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음식 배달 古今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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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2 06:40  |  수정 2023-04-12 06:51  |  발행일 2023-04-12 제27면

'조선의 양반네들이 음식 또는 물건을 사려 할 땐 종을 시켜 가게에 알린다. 그러면 가게 주인이 음식을 해오거나 물건을 들고 온다.' 구한말 조선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가 쓴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 나오는 얘기다. 서양인의 눈엔 신기하게 비쳤던 우리나라 '배달(配達) 문화'의 옛 풍경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유통문화는 예로부터 공급자가 수요자를 찾는 게 관례였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 후기 선비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엔 '과거를 치른 이튿날 친구들과 함께 점심 식사로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글이 적혀 있다. 그때가 1768년이니 255년 전 이미 한반도에 음식 배달 문화가 성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1970년대 나름 여유가 되는 집에선 병우유를 배달시켜 먹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로 대표된 새콤 달콤한 맛의 유산균 음료도 빼놓을 수 없다. 음식 배달은 전화기가 널리 보급된 1980년대 이후 뿌리를 내렸다. 일등 공신은 다름 아닌 자장면. 주문이 밀려 배달이 늦어지면 중국집 전화기가 불났다. 중국집 사장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지금 출발합니다." 오늘날엔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치킨·족발·김밥·햄버거는 물론 한 끼 밥상, 뷔페 음식까지 깨알같이 배달해준다.

국내 배달 음식의 아이콘인 치킨이 '3만원 시대'를 맞았다. 최근 한 치킨 업체가 품목별로 500원~3천원까지 값을 올리는 바람에 배달비를 포함해 모두 3만원을 내야 한다. 도미노 인상의 신호탄이다. '국민 간식'마저 시켜 먹기 버거운 시대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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