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단경왕후와 전기수

  •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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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1  |  수정 2022-09-21 07:34  |  발행일 2022-09-21 제17면

[문화산책] 단경왕후와 전기수
장은주〈뮤지컬 배우·연출가〉

다음 달 2일 코오롱 음악당에서 선보이는 '몽중몽(夢中夢) 7일의 황후'는 맥 무용단에서 선보이는 국악 무용극이다. 나는 작·곡을 맡았다.

작품은 사랑하기에 슬프고 사랑했기에 아름다웠던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왕후로 기록된 제11대 왕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를 모티브로 창작됐다. 단경왕후는 13세의 나이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과 혼례를 올린다. 중종반정까지 7년, 왕비가 된 지 7일 만에 폐비가 된 비운의 왕후이다. 역사 속 인물을 모티브로 재구성한 무용극은 반정이라는 소재가 바탕이다. 연산군, 중종, 신수근, 단경왕후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이다.

중종실록 1권 1506년 9월9일 "아뢰는 바가 심히 마땅하지만, 그러나 조강지처인데 어찌하랴?"라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 최초로 '신하'가 왕을 바꾼 사건인 '중종반정'의 대목이다. 당시 19세 중종의 진퇴양난을 짐작할 수 있다. 곧 무용극으로 다가올 예정이다.

전기수는 조선의 이야기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문인 조수삼의 '추재기이(秋齋紀異)'에 따르면, 전기수는 워낙 재밌게 읽는 까닭에 청중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소설을 읽다가 결정적인 대목에서 갑자기 이야기를 뚝 멈췄다. 그러면 사람들은 뒷이야기가 궁금해 앞다투어 돈을 던졌다. 이를 '요전법(邀錢法·돈 부르는 요령)'이라고 했다.

나는 2022년 10월의 '전기수'를 꿈꿔본다. 무용극 '몽중몽 7일의 왕후'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코오롱 음악당이 문전성시를 이루길 빌어본다. 그러나 요전법은 사용하지 않겠다. 무료 공연이다. 심청과 심봉사가 다시 만나는 그 순간, 이몽룡이 춘향의 옷고름을 푸는 그 찰나 입을 꾹 다물었다고 부디 칼은 빼 들지 말아달라.

정조실록 14권 1790년 8월10일 "… 소설 듣던 사람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서 … 책 읽는 사람을 찔러 죽였다." 전기수가 워낙 실감 나게 임경업전(林慶業傳)을 낭독했던 탓에 목숨을 잃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야기꾼에게 있어 이처럼 영광된 죽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아직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너무 재미있어도 제발 살려달라.
장은주〈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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