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충남 공주 못다한 이야기/제민천 따라 골목여행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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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30 08:02  |  수정 2023-06-30 08:03  |  발행일 2023-06-30 제12면
제민천 물길따라 역사가 흐르고 문학이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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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도심을 동서로 가르며 제민천이 흐른다. 공주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호서의 중심이었고, 이 일대는 그 중심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인 곳이었다.


공주의 도심을 동서로 가르며 제민천이 흐른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4.2㎞를 흘러 금강에 이르는 샛강이다. 이 짧은 물길에 이름 붙은 다리만 17개, 이름 없는 것까지 합하면 20여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제민천을 홍예로 가로지르는 대통교에 선다. 오래전 웅진백제 시대에 대통사라는 절이 이 근처에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다리에서 본 제민천은 좁장한 물길과 푸른 식물들, 가붓하게 이어지는 산책로가 어우러진 산뜻한 얼굴이다. 물가에 두 그루 버드나무가 얼굴을 바짝 맞대고 서 있다. 세상에 우리 둘뿐이라는 듯 의초로운 그들 곁을 자전거 탄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공주 도심 지나 금강에 이르는 4.2㎞ 샛강
인근 백제 대통사·고려 목관아 자리 남아
죽어가던 하천 2014년 생태하천으로 부활
'나태주골목길' 곳곳 시·벽화 선보여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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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천과 나태주풀꽃문학관 사이의 골목은 '나태주 골목길'이다. 눈부신 햇살이 절반, 깜깜한 그늘이 절반인 좁디좁은 골목의 벽이 모두 그의 시다.


◆공주의 중심을 흐르는 제민천

버드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자리에 반죽교가 있다. 첨탑이 높이 솟은 교회 바로 앞이다. 반죽은 60여 년 만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대나무다. 봉황새가 반죽의 열매를 먹고 산다. 그 북쪽에 봉산교가 있다. 봉황산이 있어 봉산골이라 했던 데서 딴 이름이다. 또 조금 가면 교촌교 동쪽으로 공주 산성시장이 자리하고, 또 조금 더 가면 왕릉교가 공산성과 무령왕릉으로 가는 큰길과 이어진다. 그리고 조금만 더 흐르면 금성교에서 마침내 금강에 이른다. 대통교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중동교가 지척이다. 중동은 공주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대통교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잘생긴 소나무 가로수들이 소실점으로 작아지는 길 끝에 멀리서 보아도 풍채 좋은 문루가 서 있다. 공주사대부고의 정문이다. 넓게 펼쳐진 우진각 지붕 너머로 봉황산의 부드러운 마루선이 가까이 보인다. 정면 처마 아래에는 '충청도포정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포정사는 조선시대 관찰사가 근무하던 충청감영의 정문이다. 공주사대부고 자리에 옛날 충청감영이 있었다. 대통교 동쪽의 삼거리 바로 우측에는 천년도 더 전인 고려 성종 때 우리나라 전 지역 중 처음으로 단 12곳에 두었던 중요 행정기관인 목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성이 있고 왕릉이 있고 봉황이 살고 향교와 시장이 있고 감영이 있었던 제민천변은 공주의 중심이었다. 목관아와 감영이 있었던 공주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호서의 중심이었고, 이 일대는 그 중심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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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꺾이자 '반죽동 204, 205-1번지 유적'이 나타난다. 작은 공원의 모습을 한 유적지는 웅진 백제 최초의 사찰이었던 대통사가 있던 자리다.

◆제민천의 변신

제민천 양쪽으로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 사이사이에 오래된 옛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와 개나리색의 커피가게, 보라색 미용실, 목조외관의 건물에 벽돌과 철제로 장식을 한 카페, 적산가옥 풍의 복합문화공간이 있고, 크고 작은 갤러리와 다양한 분야의 공방, 독립서점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이름난 오뎅집, 무엇을 파는지 예상이 안 되는 착한마녀상회, 파란 줄무늬 차양을 드리운 역술원, 그리고 온갖 식당들이 콕콕 박혀 있다. 온갖 시대와 온갖 공간의 공존은 무사와 안전을 느끼게 한다. 제민천이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1900년대 초반, 경부선과 호남선이 공주를 비껴갔다. 1932년에는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했다. 1980년대엔 금강 너머 북쪽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사람과 물자와 상업시설이 제민천변을 떠났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제민천은 탁해졌고, 죽어갔다. 2000년대에 들어 제민천을 되살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2014년 제민천은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물고기와 새들이 돌아오고 곧 사람들이 돌아왔다.

충청감영 포정사에서 대통교로 이어지는 길의 도로명은 감영길이다. 거기에는 '예술가의 거리'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그 길을 따라 민화연구소, 도자기 공방, 글씨 쓰는 작업실, 화실, 케이크를 굽는 공방, 스튜디오, 갤러리, 코 워킹스페이스, 작은미술관 등이 산재해 있다. 공화양복점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다. 메리야스를 입은 노인이 신중한 몸짓으로 다림질을 하고 계신다. 가게 앞 가로수에 그의 둥근 등이 걸려 있다. 모든 새로운 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오래된 시간은 믿음직한 등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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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동 197-4번지 유적'. 대통사의 기와 조각이 잔뜩 발견된 곳이다. 기와는 쓰임을 다한 후 일정한 장소에 버려져 무더기를 이루는데 이곳이 그러한 장소였다고 한다.

◆시가 있는 골목길

버드나무가 있는 천변에서 골목길로 든다. 좁은 골목길 따라 간결한 벽화와 시가 쓰여 있다. 젊은 엄마와 소녀가 골목길을 걸으며 시를 읽는다. "난 이 시가 좋아." 그들은 하나도 빼먹지 않겠다는 듯 느린 걸음으로 나아간다. "난 이 시도 좋아." 나는 짐짓 뚝 떨어져 쫓으며 귀를 쫑긋 세우고 소녀가 좋아하는 시를 읽는다. 이 길은 '나태주 골목길'이다. 갈래마다 '꽃길' '사랑길' '선물길'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길'이라 명명된 길이 소박하게 이어져 있다. 눈 부신 햇살이 절반, 깜깜한 그늘이 절반인 좁디좁은 골목의 벽이 모두 그의 시다. 그의 시는 서럽게 따뜻하다.

골목이 꺾이자 '반죽동 204, 205-1번지 유적'이 나타난다. 작은 공원의 모습을 한 유적지는 대통사가 있던 자리다. 대통사가 웅진 백제 최초의 사찰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곳에서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안내가 있다. '반죽동 197-4번지 유적'도 나타난다. 대통사의 기와 조각이 잔뜩 발견된 곳이다. 기와는 쓰임을 다한 후 일정한 장소에 버려져 무더기를 이루는데 이곳이 그러한 장소였다고 한다. 기와 무더기를 빙 둘러 벤치가 놓여 있다. 하루 종일 그늘 드는 벤치에 옮겨 앉으며 시 읽기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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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가옥을 개조해 만든 나태주풀꽃문학관. 지역의 문인들과 문학 지망생들, 그리고 방문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강의를 하는 사랑방이다.

길 끝에는 '나태주풀꽃문학관'이 자리한다. 높직한 석축 위에 납작하게 앉아 있는 문학관은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개조해 2014년에 개관했다. 나태주 시인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지만 공주와 인연이 깊다.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공주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퇴임한 후에도 공주의 다양한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다. 좁은 복도를 살금살금 걸을 때마다 나무 바닥이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시인의 초상과 사진들, 작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지만 문학관은 오롯이 시인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그와 지역의 문인들, 문학 지망생들과 방문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강의를 하는 공간이다. 문학을 매개로 한 사랑방인 것이다. "나는 역시 이 시가 젤 좋아." 소녀가 역시 젤 좋아하는 시는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사랑스러운 것들이 도처에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으로 가다 대전 지나 회덕 분기점에서 당진, 세종 방향으로 나간 후 유성 분기점에서 30번 당진영덕고속도로 당진방향으로 가다 공주IC로 나간다. 공주IC교차로에서 우회전, 백제큰다리 건너 다리 남단에서 시청, 세무서, 공산성 방향 오른쪽으로 빠져나간 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제민천 동안을 따라간다. 약 600m 직진하다 웅진교 건너 좌회전해 세무서까지 계속 직진한다. ,세무서와 사대부고 사이에 커다란 공영 주차장이 있고 그 위쪽 옹벽 위에 나태주풀꽃문학관이 자그맣게 자리한다. 주차비 무료, 문학관 입장료 무료다. 사대부고 정문에서 150m 정도 직진하면 제민천 대통교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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