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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 (시인) |
나는 어릴 때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염세주의 같은 게 위성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다. 어린 시절은 노인으로 살고 어른이 되면서 아이가 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애어른 같다는 말을 들었고, 중학교 때부터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집 주변에 흔하게 놓인 무덤 때문인지, 체질적 현상인지 나는 죽음 후를 생각하기도 했으니 "나는 누구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을 한 것인지, 불완전한 부모가 주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직도 그 이유를 자세히 모르겠다.
내가 죽으면 모두 애통해하며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칠 것 같아 내심 복수의 다른 이름으로 죽음을 그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의 반대편에는 악착같이 살아남아 보란 듯 펴 보리라 애써 주먹을 쥐어보기도 했다. '죽는다. 죽겠다. 죽여라!' 같은 말들 속에 살았지만, '산다. 살겠다. 살아남아라!'로 자동 전환할 수 있었던 힘은 또 어디서 났는지.
의식주가 없는 외로움, 나는 어쩌면 절박한 외로움 곁에는 가지 않았던 거 같다. 쌀이 없는 것 같은 외로움, 돌아갈 집이 없는, 알몸의 외로움을 느낀다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같은 문구가 위로가 될 리 없다. 그 말로 극복될 외로움이라면 죽음을 선택하진 않겠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세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로 나타났다. 기사를 보고 뭔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지만, 내 글로는 부족해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제발 살아남아 줬으면/꺾이지 마 잘 자라줘 /온몸을 덮고 있는 가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견뎌내 줘서 고마워 /예쁘지 않은 꽃은 다들 /골라내고 잘라내 /예쁘면 또 예쁜 대로 /꺾어 언젠가는 시들고 /왜 내버려 두지를 못해 그냥 가던 길 좀 가 /어렵게 나왔잖아 /악착같이 살잖아 hey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고갤 들고 버틸 게 끝까지 /모두가 내 향길 맡고 취해 /웃을 때까지 //-H1-KEY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가사 일부)
죽는 거 정말 좋아하던 선배의 말이니 정말 미안하지만, 죽지 말고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주먹을 쥐면 좋겠다. 막막한 골목 끝 건물 사이에 핀 장미를 보면 나는 그게 무슨 신의 응원 같아 돌아나갈 힘이 생기기도 했으니까.
임수현<시인>

임수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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