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애프터 쉐리 레빈

  • 김윤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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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0 07:18  |  수정 2022-09-20 07:20  |  발행일 2022-09-20 제14면

김윤경
김윤경화가

사진가 워커 에반스(Walker Evans)는 대공황 시기의 소작농 가족을 찍었는데 1979년 쉐리 레빈이 그 전시 카탈로그의 사진을 찍어 '애프터 워커 에반스(After Walker Evans)'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그녀는 누구든 사진의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며 '독창성'이라는 모더니즘적 개념에 반발했다.

쉐리 레빈에게 복제란 '하나의 사진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사진'의 은유이며 나란히 놓이는 것이 아닌 원본의 우화,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에곤 쉴레(Egon Schiele), 말레비치(Malevich),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의 작품을 줄무늬, 체크무늬로 환원하며 이들의 작품이 동시대 산물로 인식됨을 호소한다. 반복, 유사, 상사, 변주, 파편 등의 키워드를 제시, 과거와 현재의 미술에 보편성과 급진성이 공존함을 강조한다. 그녀는 모더니즘 남성 화가인 에곤 쉴레와 그 종말을 고한 말레비치, 그녀가 학창 시절에 늘 배제된 것처럼 느꼈다고 하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 등의 작품을 자신의 질서 하에 패턴화하며 차용의 흔적을 느낄 수 없게 한, 본능에 의해 탄생되는 회화의 속성을 어필하는 회화의 연대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예술가의 아우라(Aura)'나 신화를 피하고자 하면서도 주관성을 획득했는데 이 점을 들어 어떤 이들은 워커 에반스의 사진집을 웹사이트로 만들어 그의 사진과 쉐리 레빈의 패러디를 디지털 시대로 공론화했다. 고해상도 이미지의 무료 배포, 각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 부여를 통해 벤야민이 차등화한 대체 이미지로서의 복제의 소유에 대해 협상하며 이러한 시도가 문화적 가치의 획득이지 경제적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주장한다.

그녀의 작품은 독창성과 저작권에 있어 예술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부정이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맥락 안에서 여전히 독창성 개념을 발생시킨다.

대체 불가능 토큰의 시대가 중첩되는 선대의 예술가들의 영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까?

모호함의 극대화를 통해 떨쳐낼 수 없는 역사 속 대가들의 영향을 자유로이 변주한 쉐리 레빈이 예술계의 힘과 권력의 문제를 시사한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김윤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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