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골드버그 장치와 인문학

  •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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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6  |  수정 2022-09-26 07:19  |  발행일 2022-09-26 제12면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스팀(STEAM) 교육에서도 많이 활용하는 '골드버그 장치'를 들어보셨습니까? 이것은 생김새나 작동원리는 아주 복잡하고 거창한데 하는 일은 사실 너무 단순하고 재미만을 추구하는 장치입니다. 매우 비효율적인 기계를 뜻하지요. 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가 그린 만화 속 기계 장치들에서 고안되었습니다. 만화가적 상상력이 대폭발하는 기계로, 얼핏 보면 진짜로 작동할 것처럼 생겼습니다. '어떤 원리로 작동할까?'에 대해서 다양한 상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각할 게 많습니다. 우리가 널리 아는 '톰과 제리' '백 투 더 퓨처' 같은 만화, 영화나 상업 광고에도 골드버그 장치가 등장합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제작한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재미있는 장치'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디어에 매력을 느낀 수많은 과학자, 공학자, 일반인들은 저마다의 골드버그 장치를 실제로 만들며 어떻게 하면 더 복잡하게 공을 굴릴지, 어떻게 하면 더 비효율적으로 구슬을 움직일지 따위를 궁리합니다. 급기야 과천과학관 같은 기관에서는 쉬운 일을 얼마나 더 복잡하게 할 수 있는지를 겨루는 '골드버그 대회'까지 개최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향해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나아가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골드버그 장치가 보여주는 '비효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9월 초에 저는 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 인문학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주제였는데요. 저는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가 머릿속에 '회색 지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작가 정지우는 책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에서 '문해력 또는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타인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뜻이다. 나아가 뇌가 그럴 용기를 학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적으로 계속 자기 이해, 자기 입장에 익숙한 방식에만 길들여져서 그것에 갇혀버리는 폐쇄성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생각이 '흰색'이라면 나와 다른 생각은 무조건 '검정색'이 되는 일은 교실에서도 벌어집니다. 학생들은 나와 친구가 의견이 다르면 그 '간격'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의견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간격'을 인정하고 그 차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인문학의 시작일 것입니다. 흰색과 검정색 사이에 무수히 많은 '회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인문학을 공부하는 또 다른 이유로 제시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가 가치 있고 분명하다면 더 좋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생각하는 것에서 이미 인문학은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예로 남형도 기자의 책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소개했습니다. '애 없는 남자의 육아 체험' '집배원과 소방관 하루 체험' '폐지 수집 동행' '유기견 봉사'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직접 체험하고 그 속에서 느낀 내용을 쓴 에세이입니다.

사회적 이슈뿐만 아니라 자존감, 번아웃, 성격 등 개인의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는 그의 말과 행동이 바로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입니다.

느리지만 그 과정에서 관습을 깬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골드버그 장치에서 인문학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합니다. 혹시 우리는 세상을 흰색과 검정색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나요? 다양한 회색 컬러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을까요?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최대한의 비효율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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