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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취재를 위해 수목원을 찾았다가 혼자 온 어르신의 사진을 찍어드린 일이 있다. 팔순이 다 돼 보이는 그는 유난히 예쁜 꽃나무를 사진에 담고 싶은데 잘 찍을 줄 모른다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기자에게 건넸다. 휴대전화 사진 촬영법이 헷갈리는 것 같았다. 나무 사진만 찍기에는 아쉬워서 꽃과 함께 있는 어르신 인물 사진도 함께 찍어 드리겠다고 했다. 차림새가 부끄럽다며 여러 번 거절하던 어르신이 막상 사진을 찍자 소녀처럼 해맑게 웃었다. 세월과 고생이 담긴 얼굴이 분홍색 꽃처럼 변했다. 촬영자도 모델도 모두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어르신은 사진을 찍는 동안 자신의 휴대전화 조작을 전적으로 기자에게 맡겼다. 휴대전화 안에는 한 개인의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저 분이 다른 사람에게도 저렇게 쉽게 휴대전화를 건네면 어떡하지, 그래서 곤란한 일을 당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최근 4년새 '스미싱' 피해 금액 급증
전세 사기, 지능적·조직화된 보험 사기
사이비종교같이 맹신 기획부동산 피해
사기·사교와 컬래버 생활 깊숙이 침투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기자생활을 하며 많은 '사기(詐欺)' 범죄를 접했는데, 타인에 대한 경계가 적은 사람일수록 쉽게 사기범죄의 표적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선의를 지니고 살 테지만, 그래도 극소수에 의해 비윤리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물론, 충분한 배경지식과 재력이 있는 사람이 일확천금을 노리다 차질을 빚고선 언론에다 '투자 사기'를 주장하는 일부 사례는 예외로 한다.
형법상 사기(제347조)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를 말한다. 또 형법상 준사기(제348조)는 '미성년자의 사리분별력 부족 또는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물을 교부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를 말한다. 이 같은 기본 정의를 바탕으로 사기 범죄는 정말 다양하게 뻗어 나왔으며, 계속 진화를 해왔다. 기술의 발달이 사기방식의 발달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요즘에는 휴대전화가 각종 사기범죄의 매개가 되고 있다. 기자도 최근 몇 차례 '스미싱'이 의심되는 문자를 받았다. '스미싱'이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악성코드나 인터넷 주소(URL)가 담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전송해 금융·개인정보 등을 빼가는 범죄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받은 문자는 이런 유형이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투자 용어를 거론하며 '손실 극복'을 돕겠단다. 그리고 URL 링크가 첨부돼 있다. 애당초 저런 투자를 한 적이 없는데, 무슨 노하우를 가르쳐주겠다는 건지…. '엄마아빠, 나 폰 깨졌어'로 시작하는 자녀 사칭 '메신저피싱'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런 문자를 받았을 때의 그 황당함 말이다.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은 피싱 사기에 대해 전기통신수단을 이용한 일종의 '특수사기범죄'로 정의 내렸다. 찝찝할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무심결에 혹은 불안감에 스미싱, 메신저피싱에 걸려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문자가 가는 데다, 문자를 받은 사람의 사연은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자녀를 사칭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설치해 예금 잔액을 가로채는 등의 수법으로 막대한 돈을 편취한 메신저피싱 조직이 경찰에 검거된 바 있다. 또 국민의힘 정희용(고령-성주-칠곡)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2018~2021) 스미싱 발생 현황'에 따르면, 스미싱 피해액이 2018년 2억3천520만원에서 2021년 49억8천550만원으로 21.2배 증가했다.
경찰은 올해 피싱 사기를 비롯해 혼란스러운 부동산 시장을 틈탄 조직적 전세 사기, 지능화·조직화된 보험사기 등이 꾸준히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사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는 점은 '사교(邪敎)'도 뒤지지 않는다.
사기와 사교, '가스라이팅'이 낳은 한 형제 이름 같은 두 단어는 서로 '컬래버'를 이루기도 했다.
몇 해 전 대구에서 기획부동산 사기 피해를 본 이들은 기획부동산의 운영방식이 마치 사이비종교 같았다고 주장했다.
한 피해자는 "기획부동산 업체 간부를 사이비종교 단체의 교주처럼 신격화해 맹신하게 했다. 매매할 부동산 거래정보에 대해 허위·과장 광고를 해 직원들이 빨리 매도 처분하도록 세뇌시키는 방식의 교육을 했다"며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해당 기획부동산 사건의 피해자들도 대부분 고령층이었다.
사기와 사교, 진화와 컬래버를 거듭하는 것들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각자 마음속에 '독한 말' 하나 저장해놓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생전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외쳤던 한 칼럼니스트가 남긴 이 문장 같은 것 말이다.
"비이성을 경계하라. '초월적인 경험'을 주장하면서 무언가에 복종하라고 말하거나 자신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는 귀를 틀어 막아라. 남의 동정을 불신하고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더욱 중시하라. 모든 전문가를 그저 포유동물로 여겨라. 불공정과 우둔함을 절대로 방관하지 마라."(크리스토퍼 히친스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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