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에게 보내는 편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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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6 07:54  |  수정 2023-01-06 08:02  |  발행일 2023-01-06 제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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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아양아트센터에서 전시 중인 계묘년 '23토끼야전' 포스트. 〈아양아트센터 제공〉

입문(入門) 전이거나, 입문했어도 갈 길 몰라 갈팡질팡하거나, 졸업을 했다 해도 다시 어느 길을 걸어야 할지 막막한 것. 그게 삶이겠죠. 삶은 그럭저럭 합산하면 제로(ZERO)이겠죠.

매양 신년벽두(新年劈頭)는 일출의 벅찬 감정 그리고 그 감정 속에 희망과 꿈 그리고 그 곁에 행복을 장착하려 하는 인간의 맘만큼 지구를 푸릇하게 만드는 힘도 드물 것 같네요.

5, 4, 3, 2, 1, 0.

제야의 종소리가 들리고 한 해의 첫 해돋이를 마주한 순간, 그때만큼은 모두 지상에서 가장 풋풋한 미소를 피워물 겁니다. 비록 그것이 관례·관행·통과의례라 해도 말이죠.

더없이 환한 표정이지만 실제 속내까지 그럴 수는 없다는 걸 다 알아도 다 망쳐버린 일상이라지만 새해 첫날은 새로운 버전으로 새로운 심기일전의 '핑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망가져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희망 바이러스'가 바로 송구영신 근하신년입니다.

지구의 첫날 그리고 지구의 마지막 날. 그 사이에 간이역 같은 새해 첫날이 없다면. 오직 종말만을 향해 걷기만 하는 인생이라면? 성공적 출발이 영원히 성공이거나 불행적 출발이 영원히 불행이라면, 그래서 일점일획 반전 드라마가 없는 삶은 진정 살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부모의 재산을 영원히 대물림한다면, 불행과 행복, 슬픔과 기쁨이 되풀이 안 된다면, 봄·여름·가을·겨울이 반복되지 않는다면, 변화와 반성, 후회와 결심이 없는 삶이라면? 너무도 뻔해 진정 살만한 가치도 사라질 것입니다.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 누구도 완전한 길을 갈 수 없다는 것, 그게 바로 신의 한 수 아닐까요. 일상에는 우열이 있다지만 일생은 '생자필멸(生生者必滅)'이란 기준에서 본다면 모든 게 평등하죠. 정말 명쾌한 대목입니다.

가끔 겨울밤 보일러 물이 제대로 공급되는 것만 해도 큰 위안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온기마저 언감생심인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벼랑 끝으로 밀려버린 일상, 그들에겐 솔직히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이 크게 위안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인의 가르침, 그게 큰 비빌 언덕이 되었다면 하루 100명이 넘는 한국의 하루 자살자의 수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전국 방방곡곡의 자선봉사자와 기부천사 그리고 행정복지센터와 각종 복지단체, 익명의 기부자 등. 하지만 우리의 행복지수는 절망지수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각종 경제 수치는 모두 마이너스 행진입니다. 국내 기업의 대출액이 1천조를 상회해 버렸습니다. 청년 백수의 삶은 실수가 아니라 허수가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결혼도 싫고, 설령 결혼해도 아이를 놓지 않고, 알바 외에는 제대로 된 직장이 없다고 믿는 삼포족 청년들의 유일한 위안이 SNS상의 '좋아요'란 댓글 팔로워라면.

노동가치는 숭고하죠. 하지만 각종 지원금, 보조금, 후원금 등에 올인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 나라 경제는 '심정지' 하고 마는 겁니다. 그 시절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죠. 그런데 지금 평생을 보장하는 직장이 공무원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하고 싶어도 오순도순한 가정을 가능케 하는 돈벌이가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무원만 남고 나머지 직장은 절멸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경제력은 여전히 세계 10위권입니다. 지옥의 대한민국, 그 변수도 무궁무진, 천국의 대한민국, 그 변수도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의 잠재력은 세계 최강인 것 같습니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을 것 같은 대한민국. 당신은 그런 대한민국의 2023년을 위해 무엇을 요구할 건가요. 아니, 무엇을 해줄 건가요. 이 나라의 주인은 여전히 있는 자가 아니라 없는 자가 아니라 자기 본분을 다하는 자들입니다. 남이 나보다 더 소중하고 대단해 보인다면, 그 국격은 미래지향적입니다.

부디 독자제현의 파워풀 월드를 기원합니다.

올해 커버 사진은 지난해처럼 동구 아양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계묘년 '23토끼야전'에 출품한 작가들의 작품들입니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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