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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
마지막 제비뽑기 시간이 다가왔다. 어떤 주제를 선택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매주 일요일이면 밤을 지새운 두 달간 쌓아온 곳간에 알곡과 가라지를 다시 솎아내보는 시간이 되었다. 제법 괜찮은 알곡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주제도 때론 글로 쓰고 읽어보면 허영에 사로잡힌 가라지였음을 깨닫고 버렸다. 창문 너머로 새벽을 맞이할 즘이면 생각이 조금씩 정리된다.
"우리 모두 삐치지 말아요."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님의 공연 중 클로징 멘트였다. 번개가 치듯 폐부를 찌르는 이 말은 자주 기억에 맴돈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삐짐'이라 하고 먼 거리에서는 '갈등'과 '분쟁'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이해관계의 문제는 삐짐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문제에 봉착할 때면 삐짐에서 완전히 해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고 지나가면 별문제가 아닌데 문제에 집착해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간혹 이직을 준비할 때면 공백이 생긴다. 회사가 아닌 스스로 인생을 개척할 방향을 다잡으며 다음 목적지를 준비하는 시간은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공백 동안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2달 남짓 형틀 목수 일을 배운 적이 있다. 모두가 묵묵히 각자가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 도면대로 정확히 일하며 한층 한층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지난 회사에서 담당한 업무는 소중한 경험이지만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함께한 일이다. 소중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지나간 일에 미련을 비우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고 싶었고, 올림픽 개막식에 애국가도 부르고 빈민국에 공연장을 만드는 일이 꿈이었다. 고교 시절 교내 아르바이트로 화장실 청소를 하며 용돈을 벌기도 했고, 급식비는 몇 개 반 국을 퍼주면 감면받을 수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악을 시작했고 언제나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긍정적으로 살면서 나를 이끌어주던 친구와 선배는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도 그 도움 덕분에 예술인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예술인이 즐겁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이 행복하게 웃을 때면 정말 행복하다. 나를 위한 꿈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을 함께 걸어가며 이전의 꿈은 변했고 더 많은 꿈을 그리게 되었다. 이제 멀리 있는 꿈의 실현보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자 살아간다. 그간 부족함이 철철 묻어나는 글 실력에도 격려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김상욱<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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