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화가 권기철(2) 내 예술의 두 축은 동양의 선의 율동과 서양의 색채감이다…붓이 그 둘을 이어주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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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30   |  발행일 2022-09-30 제34면   |  수정 2022-09-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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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윤원근이 찍은 권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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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철 작업실 내부.

두 손 장애로 생긴 비범한 감각
세월의 소리 형상화…이미지 차용
진짜 내가 아닌 그림자 일 생각
그런 날 최고의 위안은 '大醉'
정신이 표상하는 것은 내적 깊이
재료의 물성에서 자유롭고 싶다


'길 밖'이 답이라 선문답하는 자들의 짓거리 또한 그 얼마나 유치찬란한 '수작(酬酌)'인가. 나는 서둘러 그걸 외면한다. 이것을 해도 서글프고 저것을 해도 푸르죽죽할 때, 죽지도 아니 살지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동굴에 갇혔을 때, 이윽고 빛도 증발하고 대화도 절멸했으니 혀도 소용이 없어 빼 버린다. 귓구멍도 빼 버리고…. 그렇게, 도무지 세상일이 모두 시시해 보일 때, 나는 바다도 대륙도 허공도 밤하늘도 빗줄기도 바람도 눈발도 용암도 오로라도, 더 아득하게는 블랙홀이라도 묵주처럼 돌리고 싶은, 내 삶이 내 것도 아니고,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고, 꾸역꾸역 떠올릴 생각과 사념이란 것 역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그런 아득하고도 난감한 한 시절, 낚싯바늘에 걸려 초겨울 옥수수 이파리처럼 20대를 맞이하였다.

내 생의 여명기에 필적할 수 있는 단 하나랄 수 있는 문장이 있다. 그 글의 주인공은 저세상으로 가버린 소설가 '박상륭'. 그의 출세작, 그러면서도 아직 완전한 해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의 길디긴 구절이다. 나는 이 시대의 예술쟁이에게 그 찬연작작한 '혈문(血文)'을 헌정하고 싶다. '득의만면한 자에게는 참수 같고 실의낙담(失意落膽)한 이에게는 번개 같은 기운으로 다가설 것이다.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러운 북녘 눈뫼로나, 미친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 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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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91x53㎝ 한지 위에 혼합재료, 2000.

◆묵률과 색률

나는 세월의 소리를 그려내는 사내, 권기철이다. 내 몸의 양대 제약조건이 있다. '묵률(墨律)'과 '색률(色律)'이다. 묵률은 동양의 미학으로 대별될 것이다. 중국 진시황때 승상이었던 이사(李斯)를 시켜 중원의 문자를 '소전(小篆)'으로 통일하려고 했던 때부터 조선의 겸재 정선, 신윤복, 김홍도, 그리고 추사 김정희가 구현해나간 해동 문인화의 신지평, 색률은 선사시대 알타미라, 라스코의 동굴벽화가 중세의 성화, 그리고 르네상스기의 세 천재를 딛고 현대 추상미술의 시원이랄 수 있는 세잔, 그리고 고흐·마네·모네, 야수파의 마티스, 입체파의 피카소, 칸딘스키, 말레비치, 몬드리안의 색면분할 혁명,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 변기를 샘이라 내밀었던 뒤샹, 그리고 미국발 액션페인팅의 삼대 산맥인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드 쿠닝, 마지막엔 예술 옆에 팩토리(Factory)를 부쳤던 앤디 워홀과 그 수하인 바스키아, 그리고 스스로를 황색재앙(Yellow peril)이라 선언한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

빌어먹을, 그럼 나는 어떻게 저 색채의 우주를 내 칼집에 넣지. 한없이 불콰해진 깊숙한 밤에 물끄러미 내 두 손을 내려다본다.

나는 두 손이 성치 않다. '병신'이다. 5세 때 작두에 내 오른손이 절단된다. 간신히 봉합했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의족을 달고 있는 거나 진배없다. 그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맹인과 벙어리가 남다른 감각을 가진 것처럼 나도 그 장애 때문에 비범한 감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2019년 11월23일 왼손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또 잃었다. 그날 나는 어이가 없어 그냥 어이쿠 하며 실소를 터트렸다.

어느 날 밤, 그림이 나더러 그랬다. "너에게 열 개 손은 너무 많다"고 했다. 그렇게 내 손가락 하나는 세월이 내민 레드카드 때문에 퇴장되어버렸다. 해를 넘기자 나는 '신의 한 수'를 수긍할 수 있었다.

난 방금 내 예술의 기수역에 틈입했다. 지난 시절이 포구에 갇힌 시절이라면 지금은 용암보다 더 붉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에 있다. 강의 시절과 바다의 시절이 내 유전자 안에서 선과 악처럼 교직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난 제1기 권기철과 작별 하고 있다. 다음으로 가기 위해선 희생물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무당'. 자신의 영혼에 방점을 찍어주는 그 어떤 초월적 존재를 위해 뭔가를 제단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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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올해 그린 자화상 드로잉.

◆미학의 변곡점

먹구름과 천둥, 비바람이 억수 같이 쏟아지던 하늘이 일순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로 돌아서는 그 변곡점을 이제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내 일상은 늘 피 냄새가 스멀거리며 다가서는 축제와 전쟁의 나날이다. 그래서 나는 쪼잔하게 일출과 일몰 사이에 살지 않는다. 자전과 공전 사이에도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전설과 신화를 큰형으로 모시고 싶지도 않다. 나는 당당히 그리고 온전하게 성스러운 나이고 싶다. 하지만 항상 진짜 내가 아니라 내 그림자인 경우가 많다. 그런 날 최고의 위안은 대취(大醉)다. 새벽녘 자리끼(머리맡 물)를 찾을 때 느끼는 비어 피어(Beer fear·술 취했을 때는 몰랐다가 깰 때 자각될 때 다가서는 일종의 자책감),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과 같달까. 모든 인연이라지만 실은 무연(無緣) 아닌가?

캔버스! 그 놈도 우주다. 깊이도 넓이도 없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자는 과연 나일까? 고도의 기술이 절정을 얻어 어떤 명성을 얻겠지만. 글쎄, 그건 고작 장인의 수준 아닐까?

그림이 예술이 되려면 내가 화가여서는 안 된다. 항상 화가보다 그림이 이겨야 된다. 늘 그림이 주인공이다. 그림이 화가에게 말을 걸어오기까지, 그 장구한 시간은 무엇으로 버텨야 하는가. 평생 붓만 들고 단 한 점도 그리지 못한 자는 누굴까? 어쩜 그자가 가장 고수인지도 알 수 없다. 기본이 근본이란 생각. 그 기본이라는 게 나를 지탱하면서도 일순 그 놈의 목을 댕강 잘라 버려야 된다. 상품과 작품의 경계란 너무나 난감하다.

그동안 나름 괜찮게 색을 쓰며 살아왔다. 그림도 적잖게 팔아먹었다. 삼국지보다 더 다사다난한 해를 다다이즘, 앵포르멜처럼 허덕거리며 기어 온 것 같다. 올해 가을, 나는 비로소 맑은 하늘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6번째 도록

우여곡절 끝에 6번째 도록이 며칠전에 나왔다. 2001년 서울시립미술관,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200점이 넘는 작품을 걸었던 대구보건대 인당미술관전(2014년)을 딛고 나는 얼추 나를 찾게 된 것 같다. 내 예술의 두 축은 동양의 선의 율동, 그리고 서양의 색채감이다. 붓이 그 둘을 이어주고 있다.

'음악에 색이 있고 소리에도 색이 있다'고 명징한 형태까지 읽게 한 작곡가는 무소르그스키다. 음악적 요소들이 미술에 적용된 예는 많다. 내 그림 역시 소리를 형상화함에 있어 구체적인 음악적 인자인 박자, 리듬, 화음, 멜로디, 하모니 등을 중요한 이미지로 차용한다.

화면 위에 나타나는 박자나 멜로디는 선의 빠름과 느림으로, 리듬은 굵고 가늘기로, 또는 길고 짧음으로, 화음은 정적인 공간으로 처리되며, 불협화음은 이질적인 색으로 전체 화면에 나타난다. 색채(色彩)의 강약은 소리에 대한 음색으로 나타난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색채의 특성상, 그것은 흥분과 추스름, 딱딱함과 부드러움, 때로는 경쾌함과 장중한 무게를 드러내는 심리적 동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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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봄 간다' 78x54㎝ 한지 위에 혼합재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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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중' 117x91㎝ 캔버스 위에 먹, 2003.

◆점의 정체성

점(點)은 정체성 확인을 위한 하나의 시각적 과제로 본다. 선이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면, 점은 함축과 절제 속의 또 다른 나다. 망막에 고정된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소리에 관한 청각의 시각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소리나 일상의 소리 등 모든 행위로 발화하는 소리는 나와 세상을 말해주는 점으로 표현된다. 현대 문명을 거부하기 어려운 내게 점은 어느 면에서 삶의 매혹적 분석과 관찰을 포함하는 내적인 의미, 내적 긴장, 침묵과 언어를 연결하는 삶의 현재성을 포함한다.

나 또한 수묵의 깊이에 매료되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먹으로 충족되지 않는 표현 욕구는 다른 여러 재료를 접목함으로써 해소한다. 다양한 혼합 재료의 사용이 표현력을 왕성하게 한다. 그러나 여러 형태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 곧 물질만 드러내고 정신은 빈약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때로는 갖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재료를 옷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정신이 표상하는 것은 내적 깊이이므로 재료의 물성에서 가능한 자유롭고 싶다. 예술도 여러 삶의 한 형태이다. 그렇다면 내 회화가 지닌 서술이 그리 거창하거나 지나친 삶의 형태로 비약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나는 단지 평면 신봉자일 뿐이다. 관찰자가 그림을 보는 순간 그림은 이미 추상적이 된다. 구상은 어떤 의미에서 물리적으로 재현된 것이고 추상은 시간과 공간의 비주얼을 오롯이 표현한 것이 다른 차이다. 그림이란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논리의 비약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추상적인 '느낌'이란 게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의 예술작품은 애매모호함에 깃든다. 그래서 예술은 삶보다 장구한 것이고 그래서 인간은 예술 때문에 카타르시스 되는 것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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