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갱년기 문화운동가 정경아, 여성 갱년기 지침서 '나이 먹는 즐거움'…유쾌발랄 노년기 삶 전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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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7 09:23  |  수정 2023-02-17 09:24  |  발행일 2023-02-17 제35면
좌충우돌 갱년기 보고서 책 발간
온라인 '건달 할미 연대기'도 화제
자신은 서울 남편은 대구서 생활
가족 각자 잘 놀다 또 함께 잘 놀아
남은 여정까지 '으랏차차 노년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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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남편이 있는 동구 평광동 집에 온 아내가 룰루랄라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다. 만면에 가득한 파안대소, 갱년기 문화 운동가를 자청한 그녀의 일상은 탱고처럼 강렬하면서도 잠자리 날개처럼 홀가분하다.

일흔을 눈앞에 둔 난 정경아(필명은 박어진). 매 순간이 파티인 '아짐씨'였다가 일순 '명랑할멈', 계절의 변화에 빛의 속도로 반응하며 사는 '감동녀'. 유쾌 발랄~ 룰루랄라…, 그렇게 그럭저럭 '빈둥빈둥 잘 먹순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지면을 통해 노년사용법, 남편사용법 등을 전수해 주고 있다. 지인들에게 '얘들아, 비굴하게 젊어 보이려 애쓰지 말자. 매력 있는 할매 클럽, 뭐 이런 거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어때. 이거 숙제야!'라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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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출간해 호평받은 책, '나이 먹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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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한 책 내용 중 아들의 설거지 부분.

◆춤추는 할매

올해 그의 숙제가 있다. 그건 '김수악류 진주교방 굿거리춤'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한국무용 배우기'라는 유튜브 채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녀 인생의 팔 할은 웃음. 미소와 한 몸으로 움직인다. 1초가 멀다 하고 깔깔댄다. 순도 99%짜리 파안대소. 그건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그냥 천성이다. 툭하면 웃어댔던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은 그런 날 보고 '뻥쇠'라 했다. '맹랑하고 유쾌하고 순박한 놈'이란 별명이었다.

이제 어지간히 평범해졌다. 되고 싶은 인물상도 딱히 없다. 그냥 정경아로 살다 가고 싶어 한다. '여성갱년기지침서'랄 수 있는, 그의 개똥철학이 집대성된 한 권의 책이 있다. 2007년 한겨레출판사에서 출간한 박어진의 좌충우돌 갱년기 보고서인 '나이 먹는 즐거움'이란 책이다. 그게 화제가 됐다. 그 인연으로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연재, 최근에는 조금 입소문이 난 처지였다. 현재 '브런치(Brunch)'란 온라인 글쓰기 공간을 통해 '건달할미 연대기'란 닉네임으로 은퇴 후 삶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쉽고 깔끔하고 그러면서도 짠한 메시지가 담긴 그의 글솜씨는 수준급. 고건 전 서울시장도 그의 글에 반해 자서전 집필을 위해 러브콜을 할 정도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 산하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11년 활동했다. 대구로 내려와 미국공보원(USIS)에서 8년 정도 근무했다. 그러다가 1997년 7월 대구 USIS가 문을 닫을 때 상경,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선임전문위원으로 근무를 했다. 카이스트 공학박사 출신인 남편(송재원)을 만나 84년 결혼을 했다. 남편은 경북대 IT대학 전자공학부 교수로 있었다. 그래서 4년간 주말부부를 감내했다. 생활명상클럽인 '새세상여성연합대표' 등으로도 활동했지만 지금은 '이름 없는 정경아'로 사는 게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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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평광동 집 뒤란 장독대에서 커피 잡담을 나누는 부부.

◆짠한 '웬쑤' & 남편

남편은 종일 한글의 자모 체계를 연구한다. 뜬금없이 한글연구라니? 이유가 있었다. 한글의 점자화가 그의 화두 중 하나다. 현재 쓰이는 점자는 배우기 어렵다는 게 그의 소견. 앞으로 한글 공용화를 추진할 세계인에게 쉽게 익혀 쓸 수 있는 점자를 보급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갖고 있다. 스마트폰 한글 자음과 모음도 현행보다 더 편리한 배열 방식을 고안해 냈다고 주장한다. 연구 덕분에 속기사용 자판 시스템을 참고로 해서 세상에서 가장 편리한 신개념 노트북 한글자판기 모델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 중이다. 자기가 개발한 자판이 나오면 글쓰기 속도가 엄청 빨라질 거란다. 그래서 그런지 대구 남편 집은 사계절 난장판이다. 망원경 20대를 포함,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자재와 공구, 목재 더미들은 서울 아파트의 수용범위를 넘어섰다. 책 더미를 제외한 건데도 말이다. 남편은 대구 사과의 마지막 자존심인 동구 평광동에 새집을 지어 13년째 살고 있다. 그전에는 산 주인이 되고 싶어 청도에 있는 산을 구입하기도 했다.

◆슬기로운 노년

그의 가족은 참 이상하다. 각자 알아서 너무나 잘 논다. 그는 서울에서, 남편은 대구에서 논다. 딸은 서울, 아들은 평택에서 잘 굴러간다. 한 달의 반은 대구로 내려가 남편과 함께 논다. 딸과 아들의 삶에 대해 그가 지켜 온 최소한의 개입 원칙, 이젠 남편에게도 확대 적용 중이다. 남편이 그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처럼 그 또한 남편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둘은 만나면 좋은 친구로 '명랑한 별거 시대'를 살아간다. 그는 지금 결혼한 독신주의자 같단다.

그의 노년 사용법의 요체는 '완주(完走)'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당분간 계속될 삶의 여정을 끝까지 가보는 거다. 그러려면 'Travel light', 봇짐은 가볍게 꾸리는 게 맞다. 물론 제아무리 호탕하게 출발한들 어느 시점부터 고독과 질병의 연대기로 바뀔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갈수록 예측이 불가능한 게 노년이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으로 최대한 명랑하게 그의 '으랏차차 노년탐사'는 쭉 계속될 것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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