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술, 테마가 되다(2) 안동과 어우러진 '안동소주'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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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4  |  수정 2023-03-24 08:27  |  발행일 2023-03-24 제34면
높은 도수에 깔끔한 맛 '안동소주'…기름진 육류·문어·명절 전 요리와 궁합

가정마다 양조방법 전승한 가양주

길흉사·종갓집 제사 등 손님 대접

명인의 전통 제조법 전시 박물관도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술, 테마가 되다(2) 안동과 어우러진 안동소주
김연박 민속주 안동소주 대표와 배경화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가 전통적인 안동소주 제조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술도 음식과 똑같아. 맛있다고 지나치게 먹으면 안 되고, 적당히 잘 조절해서 먹어야 그 쓰임이 제대로 있어." 한 전통주 명인이 평생 만들어온 '술'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렸다. 예로부터 술에는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 특성이 담기곤 했다. 이 때문에 술은 여행의 '테마'가 돼왔다. 위스키 투어, 와이너리 투어 등은 술을 주제로 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술도 세계인에게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대표 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 그 술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술, 테마가 되다(2) 안동과 어우러진 안동소주
안동소주박물관에 안동소주 제조과정이 설명돼 있다.



'안동소주'는 안동지역에서 예로부터 전승돼 온 술이다. 안동에 처음 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안동식혜, 또 하나가 안동소주였다. 둘 다 외지인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맛이었다. 평생 알고 있던 식혜, 소주와는 많이 달랐다. 모두 비슷비슷, 균일화되고 익숙해진 맛의 새 지평을 연 것은 놀랍게도 '전통'이었다. 가장 새로운 것은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과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안동소주는 명칭에 '소주'가 들어가지만 흔히 생각하는 희석식 소주와는 맛도, 도수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무심코 안동소주를 한잔 들이켜면 그 높은 도수에 깜짝 놀라게 된다. 또 얼얼한 맛의 술을 넘긴 뒤 입안에 남아있는 오묘한 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만약 처음 안동소주를 맛본다면 "이건 내가 알던 소주가 아니잖아"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뒤끝이 깨끗하다는 점도 이 술의 특징 중 하나다.

안동소주는 도수 45도의 순곡 증류식 소주다. 커피도 연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진한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술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취향이 반영된다. 많은 양의 술보다 '독한 술 약간'이 취향인 이들에겐 증류주가 맞다. 증류주는 대부분 도수가 높은 술인데 전 세계에는 위스키, 보드카, 테킬라, 럼 등 다양한 종류의 증류주가 있다.

안동소주는 우리나라 대표 증류주이자 안동의 전통주로,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돼 있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안동소주는 가정마다 다른 양조 방법이 전해 내려온 가양주(家釀酒·집에서 쓰려고 빚어 만든 술)다. 안동지역에서 길흉사를 비롯해 손님 접대, 제사 등에 쓰여온 술이다. 예부터 상처소독,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의 구급방으로도 활용됐다고 한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은 약이 귀했던 시절에 급히 쓸 수 있는 '약주'였던 것이다.

한때 가양주 제조금지령에 의해 거의 전승이 단절될 뻔했으나, 이후 극적으로 다시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경북도가 최근 '안동소주 세계화' 방침을 밝히면서 안동소주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안동에는 각각의 개성을 가진 안동소주 업체가 여러 곳 있다. 소비자는 각자 취향에 맞게 안동소주를 선택해 맛볼 수 있다. 또 안동에는 안동소주와 전통음식에 대해 전시하고 있는 '안동소주 박물관'도 있다. 지난 17일 안동소주 박물관을 찾아가 봤다. 박물관은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인 조옥화(2020년 별세) 명인의 아들 내외(김연박 민속주 안동소주 대표·배경화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가 운영하는 곳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20대 청년들과 외국인들이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술, 테마가 되다(2) 안동과 어우러진 안동소주
안동소주박물관에 있는 시음용 안동소주.

특히 오랜 세월 조 명인에게 안동소주 제조법을 배워 온 며느리 배 선생은 '민속주 안동소주 발효의 양조학적 특성규명 및 자가 누룩제조의 최적화'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받는 등 안동소주 관련 학술적 연구에도 매진해왔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조 명인이 고수해 온 전통적인 안동소주 제조방법이 안내돼 있었다. 밀로 누룩을 만들고, 쌀을 시루에 쪄 고두밥을 만들고, 고두밥과 누룩을 혼합·숙성한 전술을 만들고, 발효된 전술에서 소주를 내리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맑은 안동소주가 만들어진다. 제조방법을 봤으니 이제 맛을 볼 차례. 박물관 한쪽에는 관람객이 안동소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김 대표와 배 선생은 안동소주가 '안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집안 행사나 제사가 많았던 안동 특성상 가양주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안동소주가 만들어지고 오래 계승돼 온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안동소주와 잘 어우러지는 안주 또한 안동의 향토음식이었다. 김 대표는 "안동소주는 기름진 육류요리나 문어, 명절 전 요리 등과 맛이 잘 어울린다. 도수가 높고 깔끔하기 때문에 묵직한 음식들과 함께 먹으면 좋다"며 "안동의 전통 소주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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