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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무대에 오르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단연 화제작이다. 이번 축제에선 독일 만하임국립극장이 지난 7월 무대에 올린 최신 프로덕션인 '라인의 황금'(10월16일), '발퀴레'(10월17일), '지그프리트'(10월19일), '신들의 황혼'(10월23일) 등 니벨룽의 반지 전편을 모두 선보인다. 총 공연 시간이 16시간에 달하는 초대형 오페라다. 이 작품은 대부분 시리즈 작품 중 한 편만 공연하거나 콘서트로 선보여왔다.
연출을 맡은 요나 김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오페라 연출가다. 유럽에서 약 30개의 오페라 작품을 연출했고, 6편의 현대 창작 오페라 극본을 썼다. 현재 만하임국립극장 상임연출가를 맡고 있는 그는 푸치니, 베르디 등 이탈리아 오페라, 비발디, 헨델 등 바로크 오페라, 현대 창작 오페라, 바그너 등 독일 오페라까지 다양한 오페라를 아우르며 연출을 맡았다. 특히 바그너 작품은 그가 펼친 작품활동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공연에 앞서 김 연출가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번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독일 만하임국립극장 최신 프로덕션 4부작 시리즈 전편 무대 올려
바그너 사운드 특화 오케스트라·성악가·합창단·스태프 240명 내한
"오페라는 공동체적 경험…넷플릭스 보는 것과 다른 차원 경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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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만하임국립극장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중 '발퀴레'.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
▶한국 공연이 처음은 아니라고 들었다.
"2015년 국립오페라단 위촉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에서의 도주'를 연출했다. 이때는 제가 데려온 독일 스태프와 한국 성악가·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이 함께 했고 모국어인 한국어로 리허설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새롭고 특별했다. 이번 공연은 유럽 및 세계 각국 성악가, 만하임국립오케스트라·합창단과 작업해 유럽 관객과 만난 공연을 그대로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무대에 올린다. 고국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전공이 오페라와 상관이 없는데, 오페라 연출을 하게 된 계기는.
"나는 인문학을 공부했는데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를 보면서 연극과 극 자체에 관한 관심도 생겼다. 음악과 극예술 전반의 전통이 뿌리 깊은 빈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음악·무용 공연, 연극, 전위적 퍼포먼스, 미술 등도 자주 접했다. 돌아보면 그때 인문학 공부와 동시에 여러 예술 방면에 대한 시각을 두루 단련했던 것이 오페라로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극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오페라를 연출하게 됐는데 드디어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아낸 것 같았다."
▶니벨룽의 반지 전편을 올리는 건 독일에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공연하게 된 계기는.
"이 작품을 기획·제작해 단기간에 연달아 무대에 올리는 것은 대규모 전속 오케스트라, 전속 합창단, 다수의 전속 단원들을 보유한 유럽의 큰 오페라하우스에서도 어렵다. 4부작을 단기간에 연달아 공연하는 곳은 바이로이트('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의 도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만하임국립극장에선 코로나로 지치고 오페라 공연에 목말라 있던 독일 관객들을 위한 선물로 축제처럼 공연해보자는 뜻으로 기획했다. 극장 단원들과 일치단결해 앞만 보고 달렸지만, 마지막 공연인 '신들의 황혼' 공연 후 말 그대로 모두 탈진했다. 그러나 전편이 매진된 4부작 시리즈 공연에서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듣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만하임국립극장을 사실상 그대로 대구로 옮겨오는 것과 같다고 들었다.
"만하임 국립오케스트라 전체, 합창단, 출연 성악가들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의상, 분장, 조명, 영상 등의 담당자들까지 합쳐서 약 240명의 전속단원이 내한한다. 엄청난 양의 기악 악기들과 무대 세트, 소품, 무대 의상들도 모두 화물로 가지고 간다. 만하임국립극장과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무대 크기 및 형태가 달라 촉박한 시간 내에 여러 가지를 수정하며 맞춰 가야 할 것 같다."
▶이번 니벨룽의 반지는 현대적인 연출이면서 영상을 잘 활용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게르만 고대신화를 소재로 한 철학적인 대서사 음악극으로, 표면적으로는 21세기를 사는 현대 관객에겐 멀고 생소한 스토리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도 사랑, 증오, 욕심, 슬픔, 분노 등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신들도 그렇다. 그래서 그 속에 내포된 인간의 스토리에 집중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다가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때문에 고대 게르만의 자연 세계를 모방하는 무대미술이 아닌 현대적 스타일의 미니멀한 무대를 만들었고 여러 영상 이미지를 많이 사용했다."
▶이번 공연 출연진의 면면도 주목할 만하다.
"출연진 80~90%는 만하임국립극장의 전속단원이다. 대부분 바그너 작품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는 성악가들이다. 나머지는 유럽, 그리고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바그너 역할 전문 성악가들이다. 만하임 국립오케스트라 역시 바그너 작품을 자주 연주한 오케스트라로, 깊고 웅장한 소위 '바그너 사운드'에 특화돼 있다."
▶이번 공연에 대한 오페라 애호가들의 관심이 높지만,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바그너 오페라는 철학적인 소재, 방대한 작품 규모, 통상 오페라와 다른 성악 스타일 등등 때문에 유난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관객은 사전지식이 없는 순수상태로 바그너 오페라를 처음 보고 듣게 될 관객이다. 그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전지식은 편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오감을 열고 뛰어들어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특히 오페라는 큰 공동체적 경험이다. 무대 위, 오케스트라석, 관객석 모두 그 순간 라이브로 함께 한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러한 집단적이고 공동체적 경험이 더 소중해졌다.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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