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천진난만하게 사물의 본성을 담아낸 민화의 아름다움

  • 안효섭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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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0  |  수정 2023-06-20 08:08  |  발행일 2023-06-20 제17면

[문화산책] 천진난만하게 사물의 본성을 담아낸 민화의 아름다움
안효섭〈큐레이터〉

나의 어머니는 민화를 그리신다. 옆에서 그리는 모습도 보고, 중간 결과물도 보고, 전시하면서 다른 작품들도 보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민화를 처음 볼 때는 장식적이고(미술계에서 좋지 않은 의미로) 원근법이 치밀하지 않은 그림이라는 생각도 했는데, 민화를 알아갈수록 이는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유물인 민화에 나는 서구적인 미학관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군대에서 자대배치 후 나는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2주 정도가 지나도록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은 잘 적응을 했고, 지금도 잘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이때 배운 교훈이 있었는데, "군대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거였다. 갑자기 군대 얘기를 왜 했냐면, "민화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민화는 화원, 사대부, 문인과 승려가 그리지 않았다고 해서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주거생활에서 민화는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예를 들어 병풍은 행사 때마다 빠질 수 없는 요소였고, 외풍을 막아주는 기능과 더불어 추운 겨울에 따뜻한 봄기운을 방에 주는 역할도 하였다.

민화가 민중의 삶에 필요했던 만큼 당시에는 민화에 대한 많은 수요가 있었다. 장에서 그려진 것을 펼쳐놓고 팔기도 했겠지만, 방랑 화가가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그림을 그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기억에 남은 사물의 형태로 즉흥적으로 풀어내어 개개의 생동감이 지나쳐 산만해 보일 수 있지만 민화에는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이 발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민화의 장식적인 측면은 당시 민중의 창조 의지와 독창성이 담긴 부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았던 것이다.

민화는 서구의 원근법처럼 완벽하지 않고 하다만 듯한 미숙의 표현이 보인다. 본디 미숙한 것과 작위적으로 미숙하려고 한 것은 차이가 있다. 민화의 미숙한 표현은 어린아이의 미숙함과는 다르다. 민화에서는 사물을 측면에서 본 것과 위에서 본 것을 동시에 한 화면에 그려낸다. 본대로가 아니라 본 것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형태가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사물을 구체적으로 해석하여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사물은 보는 이에게 운명지어지지 않고 그들 스스로 존재함을 나타낸다.

민화를 그리는 어머니를 관찰한 경험 덕분에 지금은 민화 뒤에 사람이 보인다. 어느 예술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예술 작품에만 너무 집중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 뒤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민화를 낮게 평가하는 한국 미술시장의 고루한 시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민화가 지닌 천진난만하고 소박한 미감이 현대인에게 자유로운 공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화의 맛을 아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관심 있는 분들은 대원사에서 출간된 김영학의 '민화'를 읽어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안효섭〈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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