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서 빛나는 신비한 천년의 미소…나를 잊는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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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0 07:34  |  수정 2023-03-10 07:35  |  발행일 2023-03-1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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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빛에 감싸인 채로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국보다.


연못이 펼쳐진다. '거울못'이다. 못 주변에는 앉거나 선 사람들의 모습이 소풍처럼 편안하다. '거울못'의 서안을 따라 서서히 상승하는 진입로가 나 있다. 줄기가 검어 까마귀 오자를 쓰는 오죽(烏竹)이 길 따라 무성한데 요즘 그 잎은 황금색이다. 물빛과 대숲을 번갈아 완상하며 오르는 동안 서쪽에서 뛰어나온 성벽 같은 건물이 동쪽으로 내달리며 점점 성장한다. 곧 상승하던 진입로가 평평하고 광활한 '열린마당'에 다다르면 건물은 우뚝 멈춰 서서 가슴을 커다랗게 연다. 그 거대한 사각의 가슴 속에 먼 남산과 남산타워가 그림처럼 담겨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다.

난공불락 성곽 같은 건물 속에 유물 30만점 보존
연못 만들고 남산 차경 끌어들여 배산임수 연출
상설전시장 곳곳 벤치·카페·식당 등 쉴 곳 많아
고뇌·깨달음 상징 국보 반가사유상 오래 기억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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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파사드의 원형 홀에 들어서면 중앙복도가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역사의 길'이라 명명된 중앙 복도는 천창까지 트여 있어 사방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하다.


◆용산에 자리한 지 18년 된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자리한 지 18년이 되었다. 건물의 안색은 시간이 무색하게도 어제처럼 뽀얀데 온갖 수목은 훗날마냥 찬란하다. 이곳은 용산지역에서도 가장 지대가 낮은 땅이었다고 한다. 홍수가 나면 자연스레 물이 흘러들어 고였던 땅이다. 그러한 땅에 건축가는 연못을 파 흘러드는 물을 모았고 흙을 쌓아 올려 야트막한 언덕 위에 건물을 세웠다. 그리고 건물의 가운데를 열어 남산을 차경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땅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예부터 이상적인 터로 여겨온 배산임수의 적극적인 연출이다.

건물은 남산의 남쪽에 성곽처럼 일어서 있다. 동관과 서관을 합쳐 무려 404m나 된다. 거울못은 계절마다 새롭게 웅장해지는 건물을 투영한다. 그것은 해자와 같은 안전장치이기도 하고 가로로 긴 건물을 보다 우뚝하게 보이도록 한다. 난공불락의 성곽 같은 이 건물 속에 30만점이 넘는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그 가운데 국보가 74점, 보물이 258점에 이른다. 우리 전통문화의 최고 최대 보물창고다.

남산까지 확장되는 열린마당은 박물관 중심에 시원하게 배치되어 있다. 한옥으로 따지면 대청마루다. 안방 격인 동관과 건넌방 격인 서관 사이에 놓인 열린마당은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니며 손님을 맞이하거나 오수에 빠지거나 다듬이질도 하고 밥상이 놓이기도 하는 마루의 개념을 담고 있다. 아이들은 거칠 것 없는 공간을 누비며 달린다. 사람들은 안방이나 건넌방으로 가기 위해 대청을 가로지르고 산수화 같은 풍경 속에 머물며 스스로 그림이 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94년 12월에 설계 공모를 하였고 46개국에서 총 340개의 안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그중 선정된 것이 정림건축의 안이었다. 건축가는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이곳에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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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은 길이고 창이고 쉼터이고 공부방이다. 흐름과 정지가 무시로 일어나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상설전시장

서관은 기획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 대극장 '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관은 상설전시장이다. 유리 파사드의 원형 홀에 들어서면 중앙복도가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역사의 길'이라 명명된 중앙복도는 천창까지 트여 있어 사방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하다. 이 길은 중정이자 일종의 아트리움이고 또는 아케이드다.

1층의 중앙복도에는 회랑 형식의 복도가 나란한데, 두꺼운 기둥 사이로 흘러들어 간 빛이 정연한 그림자를 그린다. 2층 역시 1층과 연결된 회랑 형식의 복도가 그대로 전개되지만, 그것은 창문이 열거된 벽체로 보인다. 3층의 복도는 하늘과 중정을 내다보는 옥상 혹은 테라스다. 성곽과 같은 벽체 속에 구축된 내부 구조물의 무게감과 보이드의 깊이감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매끄러운 질감과 선명한 음영으로 인해 웅장하고도 따뜻하다. 회랑에, 벤치에, 복도의 모퉁이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둥글게 모여 앉아 인솔자에게 집중해 있기도 하고, 바닥에 자유롭게 주저앉아 무언가에 골똘해 있기도 한다. 얼마 만에 보는 풍경인지.

각 복도로부터 전시장이 연결된다. 전시장은 구석기부터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총 6개의 관에 40개가 넘는 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9천884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3개의 디지털 실감 영상관이 포함되어 있다. 고구려 벽화무덤 속으로 들어가 보거나 200년 전의 백성이 되어 왕의 행차를 구경하는 등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기증관은 기증된 문화재를 전시해놓은 곳으로 생각보다 많은 문화재가 7개의 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중 기증Ⅰ실은 기증품 전시와 함께 쉴 수 있는 라운지, 기증과 관련된 자료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 등이 어우러진 복합공간이다. 상설전시장에는 쉴 곳이 많다. 카페와 찻집이 있고 식당도 있다. 무엇보다 곳곳에 벤치가 있다. 쫓기듯, 공부하듯, 임무를 수행하듯 종종거리지 않게 된다. 모든 걸음은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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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보물을 지키는 성곽을 테마로 지어졌다. 거울못과 차경으로 끌어들인 남산은 예부터 이상적인 터로 여겨온 배산임수의 적극적인 연출이다.

◆사유의 방

이곳에는 관도 실도 아닌 하나의 방이 있다. '사유의 방'이다.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무한과 같은 깜깜한 공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은은한 빛에 감싸인 채로 생각에 잠긴 두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은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이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무슨 생각이 떠올라 저런 미소를 지을까.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저런 미소를 지을까. 어떤 고뇌를 떨쳤기에 저런 미소를 지을까. 사람들은 반가사유상의 둘레에 가만히 서 있다. 어떤 이는 가장 먼 벽에 기대어 정면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어떤 이는 탑돌이 하듯 그들 주변을 돈다. 공간은 광막하고 빛은 별과 같다. 별처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사람과 생각과 삶이 사유의 방안에 흐른다. 오늘의 산책에서 오래 기억될 순간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서울역에서 지하철 4호선 오이도행을 타고 가다 이촌역에 내려 국립중앙박물관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관람시간은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나머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상설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기획전시는 유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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