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의 소수의견] 사이비종교와 진리폭력

  • 남재일 경북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
  • 입력 2023-03-24 06:53  |  수정 2023-03-24 06:54  |  발행일 2023-03-24 제23면

2023032201000730400030211
경북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이 크다. 과거에도 사이비 종교를 다룬 시사 기획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준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를 망라한 시리즈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눈 밝은 시청자라면 다양한 개별 사이비 종파의 사례를 비교해가며 사이비 종교의 공통점을 인식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건전한 종교 생활은 당사자의 내면이 평온과 사랑으로 채워지는 경험이 관건이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에 등장하는 다양한 유형의 신도들은 불안과 두려움이 동인이 된 교주와의 예속관계 속에서만 안정을 느낀다. 시청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깊은 탄식이 나온다. "그들은 도대체 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교주를 메시아로 인식하는 과정은 두 차원의 사고작용이 결합되어 있다. 첫째는 "저 분(교주)이 바로 메시아구나!" 교주를 메시아와 동일시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판단이다. 이 오인의 일등공신은 교주의 신통력에 대한 소문이다. 불치병을 고치거나 미래를 예측하거나 나만이 알고 있는 과거를 꼭 집어 맞춘다. 물론 전지전능한 교주의 존재는 프레임과 편집 기술이 신도들의 확증편향과 공명한 결과일 터이다. 메시아를 갈망하는 신도들의 염원이 부지불식간에 교주의 행적을 신비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합리한 사고 과정에 쉽사리 휘말리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메시아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인간을 메시아로 인식한다는 것은 그의 말과 행동을 진리로 여긴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교주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의존한다는 뜻이다. 이 것은 착취와 학대가 예정된 절대권력자와 예속된 노예의 관계에 다름없다.

종교적 상상력 안에서 메시아의 존재 자체는 고통받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이 메시아를 자처하는 것은 캄캄한 밤 타인의 얼굴에 손전등을 비추며 진리의 빛이라 떠들어대는 것과 같다. 그건 타인을 눈멀게 하는 폭력일 뿐이다. 진리가 개인소유가 되면 타인의 개성과 차이를 깡그리 말살하는 '진리폭력'이 될 뿐이다. 진리는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공유재로, 가까이 다가가면 그만큼 멀어지는 밤하늘의 별처럼 깃들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역설적으로 하늘에 계신 메시아에게 제발 지상으로 강림하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간곡히 기도해야 한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우주에서 강림한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이 사회 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어떤 삶의 태도들이 교주라는 특별한 촉매제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일 것이다. 절실하게 사랑과 평화를 갈망하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급하게 절대자에 의존하는 선량하지만 나약한 마음이 사이비 메시아에 대한 맹신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프랑스 철학자 알랭바디우는 "악은 선의 결핍이 아니라 선의 과잉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선의 과잉은 선을 표방한 도그마가 삶의 복잡성과 개별 삶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재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진리폭력을 의미한다. 메시아를 자처하는 사이비교주는 진리폭력의 조악한 형태다. 절대자를 통한 보편적 진리의 추구보다 타인과의 개별적 관계 속에서 의리와 사랑을 중시하는 삶의 자세를 갖는 것만으로도 능히 진리폭력을 피해갈 수 있다. 남재일(경북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