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문학가의 소명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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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3   |  발행일 2022-09-23 제15면   |  수정 2022-09-23 07:43

[정만진의 문학 향기] 문학가의 소명

1220년 무렵 아이슬란드 시인 스노리 스툴루손이 북유럽 신화와 시 작법을 담은 '신 에다'를 펴냈다. '신 에다'는 북유럽 신화를 담은 거의 유일한 사료로 평가받는 희귀한 저작이다.

제1부를 구성하고 있는 '귈피의 속임수'를 읽어본다. 지금의 스웨덴 일대를 통치하는 왕 귈피가 변장을 하고 아스가르드로 들어간다. 아스가르드는 '에시르의 울타리'라는 뜻이다. 즉 아스가르드는 에시르 신족이 사는 고장이다.

귈피는 여행 중 에시르의 신들에게 속아 본래 목적지 아닌 엉뚱한 궁전에 닿는다. 귈피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어떤 사내가 나타나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강글레리"라는 가명으로 귈피는 궁전의 권력자들에게 안내된다.

강글레리는 그들로부터 여러 신화와 창세 및 멸망 관련 정보를 듣는다. 그러자 문득 궁전이 없어지고, 궁전 안 사람들 또한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귈피 혼자 공터 한가운데 서 있다.

귈피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와 궁전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귈피의 속임수'는 서사 구조가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연상하게 한다. 한 어부가 무릉의 복사꽃밭을 다니던 중 깊은 동굴 속 이상향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 어부는 태수에게 겪은 일을 말한다. 밖에 나가서는 동굴 속 세상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는 그곳 사람들의 당부를 어긴 것이다. 하지만 태수는 동굴을 찾아내지 못한다. 유자기라는 고상한 선비가 홀로 재탐색을 시도하지만 그 역시 찾지 못한다. 유자기가 죽은 후 그 길을 묻는 사람이 없어졌다.

도연명은 난세에는 은둔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해 전원생활을 했다. 그때 '귀거래사'라는 시를 써서 "세상과 내가 어긋나는데 가마를 타고 무엇을 구할 것인가?"라고 노래했다. 그 일이 사대부 유교사회의 전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도연명이 관직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그럭저럭 먹고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후세에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이다. 1241년 9월23일 스노리 스툴루손이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이슬란드의 국회의장을 두 차례 역임했지만 오늘날에는 시인으로 기억된다.

도연명과 스노리는 이상향을 염원하는 인간의 영원한 희구를 탐구하고 기록했다. 두 사람의 삶은 참된 문학가에게 어떤 소명이 주어져 있는가를 증언해 주는 듯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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