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복어...콩나물 무침 별도로 내는 대구권 복어탕, 종잇장처럼 얇게 포 뜨는 복어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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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08:41  |  수정 2022-12-02 09:16  |  발행일 2022-12-02 제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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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부산경남권과 달리 복국이라 하지 않고 '복어탕'이라고 부른다. 특히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무친 콩나물무침은 대구권 복어탕에 없어서는 안 될 으뜸 반찬이다.

2300년 전의 중국 전국시대 산해경(山海經)이라는 고서는 복어를 '적해' 또는 '패패어'라고 기록하고 이 생선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 민물 복어를 가리켜 하돈(河豚)이라고 돼지 돈 자를 쓴 것은 그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복어는 전 세계에 1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는 복어목 참복과에는 청복, 수지복, 줄무늬복, 흑밀복, 민밀복, 은민밀복, 밀복, 은띠복, 은밀복, 불룩복, 황해흰점복, 참복, 두점박이복, 황점복, 복섬, 황복, 졸복, 흰점복, 검복, 자주복, 매리복, 까칠복, 까치국매리복, 국매리복, 까치복, 가시복, 개복치 등 약 27종류가 서식하고 있다.

서울·경기권서 즐겨먹는 맑은 복국
일본식 조리법 알려진 경남권 식당
日 이토히로부미 극찬 고급요리 성장
복어회 폰즈…한국은 신맛 더 강해

대구 60~70년대 최강 복어집 대하림
복어불고기 시대 연 미성복어 명맥


◆복어에 대한 다양한 기록

우리의 복어 식용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복백탕(鰒白湯)'이라 불리는 맑은 복국은 서울·경기 지방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다. 임진왜란을 준비 중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복어 독으로 인해서 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이유로 복어의 취식을 금지하게 했고 이후 1888년까지 공식적으로 복어는 먹어선 안 되는 생선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결코 '복어 식용 금지령'이 발포되지 않았다. 야마구치현의 어부들은 식민지 조선의 동해와 남해에서 복어를 잡았고, 그것을 부산이나 마산 항구에 풀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복어요리법을 배워 부산과 마산 사람들도 복국을 먹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복지리'로 알려진 복어국이다. 복지리의 '지리'는 일본어 지리(ちり)이다. 알다시피 '지리'는 냄비 요리를 가리킨다. 일본인들이 주로 복어를 요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산시사에서는 마산에서 복국이 유명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옛날 마산의 해안은 낙동강 물이 섞이고 해안선이 복잡하여 복이 서식하기에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어시장에서는 복을 경매하여 전국 일식집으로 보내었다. 때문에 마산의 복요리가 유명해졌을 것이다. 사실 1960년 이전의 마산만은 청정해역으로 복어의 서식지였으며, 마산 어시장은 복어 집하장이어서 복요리가 개발되고 전수되어 전국의 유명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251-8의 '남성식당'을 1945년에 처음 개업했던 최달옥은 식민지시기에 일본에서 복어 조리법을 배웠다고 알려진다. 이처럼 본래 복국은 일본식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비록 조선 시대에도 복국을 먹었지만 지금의 마산 복국은 일본식에서 진화한 것이다.

새나라가정요리학원장 왕준련은 동아일보 1967년 11월23일 자에 복어국 만드는 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이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왕준련이 소개한 조리법은 일본식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당시 새롭게 등장한 고추장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0년 중반이 되면 복어 식용이 증가하면서 그 조리법이 거의 처음으로 신문에 등장했다. 최달옥의 딸 박복련도 1962년 3월 '특수식품취급자' 증명서를 경남도지사로부터 받았다.

◆이토 히로부미와 복어

일본은 복어의 식용이 위험이 따르는 데도 꾼들은 여전히 이 고기의 진기한 맛과 더불어 '조절된' 분량의 독이 가져다주는 느긋한 행복감과 열이 확 올랐다가 식는 느낌, 얼얼한 맛 등을 즐긴다. '복어취식금지령'은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서 풀리게 되었다. 혼슈(本州)의 남쪽 끝자락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의 제법 규모가 있던 료칸인 '春帆樓'에 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묵었던 날은 며칠간 풍랑이 불어 총리 일행을 먹일 만한 음식이 변변치 않았다. 평소 시모노세키 앞바다의 생선을 잡아 요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 료칸의 주인은 마침내 죽음을 각오하고 일행이 처음 보는 생선 요리를 바쳤고 이 요리의 맛을 본 이토 히로부미는 감탄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주인을 불러 생선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풍랑으로 온 마을에 생선이 씨가 말라 요리 할 생선이 없기에 국가에서 금지한 것을 알면서도 풍랑에 떠밀려 온 복어를 잡아 요리를 했노라고 실토하고 죽여달라 읍소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독을 제거하는 기술을 보급하고 복어를 요리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이 식당을 위해 '국가 인정 복어 요릿집 1호점'의 명예를 내렸다. 이후 복어는 카이세키요리(會席料理)의 재료로 부각되면서 순식간에 고급 요리로 자리 잡아 1920년대에 이미 일본 전체에 복어 요릿집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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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회는 복요리의 백미라고 부른다. 복어의 꾸밈없는 '살맛'을 고스란히 전해 주며 살이 워낙 단단한 생선이기 때문에 종잇장처럼 얇게 포를 떠야 한다. 그래서 다른 생선회 접시와 달리 복어회 접시는 무늬가 화려한 접시를 사용한다. 사진은 수성구 범어동 감포은정복어의 복어회.


◆일본 복요리 코스

일본의 복요리 코스는 크게 회(사시미), 껍질무침, 튀김, 수육, 맑은탕, 죽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복어회는 복요리의 백미라고 부른다. 복어의 꾸밈없는 '살맛'을 고스란히 전해 주며 살이 워낙 단단한 생선이기 때문에 종잇장처럼 얇게 포를 떠야 한다. 그래서 다른 생선회 접시와 달리 복어회 접시는 무늬가 화려한 접시를 사용한다. 일반적인 회 접시는 무늬가 화려하면 시선이 분산되어 생선회가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게 되므로 무늬를 최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복어회는 얇게 포를 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화려한 무늬가 회를 통해 투과되어 보이도록 색상도 강렬하고 화려한 무늬의 접시를 사용한다.

일본의 복어회는 보통 석 점을 한입에 먹을 만큼 크기가 작다. 한점의 크기가 보통 폭 1㎝ 정도에 길이가 4~5㎝가 일반적이다. 그렇게 작은 회 석 장을 깔고 가느다란 재래종 쪽파나 미나리 줄기를 한두 개 얹고 돌돌 말아서 폰즈 소스(이하 폰즈)를 찍어서 먹는다. 일본의 찍어 먹는 소스의 변화도 흥미롭다. 복어회는 다른 생선회에 비교하면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지만 사실상 별다른 맛은 없다. 예민한 사람들은 특유의 향이 있고 맛도 거론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냥 무미(無味)에 가깝다. 결국 맛은 소스의 맛일 수밖에 없다.

◆폰즈

전통적으로 복어회에 곁들이는 소스는 폰즈이고 이점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폰즈는 가쓰오부시 다시 물에 간장을 혼합한 기본 베이스에 식초와 청주, 레몬즙을 혼합한 것으로 원래는 레몬즙이 아니고 유자즙을 사용하는 소스였다. 유자보다 레몬이 흔해지면서 지금은 레몬이 일반화된 것인데 식초, 청주, 레몬(유자) 등은 식중독에 대항하여 살균력이 있는 식재료라서 선택된 것이다. 그런데 이 폰즈도 한국과 일본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폰즈는 레몬즙과 식초를 비교적 부드럽게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신맛을 강화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샤브샤브가 일품요리로 한국에 많이 보급되면서 폰즈는 신맛이 더 강해지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폰즈에 무즙과 실파 등을 더해서 색다른 맛을 낼 수 있도록 변형시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오직 폰즈만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곳에 따라서 폰즈에 고추냉이를 곁들여 내는 식당도 있다. 이는 회는 무조건 고추냉이를 곁들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조리사들의 일방적인 실수라 하겠다.

폰즈는 한국에서는 복어튀김에도 찍어 먹는 소스로 주어지는데 이 또한 일본의 복어튀김과의 차이라 하겠다. 일본식 튀김은 원래 '덴다시'라는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순하고 부드러운 소스인 덴다시는 맑은 간장 국물처럼 만드는데 다시마의 감칠맛을 잘 우려낸 소스로 짜지 않기 때문에 튀김을 푹 담갔다가 먹는다. 갓 튀긴 튀김의 바삭한 질감은 살아있고 겉에 맺혀있는 덴다시의 감칠맛이 튀김의 풍미를 더 좋게 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진간장을 베이스로 양념간장을 곁들이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음식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빈대떡'이나 '전'에 곁들이는 양념간장이 조금씩 바뀐 상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 하겠다. 결국 동일한 간장 문화이지만 그 사용 방법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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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권 복어탕

◆대구 복어 명가

역시 60~70년대 대구의 최강 복어집은 '대하림'이었다. 뒤를 이어 시청옆 둥굴관· 송림, 계산동 거창식당, 반월당 네거리 광성식당, 범어동 감포은정복어, 동구와 중구에 직영점을 가진 해금강, 서구의 경우 원대오거리 근처 자갈마당, 그리고 달서구는 성당복어, 본동복어와 월성복어, 대명동은 용궁복어 등이 인기몰이를 한다. '복어를 잡는사람들'은 가맹점 시대로 기반을 잡았다.

부산~마산~진해~통영권 복어집에는 대구처럼 복어탕이라 하지 않고 '복국'이라 한다. 대구 토박이가 너무 좋아하는 고춧가루와 참기름이 환상적으로 버무려진 콩나물무침을 별도로 내지 않는다. 복어를 갖고 불고기 시대를 연 미성복어는 원래 예천의 한국관의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지리형 복어불고기를 벤치마킹해 자신의 창법을 승화시켰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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