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바니타스-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 김윤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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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7  |  수정 2022-09-27 07:15  |  발행일 2022-09-27 제14면

[문화산책] 바니타스-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김윤경 화가

'바니타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 세속적 즐거움의 무가치함을 상기시키는 오브제를 그린 정물화 장르이다. 용어는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라는 구약 성경의 전도서(The Book of Ecclesiastes)에서 유래하였고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철학을 담은 17세기 유럽 정물화의 배경이 되었다.

해골, 꺼져 가는 촛불, 하루살이, 시든 과일, 꽃 등으로 현세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바니타스 정물화는 악기·와인 등 세속적 풍류의 상징인 기물들과 함께 구성, 삶과 죽음의 요소를 한 화면에서 보여 준다.

전도서의 바니타스는 의미심장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 가쁘게 가고. 남쪽으로 불어 갔다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 세상만사 속절없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 리 없다.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마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을.'

바니타스화는 초상화에 함께 그려지다가 진화해서 한 장르가 되었다. 예술·과학을 상징하는 책·지도·악보를 비롯해 부와 권력의 상징인 지갑·보석·금, 세속적 쾌락을 상징하는 와인 잔·파이프·카드,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시계·타는 양초·금방 터져 버리는 비눗방울, 부활과 영생을 상징하는 옥수수 이삭이나 월계수 등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초기 바니타스화는 힘의 강조를 위해 책, 해골의 간단한 오브제로 밀도 있게 표현되었으나 점점 기물, 색이 다양해지고 분위기도 가벼워졌다. 역설적이게도 후기 바니타스화는 지나친 기교에도 불구하고 예술성이 더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렘브란트(Rembrandt)를 비롯한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물질만능주의, 종교, 철학의 권위가 약화하는 시대의 우리에게 바니타스화는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참으로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김윤경(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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