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자유여행가 안용모 "용기를 갖고 돌아오지 못할 만큼 멀리 떠나라"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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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4   |  발행일 2022-10-05 제13면   |  수정 2022-10-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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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가' 안용모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여행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여행 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코 끝을 스치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모두가 꿈꾸지만, 선뜻 가방을 꾸리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나중에'라고 스스로를 주저앉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여행가는 다르다. 가고 싶은 세계에 '과감히' 발을 내디딘다. 봉화 출신의 안용모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건축공학과)가 그렇다. 100여 개 나라의 600여 개 도시를 다녔다. 전세계를 누볐다.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했고, 남극과 북극도 밟았다.

안 교수는 대구도시철도건설본부장을 역임했다. 대구도시철도 역사의 산증인이다. 40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모노레일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줄기차게 세계를 여행했다. 여행사 사장이나 여행 전문가보다 더 많이 다녀 '자유여행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안 교수는 '여행을 일처럼, 일을 여행처럼'을 모토로 삼는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기록한다. 안 교수가 지금까지 작성한 여행 수첩만 150권에 이른다. 여행 수첩에 시간대별로 여행의 기록이 빼곡히 담겨 있다. '여행을 일처럼'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글씨체도 정자(正字)로 또박또박 정성을 다했다. 안 교수는 여행 전도사이기도 하다. 최근 '떠날 자유! 머무를 용기! 나만의 여행 방법'을 주제로 대구시니어아카데미 평생대학과정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지난 28일 가창에 있는 카페 겸 갤러리 '아트도서관'에서 안 교수를 만나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 언제부터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초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책에서 본 파란 눈, 노란 머리가 너무 신기했다. '이런 사람을 좀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김찬삼 교수가 쓴 10권짜리 세계여행을 읽고 '세계여행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안 교수가 처음 해외여행을 떠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인 197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기 전이었다. 당시 펜팔로 사귄 영국인의 도움을 받아 한 달 정도 영국을 다녀왔다. 안 교수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에서 2박 3일 안보교육을 받고 떠났다. 영국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 홍콩, 인도 뭄바이, 중동 바레인을 거쳐 런던에 도착했다. 김포에서 런던까지 가는 데 36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영국 북서부 해안도시 워킹턴에서 포항제철을 건설한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 흉상도 봤다. 안 교수는 "영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거의 모르던 시절이라 정말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 공직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공직 생활을 하면서 돈의 가치보다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공직에 있을 때 여행에 관심을 두다 보니 행정안전부나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공모에 늘 1등으로 당첨됐다. 국제세미나나 학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많이 보고 느껴야 아이디어도 나오고, 창의적인 행정도 할 수 있다."

▶ 여행의 가치, 여행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행은 위로와 휴식, 자유를 준다. 환경, 역사, 언어가 전혀 다른 새로운 곳에서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큰 힘과 배움도 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으면 여행을 했을 때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 여행은 행복의 원천이다. 일상에 쫓겨 느끼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고, 꽃피우지 못했던 꿈을 꾸면서 삶을 새로 계획하게 된다. 삶의 마법 같은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면서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영어를 못해서라는 이유를 대는데, 여행을 안 가기 위한 핑곗거리를 찾는 것이다. 시간을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돈도 국내에서 생활하는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영어는 자신감의 문제이다. 나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 100개 정도 단어만 할 수 있다. 동물하고도 눈을 맞추면 의사소통이 되는데, 사람끼리 만나 소통이 안될 이유가 없다. 더욱이 그 나라에 돈을 쓰러 가는 건데 시간이 다소 지체될 수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 여행 준비는 어떻게 하나.

"패키지 여행은 하지 않는다. 자유여행을 하면 여행을 세 번 하는 것이다. 여행 계획을 짜는 게 첫번째 여행이고, 현지에서 두번째 여행을 한다. 세번째 여행은 다녀와서 정리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여행 정보도 공유한다. 여행을 준비할 때 '동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동 거리와 이동 시 교통편이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호텔보다 게스트하우스나 유스호스텔에 머무른다. 그런 곳을 가야 여행자들끼리 만나 정보도 주고 받고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비용도 저렴하고 예약도 수월하다. 혼자 여행을 하면 '한 자리'는 있기 마련이라, 예약을 안 해도 별 문제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한 자리는 쉽게 티켓을 구할 수 있다."

▶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위험한 순간도 있지 않나.

"한 달 이상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강도를 한 두 번씩 만난다. 강도가 원하는 것은 돈이다. 나름대로 준비를 해 간다. 20달러씩를 바지 왼쪽,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안동 하회탈 펜던트도 스무개 정도 갖고 나간다. 새벽에 모스크바 기차역을 나가다 강도를 만났다.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뒤져 '지금 이것밖에 없다'며 20달러를 건넨다. 그리고 목에 걸고 있던 안동 하회탈 펜던트를 준다.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강도를 물러나게 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동유럽의 야간열차에서도 강도를 만났는데, 그런 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 여행 가방은 어떻게 꾸리나.

"배낭을 반만 채워서 나간다. 여행은 착한 여행이 돼야 한다. 여행의 끝은 결국 사람이다. 절대 한국 음식을 가져가지 않는다. 철저히 현지식으로 먹는다. 현지에 가서 팔아주고 먹어줘야, 그 나라 사람들도 즐겁고 나도 즐겁다. 현지인과의 약속도 지켜야 한다. 방글라데시를 처음 갔을 때 한국에서 근로자로 3년 정도 생활한 현지 청년을 만났다. 청년이 다음 해 결혼식을 하는데 주례를 부탁하더라. 주례는 곤란하고 참석하겠다고 했고, 약속을 지켰다. 우리나라의 멋진 한복과 태극기, 방글라데시 국기를 들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굉장히 감격해 했다. 나라별로 맞춤형 기념품을 들고 나가기도 한다. 준비를 해가면 여행이 풍부해진다."

▶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나.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혼자 다니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 가면 유적, 아름다운 자연이 친구이다. 외롭다면 외로움까지 친구이다. 외로울 겨를이 없다."

▶ 여행을 하면서 어떤 기념품을 구입하나.

"컵을 하나씩 사 온다. 다음 여행 갈 때까지 그 컵에 커피를 타 마신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 여행지가 기억이 난다. 작은 기차 모형을 살 때도 있다."

▶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돌아오지 못할 만큼 멀리 떠나라고 얘기하고 싶다. 안전이니, 영어 울렁증 같은 것들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말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행복하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했다. 여행도 가면 갈수록 가야 될 때와 가봐야 할 곳이 많아진다."
안 교수는 오는 11월 한 달 일정으로 이란을 다녀올 예정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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