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경북 경제의 기둥 '장수기업' (1)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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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31 08:41  |  수정 2023-03-31 10:40  |  발행일 2023-03-31 제33면
국내 100년 기업 7곳, 대구는 없어
지역대표 섬유·건설도 IMF 시련
파고 넘으며 성장 중인 '장수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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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장수'는 기업이나 사람에게 꿈의 숫자다. 100년 기업 역시 모든 창업자와 경영인의 꿈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업력이 100년 넘는 장수 기업은 단 7곳에 불과했다. 일본은 3만3천곳, 미국은 1만9천곳이 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의 최장수 기업은 578년에 세워졌다는 사찰 전문 건축회사 곤고구미다. 초대 사장이 한국인이다. 백제의 목수 유중광이 일본 쇼토쿠 태자의 초청을 받은 전문 경영인이었다. 1995년 규모 7.2의 고베대지진에도 이 회사가 지은 사찰의 대웅전은 무사했다. 비공인 세계 최장수 기업이다.

프랑스에는 최장수 기업 샤토 드 굴랭(Chateau de Goulaine)이 있다. 포도주 제조 회사로, 정확히 서기 1000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1023년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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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스토라(Stora)는 1288년에 설립된 구리 채광업체다. 19세기 후반 사업영역을 종이로 확대했고, 1998년에는 핀란드의 엔소(Enso)와 합병해 스토라엔소가 됐다. 회사의 시작부터 735년이 흐른 현재, 스토라엔소는 유럽 최대의 제지기업이 됐다.

유럽 최대의 경제 대국 독일에도 장수기업이 많다. 무역·광산·대부업 등 막대한 부를 쌓은 푸거의 창립연도는 1512년이며 철강 기업 크루프는 1811년, 광학기기 기업 자이스는 1816년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산업기기 전문 보쉬의 출생연도는 1886년이며, 글로벌 미디어 기업 베텔스만은 1835년, 제약 기업 머크는 1827년부터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100년 기업을 넘어 200년 기업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치열한 경제전쟁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장수기업은 그 자체로 경외의 대상이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그에 그치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버블경제가 끝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저성장시대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장수기업을 꼽고 있다. 이 기간 장수기업의 도산율은 단 1%도 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확고하게 뿌리내린 기업가 정신과 경영원칙이 위기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일본과 비교될 정도로 극심한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대구는 어떨까.

대구 산업의 태동기인 1910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은 고용인원이 350명에 달하는 마에노조연초제조공장과 역시 3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했던 오이시연초제조공장이다.

당시로는 쉽게 보기 어려웠던 대규모 제조업체였지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담배공장이었다. 그러나 대구의 담배산업은 불과 10여 년 뒤 일본총독부가 연초전매제도를 실시하면서 민간경제영역에서 멀어져 갔다.

1960~70년대 대구는 대한민국 최고의 섬유 도시로 꼽혔다. 이른바 '대한민국 섬유는 대구로 통한다'는 시절이었다. 1980~90년대는 건설이 대구의 대표산업이었다. 청구와 우방, 보성이라는 지역의 빅3 건설사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던 때였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도급 순위 100위권 업체만 청구·우방·화성·보성·동서·영남 등 7곳에 달했고, 한라주택·대백건설·창신·평광 등도 200위권 안에 들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대부분 업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0년대 들어 자동차부품산업이 섬유산업을 제치고 지역의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06년 자동차부품 부가가치액은 1조2천억원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섬유(1조810억원)를 앞질렀다. 하지만 협력업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지역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은 미미한 편이다.

그렇다면 대구의 경제 DNA를 발전시키고 있는 장수기업의 유전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도 꿋꿋이 지역의 경제 기둥 역할을 해온 대구의 예비 100년 기업은 어디일까.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삼성 최초의 신문 광고?
1945년 영남일보에 게재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사업실패 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세운 것은 1938년이다. 청과상 유통을 주력으로 했던 삼성상회는 '별표 국수'의 제조·판매를 병행했다. 재미있는 것은 삼성상회 이병철 회장은 1945년 11월6일자 영남일보 1면에 창간 축하광고를 게재한다. 명함 크기의 작은 광고지만 삼성 최초의 신문광고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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