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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
대구는 뮤지컬의 메카다. 전국의 스토리텔링은 대구에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는 명실상부 전국 최대의 뮤지컬 제작 인프라를 가진 곳이다. 나는 그 속에서 울고, 웃고, 배우고, 놀았다.
대구시립감독을 역임했던 수장들은 공민왕과 노국공주 이야기를 바탕으로 안동 뮤지컬 '왕의 나라',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인 안향을 다룬 영주 뮤지컬 '안향', 대가야와 우륵의 예술혼을 담은 고령 뮤지컬 '가얏고' 등을 선보였다. 나는 운 좋게도 모든 작품에 배우로 참여했다.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깨너머로 배웠던 나는 여전히 햇병아리 '연출'이다. 그래서 '나들이 삼아 한번 놀러 오세요'도 부끄러워 말하지 못한다. "감독님들 저는 경남 진해로 갑니다. 오늘이 공연이거든요. 오신다고요? 음. 다행히 전 작가로 참여했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국악 뮤지컬 'since 1955 흑백'은 우리나라 3대 옛 다방 중 하나인 진해 '흑백다방'을 모티브로 했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서울 '학림다방(1956)에서 바둑을 뒀다면, 영화 '화차'의 문호는 진해 '흑백다방(1955)'에서 약혼녀의 실체를 알게 된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잘생긴 외계인 '도민준'도, 지옥으로 데려가는 불타는 수레 '화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어디서 한 번쯤은 만났을 법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도 촌스러운 '복희'다. 애 둘 낳고 남편 먼저 하늘나라에 보낸 뒤 혼자 사는 '복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8개월 전 이 작품의 주인공은 복희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백다방의 에피소드는 생각보다 화려하기 때문이다. 시인 김춘수는 진해 흑백다방에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썼고, 소설가 김탁환은 '불멸의 이순신' 초고를 마쳤다. 또 이중섭, 윤이상, 유치환, 서정주 등 내로라하는 화가와 음악가, 시인들이 이곳을 찾았다. 당연히 복희가 주인공으로 낙점될 리 만무했다.
2013년 제7회 DIMF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됐던 '사랑꽃'이 이례적으로 'DIMF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작품의 주인공은 그저 평범하고, 어디서 한 번쯤은 만났을 법한 그 이름도 촌스러운 '목련'이다. 나는 목련을 연기하면서, 9년 후 복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는 배포를 배운 건 아닐까?
장은주<뮤지컬 배우·연출가>

장은주 뮤지컬 배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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