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땅속에서 얼굴 내민 봄 전령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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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20 07:39  |  수정 2023-01-20 07:42  |  발행일 2023-01-20 제33면
설한풍에 이른 봄소식 가장 빨리 전해주는 동백꽃
옥대에 금술잔 받친 모양…고혹적 자태 수선화
포항 구만리~강사리해안 해풍 먹고 자란 포항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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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납매, 수선화, 포항초, 동백꽃.

설중화(雪中花). 나는 매년, 이 무렵이면 한 계절 앞서 겨울 속 봄을 친견하려 한다. 지구온난화 탓일까. 예전 한겨울에는 상록수를 제외하곤 모든 수목과 풀이 잎을 다 날려버리고 동면에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웬만한 잡초는 설한풍에도 견딘다. 앞산순환도로 개나리는 한겨울부터 개화를 시작한다. 불분명해진 계절이다.

역시 동백꽃이 가장 빠르다. 제주도~남해안~서해 마량포구까지 광대역으로 이른 봄을 설한풍 속에 전해준다. 사실 동백꽃은 사철 핀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가면 동백꽃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테마식물원 '카멜리아힐'이 있다. 요즘 이곳은 동백기름이 들어간 동백꽃빵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5대 동백꽃 명소는 서귀포권에 몰려 있다. 호근동 '숨도'(옛 석부작박물관), 상효동 '상효원', 남원읍 위미리 '제주동백수목원', 남원읍 '동백포레스트' 등이다. 제주동백수목원은 국내에서 가장 큰 수령 45년생 이상의 애기동백나무숲이 있다.

제주도를 벗어나면 신안군 압해도, 여수 거문도, 통영 욕지도,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서해 마량포구 동백정까지 퍼져있다. 이듬해 4월까지 북상한다. 신안군 압해도 분재공원에는 애기동백나무 2만그루가 3㎞ 구간을 수놓는다.

역시 전령사로는 수선화가 제격인 것 같다. 지난 1일 제주도 한림공원 수선화 공원 내 30여만 그루의 수선화가 만개했다.

한국 수선화의 양대 산맥은 제주도와 거제도이다. 여타 다른 지역의 수선화는 대부분 유럽에서 개량한 원예종이다. 꽃 전체가 노란색인 것이 많다. 거제도 수선화는 흰색 꽃잎에 컵 모양의 노란색 부화관(副花冠·덧꽃부리)이 조화를 이룬 '금잔옥대(金盞玉臺)'다. 금 술잔을 옥대에 받쳐놓은 모양이라는 뜻이다. 제주도에 피는 수선화는 두 종이다. 하나는 꽃이 크고(몰) 속 꽃잎이 마늘(마농) 뿌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제주도 방언인 '몰마농꽃'이라고 불린다. 제주 수선화는 부화관 없이 꽃 가운데에 꽃잎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형태로 11월부터 3월까지 폭넓게 개화한다.

서예가 겸 제주대 강사인 오창림씨는 수선화를 제일 먼저 언급한 이가 추사가 아니라 오정빈이라고 주장한다. 정의현 최초의 문과급제자인 오정빈(1663~1710)이 '수선화'라는 제목의 7언절구 두 수를 통해 싸늘한 은대에 얹어진 따뜻한 금잔의 대비로 수선화의 고혹적 자태를 실감 나게 표현했단다.

지난 11일 오전, 대구수목원에 연락했다. 매화보다 빠른 복수초와 납매·풍년화는 아직 피지 않았단다. 원래 납매(臘梅)는 음력 12월(섣달)에 피는데 중국에서 건너온 수종이다. 언뜻 보면 난초 꽃 같은 기품을 갖고 있다. 풍년화는 꽃 둘레에 화분이 촉수처럼 매달려 있어 인상적이다.

월동채소도 겨울 속 봄을 알린다. 제주도 무, 당근, 양배추, 해남 김장용 배추, 그리고 포항 호미곶면으로 가면 구룡포권과 맞물려 벨트화된 과메기는 물론 보리와 시금치까지 한 세트로 체험할 수 있다. 특히 구만리~대보리~강사리 해안 언덕배기로 가면 해풍을 먹고 자란 '포항초(겨울 시금치)'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동절기 시금치의 양대 산맥은 포항에서 나오는 '포항초'와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나오는 '섬초'다. 포항초도 여러 문파가 있다. 호미곶에서는 '해풍시금치', 칠포해수욕장 근처의 '곡강시금치', 이 밖에 청림동, 연일읍, 동해면 등에서도 출하된다.

국내 시금치는 대개 두 가지 종자로 나뉜다. 봄에 파종해 여름에 먹는 종자는 서양계다. 병충해가 적고 더운 기후에 잘 크는데 대신 맛이 싱겁다. 여름에 먹는 시금치들은 다 이 종류다. 이와 달리 가을에 파종해 겨울에 수확하는 포항초·섬초들은 모두 동양계. 포항초는 한때 '해도시금초'로 불렸다.

남해안 해풍쑥도 전령사다. 아직 한산도와 욕지도의 해풍쑥이 나지 않아 통영 강구안 도다리쑥국은 못 팔고 있는데 놀랍게도 고령 대가야시장 '미주식당'은 벌써 개시했단다. 조만간 거기나 갔다 와야겠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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