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127시간'(대니 보일 감독·2010·미국, 영국)…위기 속에서 부르는 삶의 찬가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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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7 09:39  |  수정 2023-02-17 09:40  |  발행일 2023-02-17 제39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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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주요부문을 휩쓸었던 대니 보일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127시간'을 선택했다. 영화 '127시간'은 27살의 모험가 아론 랠스톤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2003년 4월, 미국 유타주의 블루존 협곡에서 홀로 등반을 즐기던 아론은 날아온 바윗돌에 한쪽 팔이 낀 채로 갇히게 된다. 평소처럼 주말을 즐기려던 그는 영원과도 같은 127시간, 즉 닷새하고도 일곱 시간을 맞이한다. 영화는 고통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생각과 마음 그리고 고통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탈출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제83회 아카데미 작품, 감독,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이 영화는 각본·감독·제작을 겸한 대니 보일의 뛰어난 연출과 리듬감 있는 편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주연을 맡은 배우 제임스 프랭코의 빼어난 연기가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시작부터 귀를 사로잡는 음악 또한 탁월하다. 모험 영화지만 액션에 비중을 두기보다 인물의 의식을 따라가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독특한 영화다. 영화답게 극적인 요소도 가미했지만, 자서전의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다.

자신만만하게 모험을 즐기던 젊은이가 사고를 당한 순간, 극단의 고립 속에서 떠올린 것은 무엇일까. 침착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던 그는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깨닫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캠코더로 유언이 될 메시지를 녹화한다. 행선지를 알리지 않았음을, 좀 더 자주 연락하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위기의 순간에 그를 붙잡은 것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유대관계였다. 마치 환상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본다. 또한 미래의 아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를 이겨내고, 마침내 스스로 팔을 자르고 자유를 얻는다.

실화라고 하니 망정이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자서전을 읽어보니,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알았다. 피가 통하지 않는 팔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어차피 죽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한 그렇게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팔을 자르는 고통보다 자유를 얻은 기쁨이 더 컸다는 것도 알았다. 자서전은 시간마다 변하는 그의 마음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셉 캠벨은 '신화의 힘'에서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지만, 정작 구해야 할 것은 살아있음의 경험이라 했다. 아론이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모험가로 나섰던 이유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는 살아있음 자체가 하나의 큰 의미이고, 경험임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 장애를 입은 채 수영을 즐기는 실제 아론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사고를 '축복'이라 하는 그의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대니 보일 감독은 "이것은 한 인간의 영웅담이 아닌, 삶에 대한 찬가"라고 말했다. 화려한 액션이 없는 모험 영화, 역설적으로 일상의 삶을 예찬하는 영화다. 영화를 흥미롭게 봤다면, 자서전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각각의 매력이 잘 담겨 있다. 살아있음, 즉 존재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임을 알게 된다.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지는 숱한 사고와 재난이 증언하듯이 말이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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