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트로트 열풍과 청년들의 미래

  • 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아이건강하게키우기'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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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9 06:59  |  수정 2023-05-29 07:01  |  발행일 2023-05-29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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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아이건강하게키우기'운동본부장

지난 20일 K-트로트 페스티벌이 열리는 대구스타디움에 갔다. 가수 장윤정, 주현미도 있었지만 영탁, 장민호, 김호중, 김희재, 박서진 등 젊은 트로트 남자 가수들의 무대였다. 50대 60대 아줌마들이 보라색, 주황색, 흰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스타디움의 구역을 각각 차지하고 앉았다. 3시간 가까이 별 모양의 야광봉을 흔들어댔다. 2020년 초 오디션프로그램 '미스터트롯' 때부터 트로트 열풍을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목격하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왼쪽 좌석에는 충청도에서 왔다는 장민호 팬이, 오른쪽 좌석에는 같이 온 50대 아내가 연신 야광봉을 흔들어댔다. 귀갓길에 '부울경' '김호중팬'이라 적힌 관광버스들이 쭉 늘어선 것을 보고 다시금 놀랐다.

그날 우리 사회가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음을 직접 확인했다고 생각하니 즐거웠던 공연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50대 60대 아줌마의 팬덤 문화는 익히 알려져 있다. 자녀들이 곁을 떠난 뒤 '빈집 증후군'에 걸린 중년 주부들이 젊은 트로트 가수의 팬으로 나선 것이다. 주변에서 누구 부인은 주말을 내팽개치고 이찬원을 쫓아다니고, 누구 부인은 방 하나를 장민호 앨범과 물건으로 가득 채웠다는 소문이 들린다. 이들은 젊은 가수들의 노래가 예술적으로 뛰어나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이들은 소녀적 감성을 가지고 '젊은 오빠'들을 환호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눌리고 공허한 마음을 메우려는 중년 아줌마의 팬심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보다 못한 어떤 남편은 "당신 월급 가지고 돌아다니는 거는 뭐라 않겠는데, 내 월급에 절대 손대지 마"라고 경고했다고도 한다.

트로트의 열풍은 본격적인 고령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 같다. 청년들의 음악이 죽고 그들의 취향이 사라졌으며, 그들의 숨 쉴 공간이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1960·70년대 통기타, 1980년대 대학가요제,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등 20대가 시대의 음악을 이끌었다. 요즈음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넘쳐난다. 너도나도 트로트 가수다. 너무 많이 나와서 다들 고만고만하고 눈에 띄기 어려워지고 경쟁도 더 치열해졌다.

음악만이 아니라 예능도 20대 청년의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다. 1970년생 강호동, 1972년생 유재석이 2000년 이후 정점을 찍은 후 20여 년 예능계를 평정해 왔다. 또 다른 메인 MC들인 김구라, 신동엽, 김성주, 전현무 등도 1970년대생이다. 1980년대생 가운데 간간이 보이는 이들로 박나래, 장도연, 김희철, 장성규 등이 있지만, 20대는 보이지 않는다. 선배들이 물러설 기세는 보이지 않고 그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임을 볼 때 20대 청년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올해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중위연령이 45.6세이고 인구구조는 역피라미드다. 세대별로 비교하면 0대가 340만명, 10대가 457만명, 20대가 648만명, 30대가 681만명, 40대가 798만명, 50대 858만명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인구수가 많다. 2018년 출산율이 1.0 아래로 떨어진 뒤 계속 하락해 2022년엔 0.78로 추락했다. 앞으로 이 인구구조는 오랜 기간 계속될 것이다. 중위연령도 10년 후엔 51.5세, 20년 후엔 55.6세로 계속 올라간다.

이런 고령화현상은 문화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교육과 국방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년의 설 자리가 협소해지고, 기성세대의 관성은 강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미래로 향해야 하는데 과거에 매몰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마저 과거의 영광만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아이건강하게키우기'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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