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3) 사라질 뻔한 곳, 지역 살리는 예술명소 되다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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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9  |  수정 2023-06-09 07:23  |  발행일 2023-06-09 제34면

오래되고, 낡고, 버려진 폐공간과 유휴공간이 예술과 문화, 휴식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속속 변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건물과 공간의 쓰임이 다했다고 해서 무조건 '끝'은 아니라는 것. 새로운 시각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 '대구예술발전소'
KT&G 연초제조창 별관 창고
작가 작업공간·아카이브 변신

서울 '문화비축기지'
폐쇄된 도심 속 석유저장시설
생태·예술 공존하는 공원으로

부산 'F1963'
제강회사의 와이어 생산 공장
전시장 갖춘 복합공간 탈바꿈

제주 '빛의 벙커'
국가기간 통신시설이던 벙커
몰입형 미디어아트 감상장소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3) 사라질 뻔한 곳, 지역 살리는 예술명소 되다
서울 '문화비축기지'〈문화비축기지 홈페이지〉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3) 사라질 뻔한 곳, 지역 살리는 예술명소 되다
대구 '대구예술발전소' 〈대구예술발전소 제공〉


◆폐교,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이 되다

포항시립구룡포도서관의 첫 인상은 마치 옛날 학교 같았다. 운동장처럼 넓은 공터와 단정하고 높지 않은 건물이 함께 있는 것이 작은 학교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 구룡포도서관은 학교를 리모델링해서 조성된 곳이다.

옛 구룡포여중과 여종고는 학교 통폐합으로 인해 2012년 폐교됐다. 이후 오랫동안 폐교로 남아있던 이곳에 2021년 6월 포항시립구룡포도서관이 개관했다.

학교 건물을 새로 단장한 3층 규모의 도서관은 어린이자료실과 특성화·정기간행물실, 종합자료실, 이야기방, 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면 복도와 계단 등 곳곳에서 과거 학교 건물이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천장 등은 리모델링을 통해 산뜻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눈앞에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 내륙지방에 사는 이들에겐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구룡포도서관에서는 현실이 된다. 도서관의 거의 모든 공간에서 푸른 동해를 볼 수 있다.

도서관 앞으로는 과거 운동장 공간을 활용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그곳에서 마을 주민 몇 명이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 동네 60년 토박이라는 한 여성이 도서관 건물의 역사에 대해 들려줬다. 그는 "농어촌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곳도 학생 수가 점점 줄더니 통폐합에 따라 학교가 문을 닫았다. 오랜 시간 학생도 없고 학교도 비어있는 채로 있었다"며 "그런데 몇 해 전 도서관이 조성되면서 인근 주민들이 책도 볼 수 있고, 학교 건물과 공간이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가 되는 점이 좋다. 이곳 경치 정말 멋지지 않나. 바다 경치와도 도서관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룡포도서관 관계자는 "주중에는 학생들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주로 도서관을 찾고, 주말에는 구룡포를 찾은 관광객들도 도서관에 들르고 있다. 또 지역아동센터 학생들이 주기적으로 이곳에 와서 수업을 하고 있는 등 도서관이 교육과 휴식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다"며 "예전에 이곳이 학교였을 때 선생님이었거나 학생이었던 분들도 가끔 도서관을 방문하는데, 학교 형태는 거의 그대로 있으니 옛날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학교 시절 때와 지금의 공간 활용을 비교하면서 추억에 잠기는 분도 있었다. 학교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남아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3) 사라질 뻔한 곳, 지역 살리는 예술명소 되다
부산 'F1963' 〈F1963 홈페이지〉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3) 사라질 뻔한 곳, 지역 살리는 예술명소 되다
제주 '빛의 벙커' 노진실기자

◆폐공간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국내에서 폐공간을 재생한 사례로는 서울의 '문화비축기지', 대구의 '예술발전소', 부산의 'F1963', 제주의 '빛의 벙커' 등이 있다. 이들 장소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범주로 묶이지만 저마다 특색과 쓰임이 조금씩 다르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는 폐쇄된 석유비축기지를 재단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마치 거대한 공원처럼 규모가 상당히 넓어서 우리나라 수도,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지는 곳이다.

서울시는 1973년 중동전쟁으로 제1차 석유파동을 겪은 이후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78년 매봉산 인근에 석유저장시설을 건설한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 준비를 위해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던 중 가까이 위치한 석유비축기지가 위험시설로 분류됐고, 시설은 2000년 12월 폐쇄된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재생 과정을 거쳐 폐산업 시설은 문화비축기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과거 석유를 보관하던 탱크들은 그 안에 문화를 담는 '문화탱크'로 변신했고, 오랜 기간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됐던 곳은 이제 시민들이 공원처럼 찾는 휴식공간이 됐다.

대구 중구 수창동에 있는 대구예술발전소는 대구의 대표적 재생 공간이다. 2013년 개관한 대구예술발전소는 지역 근대산업유산인 옛 KT&G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해 만든 문화시설이다. 기능을 상실하고 도심에 방치됐던 연초제조창 별관 창고가 예술과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개관 이후 대구예술발전소는 작가들의 작업 및 전시, 시민들의 문화 향유 공간으로 활용돼 왔다. 현재 대구예술발전소에는 레지던시와 공연장, 북카페, 대구 문화예술 아카이브 열린수장고 등이 조성돼 있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F1963은 1963년 지어진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F1963은 예전에 고려제강의 옛 수영공장이 있던 곳으로, 45년 동안 와이어를 생산해왔다. 폐공장은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이른바 '문화공장'으로 재탄생했다. 공연장과 산책로, 휴식공간을 비롯해 카페와 중고서점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갈 곳도, 볼거리도 많은 부산에서 F1963을 찾는 발길이 계속되는 것은 아마도 그 공간이 가진 개성과 공간에 깃든 기억 때문일 것이다. 공간의 '쿨'함이 망미동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꽤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제주 서귀포 성산읍 고성리에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빛의 벙커는 옛 국가기간통신시설로 쓰이던 오래된 벙커를 '몰입형 예술 전시관'으로 변신시킨 곳이다. 20년 가까이 유휴시설로 방치됐던 벙커는 이제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빛의 벙커는 옛 벙커의 장점을 그대로 살렸다. 벙커는 방음이 뛰어나 외부 소리가 잘 차단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관람객이 그림과 음악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오래된 시설을 허물지 않고 잘 활용하면 효과적인 문화예술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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