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6) 항구도시를 가다 - ① 믈라카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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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1 07:46  |  수정 2023-08-11 07:47  |  발행일 2023-08-11 제12면
15세기 동·서양 해상무역 중심, 지금도 거리마다 아시아·유럽 문화 오롯이
야시장
저녁이 되자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붐비는 믈라카의 야시장. 다양한 먹을거리를 구경하고 맛볼 수 있다.
'믈라카'는 과거 크게 번성했던 항구도시였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상무역의 길목이었기에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이곳을 오고 가고 또 정착했다. 잘나가는 항구도시의 숙명일까. 이 지역을 탐낸 나라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역사와 입지적 특성은 믈라카에 다양한 문화의 정체성을 입혔다. 동·서양을 이었던 과거의 흔적과 문화는 지금까지도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의 믈라카는 과거 항구도시의 기억을 간직한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역사도시로 자리하고 있다. 어디를 가도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믈라카의 풍경은 방문자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말레이반도 남서부 해안 교통 요충지
작은 어촌서 세계 주요 수출입항 성장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령 지나오며
성당·교회·절·모스크 등 어우러지고
아담한 올드 타운과 모던한 빌딩 공존

낮만큼이나 아름다운 밤 풍경도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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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라카의 상징 같은 건물인 크라이스트 처치 입구의 모습. 늘 여행객들로 붐비는 이곳은 과거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조성된 곳이다.
◆역사 속 해상무역 거점

말레이시아의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 믈라카는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자동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차가 믈라카에 가까워지면 쿠알라룸푸르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분위기의 지역을 만나게 된다.

믈라카는 역사 속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믈라카해협과 믈라카항을 통해 많은 물자가 오가고 사람이 오갔다. 과거 믈라카 지역은 작은 어촌을 넘어 큰 항구로 성장해 나갔다. 믈라카는 해상 무역상과 동서양 간 접촉을 위한 중요한 통로였다. 많은 배가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 항해했고, 또 이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끊임없이 '끝'과 '시작'이 교차한 지점이었던 것이다.

"말라카는 베니스에 비견되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15세기 동양을 대표하는 무역항이자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믈라카에 대한 기록을 정리한 책 '말라카'(파라하나 슈하이미 지음·산지니)의 서문에는 이 같은 문장이 나온다. 믈라카는 동·서양을 연결하는 주요 수출입항이자 항해자들의 명소였다고 책은 말한다. 항구가 붐비면 사람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 당시 여러 문화권의 선원과 상인들이 믈라카에 체류했다. 이에 한때 믈라카는 수십 개의 외국어가 사용되던 국제도시였다고 전해진다. 믈라카 언덕을 올라가면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보인다. 배를 타고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드나들던 이 도시의 과거를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믈라카는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성장하고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었지만,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서구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포르투갈이 믈라카를 지배했으며 이후에는 네덜란드, 그다음에는 영국이 각각 믈라카를 통치했다.

지금도 믈라카 곳곳에는 한때 이곳을 점령했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역사도시인 믈라카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랜 식민지 지배는 아픈 역사다. 하지만 그 역사 이면에 누구도 단정 짓지 못할 독특하고도 이질적인 문화가 생겨났다.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고, 다양한 인종의 문화가 남았으며, 여러 시대의 흔적들이 도시에 새겨진 것이다. 그 옛날 믈라카 항구에서 동·서양이 만난 것처럼 지금은 여행객들이 믈라카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있다.

실제 믈라카를 걷다 보면 어떤 곳은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분위기가, 또 어떤 곳은 포르투갈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믈라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네덜란드 광장 앞 운하는 마치 암스테르담에 온 것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쟁탈사'이겠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흔적들이 믈라카의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중국 사원인 청훈텡 사원과 이슬람 사원인 깜풍 클링 모스크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고, 이들 사원 근처에는 힌두교 사원도 있다. 같은 거리에는 아시아 어느 나라의 풍습이 진하게 남은 장례용품 판매점이 있다. 믈라카에는 유명한 성당과 교회도 자리하고 있어 종교가 있든 없든 여행객들에겐 흥미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문화란 무엇이고, 교역은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이고, 조화란 무엇인가." 믈라카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유네스코는 "믈라카에서는 아시아의 전통과 유럽의 영향이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과 종교 건물, 예술, 음식, 일상생활 등에 매우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서양을 잇는 무역로에서 생겨난 독특한 문화유산이 믈라카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등에 따르면 15세기 믈라카에서는 항구가 성장했고, 여러 아시아 문화가 공존했다. 이후 1511년 포르투갈인들이 믈라카를 점령했고 세인트폴 성당 등이 세워졌다. 1641년에는 네덜란드인이 믈라카를 점령한다. 그 영향으로 1753년 믈라카에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교회인 크라이스트 처치가 세워졌다. 붉은색이 인상적인 이 교회는 이제 믈라카의 상징적인 공간이 됐다.

믈라카는 이후 1800년대에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영국 통치 당시의 흔적이 공교롭게도 네덜란드 점령 시절 만들어진 크라이스트 처치 앞에 남아 있다. 바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딴 빅토리아 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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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라카 세인트폴 언덕에 있는 옛 성당 건물. 1500년대에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건축된 이곳은 믈라카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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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보는 풍경은 걸어서 보는 것과 사뭇 다르다. 밤이 되면 알록달록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리버크루즈를 타고 믈라카 운하를 따라 도시를 둘러보는 사람들.
◆역사적인 항구도시, 지금은 인기 여행지로

믈라카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느껴지는 도시의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의 조화'다.

도시의 한쪽에서는 아담하고 오래된 집과 건물이 있는 올드타운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고층빌딩과 함께 모던한 신도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는 분위기는 여행객들에게 어필하는 매력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믈라카를 찾는 여행객들은 이 도시의 낮만큼이나 밤도 좋아한다. 저녁이 다가오면 한낮의 더운 기운이 한층 사그라든다. 강변의 식당과 카페가 하나둘 불을
말레이시아 믈라카의 지도상 위치. 〈게티이미지뱅크〉 밝히고 야시장 앞이 북적이기 시작한다. 포르투갈의 영향 때문일까. 믈라카에서는 에그 타르트가 유명한 디저트다. 또 곳곳에 크고 작은 맛집들이 있어 국수 등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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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믈라카의 지도상 위치. 〈게티이미지뱅크〉

여행객들은 걸어서 혹은 배를 타고 믈라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낮과 밤을 감상한다.

과거 번영했던 항구도시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고 지금은 많은 여행객이 찾는 인기 여행지가 됐다. 이곳에선 정답이 없는 듯하다. 도시의 역사는 '쉽게 규정되지 않는' 믈라카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 제 인생의 '한 컷'을 찾아내고 싶은 걸까. 믈라카의 조형물과 벽화 앞에서는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 광장의 조형물은 가장 인기 있는 사진 촬영지다.

믈라카 올드타운에서 만난 한 호주 여행객은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믈라카 여행을 왔는데 무척 흥미로운 곳인 것 같다. 예전에 항구도시였던 영향 때문인지 도시 전체에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고, 이런 점들이 이색적으로 느껴진다"라며 여행 소감을 전했다. 믈라카에서 글·사진=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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