동 일대에서, 수성구도 과수를 재배하고 법이산과 인접한 삼덕동·고모동 등에서, 달성군은 벼를 수확하는 가창면·하빈면·유가읍 일대에서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 구·군청은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 멧돼지 포획과 농가 울타리 설치사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멧돼지는 번식력이 뛰어나 포획을 해도 개체 수가 유지되고, 멧돼지가 울타리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멧돼지가 개체 수는 좀 줄어도 먹이를 찾아 옮겨 다니는 습성이 있으니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팔공산에서 멧돼지를 많이 잡으면 경북 군위, 북구 칠곡 쪽에서 넘어와 영역을 다시 잡는다"며 "울타리를 쳐놔도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했다.

농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멧돼지가 식량을 찾아 내려온 만큼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의 관점이 강조된다.

이지선 야생생물관리협회 부장은 "우선, 농가로 내려오는 멧돼지들은 먹이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공존을 위해선 생태계 먹이사슬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한데, 인간의 개입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며 개체 수 불균형이 생겼다"며 "건강한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인간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근본적으로 생태계를 유지하고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렵은 필요하다. 다만, 현재처럼 구·군 단위로 수렵을 하면 풍선효과로 다른 구·군 농가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시·도 단위에서 수렵장을 크게 운영해 겨울철 개체 수를 조절하고 그 다음 해 수확철에 농가 피해가 줄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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